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거대 제약회사들의 임상시험 조작, 과대과장 마케팅, 의료계와 유착 의혹 등이 제기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얼마 전 일본에서는 약에 대한 신뢰가 크게 흔들릴 만한 사건이 연달아 터졌다. 스위스 제약회사 노바티스 일본법인이 고혈압 치료제 ‘디오반’ 임상 연구과정에서 데이터를 인위적으로 조작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어 다케다제약을 비롯한 일본 유수 제약사들도 줄줄이 비리 의혹에 휘말렸다.
특히 노바티스 측은 일본 대학 연구팀에 거액의 기부금을 지원한 사실이 발각돼 임상연구의 공정성 논란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노바티스 측은 조작된 논문을 디오반 홍보에 활용했으며 ‘저명한 의사가 칭송한 약’이란 식의 기사를 의학 잡지에 게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주간겐다이>는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일본에서 약을 팔기 위한 제약업계와 의료계의 은밀한 결탁이 만연해 있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항우울제’ 시장이다.
1999년 일본의 우울증 환자는 43만 명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우울증 치료제 ‘팍실’ 판매를 계기로 환자 수가 급증, 3년 만에 70만 명을 돌파하더니 2005년에는 당초보다 2배 이상 증가한 92만 명에 달했다. 더불어 항우울제 매출은 10년 사이 5배 이상 늘어났다. 비단 일본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 최근에는 남미와 중국에서도 항우울제 발매를 계기로 우울증 환자가 격증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의 저자 에단 와터스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우울증 환자가 급증한 데에는 제약회사의 메가 마케팅 전략이 연관돼 있다”고 말한다. 2000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우울증은 지금과는 의미가 달랐다. 우울증은 대부분 입원을 필요로 하는 심각하고 드문 정신질환이었고, 어느 정도의 ‘슬픔’은 인생에 있어 피할 수 없는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서구에서 생각하는 우울증과는 다른, 일종의 문화적 차이가 존재했다.
당시 항우울제 판매로 선두를 달리던 제약회사 일라이 일리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1990년대 초 일본 시장을 개척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미국의 거대 제약회사 글락소 스미스클라인(GSK)은 묘안을 짜내 일본 시장에 뛰어들었다. ‘병적인 우울’과 ‘자연스런 슬픔’의 경계를 무너뜨려 우울증의 범위를 최대한 넓게 규정하려는 전략이었다.
GSK는 광고와 홍보물을 통해 “우울증이 마음의 감기”라는 점을 되풀이해서 강조했다. 그즈음 일본에서 장기불황에 따른 노동환경 악화로 근로자들의 자살이 늘자, “자살의 원인은 우울증”이라고 선전하기 시작했다. 메가 마케팅은 성공적이었다. 우울증을 친근하지만 방치하면 안 되는 ‘가벼운 정신질환’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불과 몇 년 사이 일본인들은 우울증을 의학적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마치 감기약을 찾는 것처럼 실연의 아픔, 가족을 잃은 슬픔, 모든 심리적 고통이 그들에게 ‘우울증’이 됐다. 예전에는 병으로 간주하지 않았던 사람들조차 정신과 의사를 찾았다. 이렇게 일본의 항우울제 시장규모는 1조 2000억 원이 넘는 거대 소비시장으로 거듭났다.
제약사의 마케팅은 소비자뿐 아니라 의사에게도 유혹의 손길을 내민다. 이와 관련해 <주간겐다이>는 “의사는 치료를 위해 약을 처방한다. 아무런 의심 없이 이렇게 믿고 있다면, 그야말로 제약사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잡지는 한 정신과 의사의 증언을 빌려 “제약사들은 흔히 미인계를 쓴다. 젊고 예쁜 여성이 다가와 팸플릿을 건네주며 신약 임상실험 발표회에 참석해 달라고 요청한다. 교통비는 물론 특급호텔숙박비, 회식비 전부를 제약사 측이 대준다. 발표회에서 조금이라도 연설을 한다면 수표가 든 봉투를 슬쩍 건네주기도 한다”고 전했다. ‘독이 든 사과’를 물었다면, 의사는 그 회사의 약을 처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제 신약 홍보를 의사가 대신 맡게 되는 셈이다.
과도한 제약사의 마케팅에 반발해 일각에서는 “우울증은 실체가 없다. 만들어진 병”이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항우울제가 우울증 증상을 완화한다는 사실이 아직 완벽하게 증명되지 않은 데다, 그 효능이 가짜약을 투여해도 효과를 보는 ‘플라시보’ 정도라는 연구 결과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항우울제 부작용도 속속 보고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제약사들이 이윤을 많이 남기기 위해 우울증을 과대 포장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이 같은 의심은 우울증에만 그치지 않는다. 의사이자 논픽션작가인 노다 마사키는 “사실 지난 30년간 의약계에서는 정말 의미 있는 신약 개발이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1980년대까지는 최고 혈압이 160mmHg 이상이었던 고혈압 진단 기준이 140mmHg으로 낮춰진 것도 약의 수요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닐까싶다”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이로써 제약업계의 이득이 수백조 원에 달한다는 것이다.
콜레스테롤 수치에 대해서도 같은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 1970년만 해도 콜레스테롤 정상치는 260mg/dl이었지만, 1990년대에 220mg/dl으로 변경됐다. 공교롭게도 고지혈증 치료제 ‘메바로친’이 발매된 것이 그로부터 불과 반년 후의 일이다. 고지혈증 치료제는 일본에서만 약 3조 원의 시장규모를 자랑하는 달러박스다.
약이 늘어날수록 환자도 늘어나는 이 의심스러운 행보에 대해 <주간겐다이>는 “제약사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환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태를 낳고 있다. 눈앞의 매출과 명성만 좇지 말고, 진정으로 환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다카시 약제사회 회장의 충고 “잘 듣는 약일수록 부작용도 높다” 일본 약제사회 고다마 다카시 회장은 “약이라는 것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화학 합성물질로 원래 몸 안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 독과 같다. 잘 듣는 약일수록 대부분 부작용도 높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병을 못 고치는 약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에 말에 따르면 감기약, 고혈압, 당뇨병과 같은 약들은 증상을 완화시킬 뿐이지 병을 낫게 하는 약이 아니다. 실제로 감기의 원인은 바이러스이나 아직까지 바이러스를 죽이는 약은 없다. 엄밀히 말해 ‘진짜 감기약’은 없는 셈이다. 그는 “약을 복용해 내성이 생기면 정작 중요할 때 듣지 않을 수 있다. 단순한 감기 증상에는 최대한 항생제 복용을 피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