[일요신문] 영화 <명량>을 보면 왜선에선 조총으로, 조선 수군 함선에선 화포로 공격한다. 의아스러울지 모르지만 임진왜란 당시에도 소형 무기는 왜군이 앞서 있었지만 화포와 같은 대형무기는 조선이 월등히 앞서 있었다.
조선군의 화포를 장착한 함선은 임진왜란 때 갑자기 개발된 것이 아니다. 그보다 200년이나 거슬러 올라간 고려 말 최무선이 화포를 배에 올린다는 발상을 한 것이다.
아이작 뉴턴의 ‘만유인력’, 아르키메데스의 ‘부력’, 윌리엄 하비의 ‘혈액순환’…. 오늘날 상식으로 통하는 이 모든 과학적 발견도 그것이 발견되었을 무렵에는 상식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붓다의 ‘평등’, 예수의 ‘사랑’, 간디의 ‘비폭력’과 같이 인류의 지고지순한 가치라고 평가되는 개념들도 선구자의 희생 위에서 꽃핀 것들이다.
앞서 말한 과학적 법칙의 발견은 오늘날 인류가 누리는 문명의 토대가 되었고, 가치의 발견은 현대 사회의 정신을 지배하는 진리로 여겨지고 있다. <세상을 바꾼 창조자들>은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알기 위한 탐험의 가이드북이다.
재미있는 점은 공동 저자인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 이종호 박사는 스스로를 ‘악당’ 보수주의자라고 칭한다. 반면 영남대학교 교양학부에서 가르치고 있는 법학자 박홍규 교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진보주의자다. 연구 분야도 사상도 다르지만 오직 ‘다른 것에 대한 포용력’을 공약수 삼아, 서로가 생각하는 ‘세상을 바꾼 창조자들’ 스무 명을 꼽아서 논했다.
자신의 위치에 대한 강한 믿음만큼이나 넓은 도량으로, 하나의 주제를 두고 진보·보수 간의 공동 집필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책에는 과학과 인문학의 놀라운 발견 사이의 상이점을 발견하는 재미와 두 사람의 분명한 색깔을 비교하는 즐거움을 담았다.
이종호, 박홍규 공저. 인물과사상사. 정가 1만 5000원.
연규범 기자 ygb@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