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학원 원장에서 강남 일급 룸살롱의 ‘대마담’으로 변신한 한 여성이 이 업계의 치열한 생존 방식과 마케팅을 소개한 책을 출간했다. <나는 취하지 않는다>의 저자 한연주씨(46·사진). 한씨는 자신만의 마케팅으로 ‘아가씨’ 단계를 거치지 않고, 한 달에 1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대마담’의 자리에 올랐다. 한씨가 말하는 강남 일급 룸살롱은 1년 매출이 수백억원에 이르고 연예인 못지않은 뛰어난 미모와 외국어 실력까지 갖춘 아가씨들이 대기하는 곳이다. ‘대마담’이 아가씨들을 데리고 움직일 때면 억대의 계약금이 따라다닌다. ‘대마담’도 결국 개인 사업자인 셈이다.
한씨를 만나 이 세계의 풍토와 룸 안의 모습들, ‘아가씨’들의 생존 법칙 등을 들어봤다.
일급 룸살롱은 서울 강남에만 50~60군데 있지만 ‘대마담’은 10여 명에 불과하다. 손님이 많아 함께 일하는 아가씨들이 동이 나면 다른 마담의 아가씨들을 빌릴 수밖에 없고, 때에 따라서는 옆 가게의 룸도 빌려야 하기 때문에 대마담들 사이의 친분 유지가 중요하다.
1인당 술값이 1백만원이라는 일급 룸살롱에 드나드는 손님들은 어떤 계층일까. 한연주씨에 따르면 사회에서 떵떵거리는 지도층 인사나 대기업 간부들, 재벌 2세들이나 전문직 종사자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한씨는 “룸살롱의 등급은 시설이 얼마나 좋으냐, 나쁘냐, 술값이 얼마냐로 따질 수도 있지만 최고의 기준은 역시 아가씨”라고 말한다. 연예인 못지않은 미모를 가진 최고의 아가씨들이 1백 명 이상 일하는 곳이 강남 최고급의 룸살롱이라는 것이다. 1인당 술값이 1백만원에 육박하고 아가씨들의 봉사료가 10만원이며 2차가 절대 없는 곳이 1등급에 속하는데, 이를 ‘텐프로’라고 부른다. 다음 등급은 ‘점오’. 마지막 등급인 ‘이십프로’는 아가씨들이 모두 2차를 나가는 곳이다.
클럽이나 단란주점 같은 그 다음 단계의 유흥업소부터는 룸에서 양주를 팔고 아가씨가 있어도 ‘룸살롱’이라고 부르지 않는 게 업계의 관행이라고 한씨는 말한다.
한씨가 말하는 ‘잘되는 가게’와 ‘안 되는 가게’의 차이는 아가씨들의 ‘질’에 따라 좌우된다. 선금을 얼마나 받느냐에 따라 아가씨들의 등급을 나눌 수 있는데, 초보의 경우 1천5백만원 정도를 받으면 일하면서 부담스럽지 않게 갚을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 그 위 단계가 삼천만원 이상, 때에 따라서는 억대의 선금을 받는 아가씨도 있다. 이런 아가씨들은 가끔 방송이나 영화로 진출하라는 권유를 받기도 하지만 거의가 이를 무시한다. 지금도 잘 벌고 지내는데 뭐하러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불확실한 세계로 나가느냐는 식이라는 것이다.
실제 한씨가 데리고 있던 아가씨 중에도 억대의 선금을 받는 아가씨들이 있었다. 이 중 A양은 국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모 탤런트만큼이나 청순하면서도 차가운 듯한 외모를 지니고 있는데, 손님들은 그녀를 만난 순간 제대로 고개를 못 들고 숨도 편하게 쉬지 못할 정도로 얼어버린다고.
B양의 경우는 후천적인 노력으로 특급 아가씨가 된 경우다. 처음엔 평범한 아가씨였지만 꾸준히 미모를 가꾸는 것은 물론, 춤과 노래, 심리 치료는 물론 화술까지 배우며 자기 계발에 시간과 돈을 투자했다.
한씨가 데리고 있는 아가씨들은 보통 15명 안팎. 한씨는 “너무 많으면 수입을 일정하게 책임져 줄 수 없다. 또 워낙 자유분방하고 자존심이 센 아가씨들이라 통제하기가 힘들어 보통 이 정도의 규모는 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씨가 데리고 있는 아가씨들 중에는 명문대에 다니는 여성들도 포함돼 있다고. 다른 곳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을 스카우트 하기도 하지만 대학가에서 명함을 돌리면 의의로 많이 찾아오더라는 게 한씨의 말이다. 대학생들의 경우 학비를 벌기 위해 찾아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신용카드로 진 빚을 갚기 위해 찾아왔다가 이 일에 만족해 선금을 갚고 계속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일등급 룸살롱의 ‘아가씨’를 고르는 기준도 까다롭다. 대마담 한씨가 보는 첫 번째 기준은 외모나 스타일이지만 성격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얼굴이 아무리 예뻐도 중요한 손님을 맞는 자리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는 ‘얼마나 재능 있고, 똑똑한가’ 하는 점이라고. 손님들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 아가씨는 ‘빛 좋은 개살구’인 셈이다.
“춤과 노래를 잘 못하는 아가씨들에게는 따로 레슨을 받도록 권유하기도 하고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도록 일어와 영어 학원을 보내기도 한다”는 한씨는 아가씨들에게 “끊임없이 자기 관리를 하라”고 충고한다.
이 중에서도 모든 손님에게 해당되는 철칙이 있는데, 바로 ‘어제 본 손님도 처음 본 손님처럼’이다. “어머, 어제도 오셨는데, 또 오셨네요”라며 아는 척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라고. 한씨는 인터뷰 와중에도 틈틈이 아가씨들에게 전화를 걸어 “운동은 했느냐”며 확인하고 있었다.
5년 넘게 마담으로서 일하다 보니 한씨와 특별한 인연을 맺거나, 안타깝게 떠난 아가씨들의 각기 다른 사연도 가슴에 남았다. 명문대에 다니던 C양은 유학 간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항공료를 마련하기 위해 이 일에 뛰어 들었다. 한씨는 “아주 예쁘고 외국어도 유창하게 잘했다”고 그녀를 기억했다. 공부와 룸살롱 일을 병행하며 사랑을 지켜나가던 C양은 약혼까지 했지만 유학에서 돌아온 남자친구와의 결혼을 앞두고 그만 VIP룸에서 예비 시아버지와 맞닥뜨렸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한씨는 “통역사가 필요해서 잠시 부른 것 뿐”이라고 변명해 줬지만 이미 뒷조사는 끝난 상태. 결국 C양은 파혼을 당했고 그 길로 이 세계를 떠난 뒤 연락이 끊겼다.
그러나 반대로 룸살롱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 결혼을 한 경우도 있다. ‘대마담’의 자리에서 승승장구하던 지난 2003년,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한씨는 아가씨들을 모두 데리고 다른 곳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사채를 쓰는 바람에 10개월 동안 구치소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경제사범으로 들어 온 미대 출신의 K씨를 만났다. 예쁘고 영리한 그녀를 눈여겨 본 한씨는 구치소를 나오면서 함께 일하자고 제의했고 나중에 한씨를 찾아온 K씨는 룸살롱에서 일하다 디자이너 출신의 한 남성과 결혼했다. 한씨는 “놓치기 아까운 아가씨였지만 상대가 모든 것을 이해해 주는 좋은 남자여서 ‘졸업’을 시켜줬다”며 웃었다. ‘졸업’은 그들만의 은어였다. 보통 20대 중반을 넘어서면, 일급 룸살롱에서 일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이 나이가 되면 ‘졸업’을 한다.
한씨처럼 ‘대마담’이 되고 싶다는 아가씨들도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한씨는 “그런 꿈은 아예 꾸지도 말라”고 만류한다고. ‘졸업’하면 하고 싶었던 일도 하고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라고 충고한다는 것. 룸살롱도 기업이고, 이곳에서 종사하는 사람들도 모두 프로 의식을 가지고 일하지만 젊음을 잃고 나면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하는 게 이 업계의 특성인 것이다.
양하나 프리랜서 hana01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