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한국 역사영화는 2000년 이후 그야말로 르네상스기를 맞고 있다. 1000만 명에 육박하거나 그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관상>,〈왕의 남자>,〈광해, 왕이 된 남자> 등에서 볼 수 있듯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면서 정교한 역사인식을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역사에 대한 정밀한 고증보다 당대 관객의 요구와 정서를 반영하여 만들어지는 영화는 극적인 스토리텔링의 옷이 입혀지면서 실제 역사적 사실과 크게 달라진다. 이 때문에 종종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리기도 한다.
<한국사 영화관>은 668년 고구려 멸망 과정을 그린 〈평양성>에서 1981년 부림사건을 다룬 〈변호인>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20편을 중심으로 한국사를 읽어낸 역사교양서다. 영화적 서사와 역사적 진실 사이의 간극을 설명하는 것은 물론이고, 고구려시대부터 근현대까지의 역사를 압축적으로나마 한 흐름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은 굵직굵직한 정치적 사건뿐만 아니라 자칫 지나치기 쉬운 문화사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관상>은 계유정난을 모티브로 삼았지만 관상학이라는 소재를 끌어왔다. <혈의 누>는 황사영 백서사건(1801)과 신유박해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형벌제도를 알고 있을 때 영화의 주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1980년대 군사정권에 대한 배경지식과 민주화운동에 대한 교양이 있을 때 <슈퍼스타 감사용>이나 <변호인>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공민왕 시역사건, 기축옥사, 임진왜란, 병자호란, 문체반정, 붕당정치, 신유박해, 식민지 모던문화, 근대병원의 역사, 민주화운동 등 역사적 분기점에서 의미 있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한국사의 맥락을 짚는다.
그뿐 아니라 굵직한 정치사 속에 묻히기 쉬운 문화사의 측면이나 광대, 궁녀, 기생, 노비, 화원, 몰락한 군인 등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자신만의 몫을 소리 없이 담당했던 사람들의 역사에도 주목한다.
김정미 지음. 메멘토. 정가 1만 6500원.
연규범 기자 ygb@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