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본인의 색깔을 드러내는 결정적 순간을 언제로 잡을 것인가. 친박계가 긴장 속에서 주시하고 있다. 7월 16일 최고중진연석회의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새누리당 내부에선 7·30 재·보궐 선거 이후 선임될 것으로 보이는 신임 사무총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유는 어느 쪽 계파 사람이 되느냐에 따라 김무성 대표가 숨 고르기를 할지, 곧바로 자기 색깔을 낼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이 거론되는 가운데 가장 많이 회자하는 이는 TK(대구·경북)의 김태환 의원(3선, 경북 구미을)이다. 새누리당 지지기반인 TK 출신 친박계 의원을 뽑으면 김무성 대표가 말한 ‘탕평 인사’의 구색을 갖출 수 있다. 하지만 전당대회 때 김 대표에게 올인하다시피 했던 김학용 의원(재선, 경기 안성)도 거론된다. 그럴 경우 당의 균형추는 완전히 비박계의 ‘신당권파’에게 쏠리게 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이런 말을 들려줬다.
“지금 김무성 대표로선 거칠 게 없다. 당심은 물론이고 민심까지도 그에게 대 정부, 대 청와대 견제구를 요구했다. 하지만 김 대표가 대권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일단은 적을 만들기보다 내 편을 확장시켜야 한다. 친박계 사무총장을 기용하고, 사무1부총장은 자기 사람을 심어 견제하는 방법을 여러 루트에서 건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아직까지는 박근혜 대통령이 갑이고, 친박계가 실세 아니냐.”
김 대표는 현재 재보선에 올인하는 모습이지만 그것 자체가 숨 고르기란 해석이다. 재보선 후보를 본인이 공천한 것도 아니고, 결과에 따른 책임론 부상 가능성도 제로다. 하지만 당대표로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으로 어필하면서 국회 하반기 ‘결정적 순간’을 기다릴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이 결정적인 순간이란 이명박 정부에서의 4대강 사업, 세종시 수정안 같은 찬반이 분명해지는 이슈를 뜻한다. 여권 내 전략통으로 통하는 한 인사가 내놓은 전망이다.
“박근혜 정부가 돈을 풀어 뭔가를 만드는 토목 사업은 아예 하지 않기 때문에 인사 참사가 되풀이되거나, 최경환 경제부총리 사단의 경제부흥책이 실패할 경우 김 대표가 공언한 대로 청와대에 할 말은 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바로 그 순간이 레임덕의 시작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김 대표가 조기 레임덕을 불러오면 오히려 여권 내에서 역풍이 불 수도 있다며 타이밍과 수위를 조절할 것이란 말도 있다. 여권 사정을 수집하는 정보기관 관계자는 이런 말을 했다.
“국정감사에서 여당 의원들이 행정부와 그 산하 기관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당의 권력구도가 어느 쪽으로 기울었는지 알 수 있다. 닥공(닥치고 공격)이라면 신당권파에, 보호막을 쳐준다면 박 대통령에게 우호적이게 된다. 역대 모든 국감이 그랬다. 다만 국정감사 등 하반기 정기국회가 당보다는 국회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원내지도부가 더 주목받는다. 그 속에서 김 대표가 어떻게 존재감을 드러낼 것인가, 그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진흙탕 싸움이었던 전당대회가 생각보다 싱겁게 끝나자 당내에서 서청원 최고위원을 거론하는 이가 없다. 18대 국회 때 ‘안상수-홍준표’, ‘홍준표-유승민’의 당대표-2위 최고위원 간 마찰이 예견됐지만 서 최고위원은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전당대회 직후부터 열흘간 두문불출하면서 친박계에서조차 “몽니 부리는 것 아니냐”는 시선을 보냈다. 지난 7월 24일 국회 당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서 최고위원에게 김 대표가 “당의 큰형님이 돼달라”고 당부한 것도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라는 의미가 담겨있다는 해석이 붙는다. 친박계 재선 의원은 이렇게 귀띔했다.
“서 최고위원이 전당대회 때 박근혜 대통령의 축사를 듣고는 좀 언짢아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표심을 어르는 이야기를 해줄 줄 알았는데 그 수위가 기대에 못 미쳤고, 결과적으로도 이변을 만들어내지 못해 속이 상했다는 것이다. 당 지도부에 거의 유일한 친박계 맏형인데 이런 식으로 태업하는 것도 어찌 보면 청와대에 대한 불만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얼마나 머쓱한 혼자만의 외출이었는가.”
서 최고위원이 칩거를 접고 당무에 복귀한 것은 그의 의지가 아니라 당무 불참이 친박계 내홍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데 부담을 느꼈을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정치권은 하반기 정기국회의 중심에 서게 될 이완구 원내대표가 철저하게 청와대 조력자로 활약할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최근 세월호 특별법 협상과정에서 강경 목소리를 내는 것도 그렇고, 그의 주변부를 거쳐 간 다수의 인사 입에서 “이 원내대표가 차기 국무총리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통 큰 인물’을 자처하는 이 원내대표가 5월 취임 이후 지금까지 어떤 성과도 낸 것이 없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정책위의장실에서조차 생색은 원내대표가 내고, 일은 주호영 정책위의장이 다한다는 푸념도 전해지고 있다.
아직 김 대표가 움직이지 않고 있지만 친박 핵심들이 몸을 사리고 있다는 분위기가 전해진다. 세월호국정조사특위에서 유족에게 큰소리를 쳤던 조원진 의원이나, ‘새누리당은 윤상현당’으로까지 칭해지면서 청와대와 교감했던 윤 사무총장, 지난해 김 대표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대화록 사전 입수 의혹의 발설자로 오인 받아 구설에 올랐던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 등 골수 친박이 골치 아프게 생겼다는 말이다.
김 대표 쪽으로 최근 기운 중립 성향의 재선 의원은 “김 대표는 두 번이나 공천 학살을 당해본 당사자다. 그가 보복한다고 하더라도 누가 손가락질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당이 살기 위해 친박 골수분자를 어떻게든 쳐야 한다면 단칼에 그렇게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재보선 이후 김 대표의 한마디 한마디에 울고 웃는 의원들이 꽤 나타날 분위기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