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가 지난 7월 31일 재보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동반 사퇴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수원 영통에서 박광온 후보가 당선된 것이 김진표 전 의원의 조직관리가 아니라 후보자 딸의 트위터(SNS) 덕분이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게 작금의 새정치연합이다. ‘SNS 스마트 정당으로 거듭나자’는 한 의원의 발언은 차마 거론하고 싶지도 않다(새정치연합 당직자).”
“재보선 직전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사퇴 국면을 생각해 보라. 새정치연합이 질 수 없는 선거였다. 김한길 전 대표조차 ‘이겨야 하는 선거에서 졌다’고 하지 않았나. 새정치연합은 허송세월을 했다. 혹독한 시련이 필요하다(여론조사기관 대표).”
“여당이 실수하기만을 바라는 전략적 부재, 그리고 공천 파동이 결정적이었다. 기동민 후보 동작을 전략공천으로 시작해 권은희 공천에서 끝났다고 본다. 왜 유독 광주를 새정치 실험 대상으로 삼는지 모르겠다. 호남인들만큼 정치적으로 성숙하고 기민하게 투표하는 곳이 없다. 아니, 호남이 빙다리 핫바지냐고(정치컨설턴트).”
위 세 사람은 이번 7·30 재보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가장 반성할 부분은 호남의 낮은 투표율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재보선 15곳 가운데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한 곳은 권은희 후보를 공천한 광주 광산을(22.3%)이었다. 텃밭에서 권 의원은 그 낮은 투표율에서도 지지율 60%를 간신히 넘겼다. 설상가상 자신을 공천한 지도부가 사퇴하면서 권 의원은 국회 입성부터 동력이 한풀 꺾여버렸다.
전략공천 결과에 있어 두 공동대표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광산을 후보로 나섰던 천정배 전 법무장관은 “재보선 참패는 지도부 전횡과 계파 담합이 원인”이라며 “지금 상태로는 집권가능성이 없다”라고 말했다. 정동영 상임고문은 “11:4가 아닌 4:11이 되었어야 할 선거”라며 쓴 소리를 남겼다.
하지만 정작 이들이 언급하지 않는, 사퇴한 두 대표 뒤에 숨은 야권 전략통들의 민낯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서의 고참 당직자는 “소위 김한길계로 불리는, 과거에는 정동영 키즈로 불렸던 이들이 전략공천 배후에 있었다고 본다. 특히 당 전략홍보본부장 라인, 민병두 의원과 그 뒤에 바통을 넘겨받은 최재천 의원, 그리고 이번에 사퇴한 김재윤 의원 모두 김한길계다. 이들이 자신의 죄를 낱낱이 고해야 한다. 물론 비대위 뒤에 숨어서 안 나올 가능성이 더 많지만”이라고 말했다.
권은희 의원 전략공천은 김한길 전 대표 작품이었다. 김 전 대표는 출마를 거듭 고사한 권 의원 부친에게까지 연락해 설득 작업에 나섰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최재천 의원 역시 적잖은 조력을 했다고 전해진다. 권은희 의원과 전남대학교 법대 동문인 최 의원이 중간에서 가교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이다. 앞서의 당직자는 “최 의원이 블로그에 쓰고 있는 ‘여의도 일기’를 통해 전말을 밝히길 기대한다”라고 덧붙였다.
권은희 의원에 앞서 동작을에 전략공천된 기동민 후보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여론조사기관 대표는 동작을 공천 파동 당시 “당 지도부에서 전략공천을 위해 비공개 여론조사를 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이걸 주말에 실시했다는 것도 따져야 하겠지만, 그보다 아직 출마를 결정하지도 않은 김문수 전 경기지사와 가상 대결을 붙여 누가 이길 것인가를 물었다는 거 아닌가. 모든 후보들이 진다는 결과를 받아든 순간 비극이 시작됐다”라고 귀띔한 바 있다. 기존의 공천 신청자들로는 승산이 없으니 광주의 기동민 후보를 끌어올려 ‘박원순 후광효과’라도 이용해보자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광주 광산을 재보선에서 당선된 권은희 의원. 연합뉴스
한 정치평론가는 “여론조사를 맹신하는 분위기는 새누리당이 더 강하다. 하지만 이들은 절대 공개 안 한다. 제1 야당 대표가 ‘5석’ 운운할 것이 아니라 그런 결과가 나왔다면 전략을 완전히 수정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필드에서는 대부분 7:8이나 8:7로 예상하는 분위기였고 실제로도 가능했다고 본다”라고 전했다.
이는 지난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초단체장 무공천이 번복됐을 때부터 제기됐던 문제다. 당시 민병두 의원은 “시뮬레이션 결과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다”며 무공천 철회를 자신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안 대표 쪽에서 “속았다”, “또 당했다”는 반응을 내 놓았다는 것만 봐도, 속는 쪽이나 속이는 쪽이나 무능했다는 이야기다. 기동민 후보는 당 지도부의 시뮬레이션 결과가 빚어낸 최악의 참사였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광주·전남에서 보수정당 후보로는 처음 당선된 이정현 의원도 빼 놓을 수 없다. 이정현 당선은 당 지도부조차 쉽사리 믿지 못한 사건이었다. 재보선 당일 개표 6시간 전, 새누리당 소식통으로부터 ‘전남 순천은 최종 조사 결과, 12%포인트 정도 이정현 후보가 앞서는데, 믿을 수 없다고 해서 지는 걸로 분류해 지도부 보고’라는 소식이 나돌았을 정도다.
이정현 의원 당선 내막에는 야권 내 뼛속 깊은 계파 갈등 도식이 그대로 도출된다. 선거 결과를 놓고 호남의 구민주계 쪽에서는 “친노무현계 인사인 서갑원 후보가 순천에서조차 밀렸으니 친노의 패배”라는 분석을 내 놓는 반면, 친노 진영에서는 “경선에서 패배한 노관규 후보자 측 조직이 전혀 협조하지 않았다. 일부는 새누리당을 도왔다”며 서로 다르게 해석한다.
여기에 박영선 원내대표의 답 없는 발언도 한몫했다. 박영선 원내대표는 이정현 후보의 “호남에 예산 폭탄을 퍼붓겠다”는 전략적 발언을 대응하는 차원에서 “예산 폭탄이요? 제가 막으면 됩니까? (아니요.) 서갑원 후보를 국회로 보내주시면 힘쓰겠다”고 말했다. 물론 선거사무소에서 야당 지지자들 상대로 뱉은 말이라지만 경상남도 출신인 야당 원내대표가 해서는 안 되는 발언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앞서의 당직자는 “원래 청문회 스타, 저격수 출신의 특징이 그렇다. 이미지와 바람으로 선거를 지휘한다. 본인이 할 때는 잘 되거든. 그런데 전국단위 선거에서는 그게 잘 안 된다. 호남은 지난 지방선거 때부터 지역 조직이 다 망가져 버렸는데, 박 대표가 상황에 대한 심각성을 좀 깨달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여론조사기관 대표는 “친노의 패배라는 말이 맞지 않는 게 서갑원 후보는 경선에서 이겼다. 노관규 후보는 순천시장 출신임에도 지난 총선 야권단일화 경선 때는 통합진보당 후보에 밀렸다. 정치 신인을 키운다는 목적에서 진짜 전략공천을 했어야 했던 곳은 전남 순천·곡성이었다”라고 지적했다. 정치컨설턴트는 “이정현 후보 본인이나 캠프에서 선거를 잘 이끌었다. 지선 때 유정복 인천시장을 당선시켰던 팀들이 대거 순천으로 내려와 지휘했다고 들었다. 겉으로 지원 유세를 거절했지만 안에서 당 차원의 조직적 지원이 있었던 셈이다. 표만 된다면 이인제 최고위원에게 반바지도 입히는 게 새누리당이다. 새정치연합은 나경원의 ‘살려주세요’ 문자의 위력을 지금도, 앞으로도 모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한길계 전략통으로 알려진 민병두·최재천·김재윤 의원(왼쪽부터).
이번 재보선에서 수도권 6석 가운데 1석밖에 못 건졌다는 것도 문제다. 정치컨설턴트는 “지난 대선에서 패배한 큰 원인이 경기도에서 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지금 야당 경기도당위원장이 초선인 송호창 의원(공동위원장이자 전략기획본부장)이다. 송 위원장 주변에서 경기도에 손학규 고문이나 김두관 전 지사가 와서 뿌리 내리는 것을 100% 바라기만 했겠나”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을 전해들은 야당 당직자는 “큰 틀에서 안철수 대표의 ‘선당후사’ 발언에 동의하는 편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김두관 전 지사가 욕심 안 부리고 경남 지키고 있었어 봐. 시너지 효과로 인해 오거돈 전 장관이 부산시장 당선됐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사실 김 전 지사를 벼랑 끝에 서게 한 쪽도 따지고 보면 김한길 키즈들”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재보선 야당 참패를 계기로 차기 당권은 구주류로 넘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특히 친노계 좌장 격인 문재인 의원의 행보에 시선이 쏠린다. 아직은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는 게 앞선 세 사람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친노 쪽에서 당권 잡은 이후 정의당이랑 합쳐 외연 확장하고 PK(부산·경남)에서 조금만 더 표를 모으면 정권 잡을 수 있을 걸로 보는 것 같다. 친노계의 PK 사랑은 유별나다. 부산 출신인 안철수 전 대표 측도 합당 당시 약속 받은 5:5 지역위원장 지명을 통해 부산에 지역조직을 다지려고 물밑 작업을 진행해 왔지만 거의 진척이 안됐다. 벌써 본인들끼리 차기는 문재인, 차차기는 박원순 또는 안희정, 이렇게 정리하는 것 같다(여론조사기관 대표).”
“문재인 의원은 절박함이 없다. 본인 자체가 인기도 많고 외부 후원도 상당하니 당 지도부에 아쉬운 소리할 이유가 없다. 문 의원은 모임도 주로 여의도 바깥에서 한다. 마포구 한정식집을 애용한다더라. 연말 모임도 여기서 하고, 팟캐스트 식구들도 불러서 이야기도 나눈다. 사실상 친노 아지트 아니냐. 트위터에서는 문재인이 대통령이다. 김한길 전 대표 글이 RT(리트윗, 타인의 글에 공감하거나 의견을 덧붙일 때 사용하는 기능) 10개 되는 동안 문 의원은 1000번 된다(정치컨설턴트).”
“문재인 의원도 그래. 친노라는 게 실체가 없다, 이렇게 배척하지 말고 친문재인이 되어 달라, 이렇게 나와야지. 국회 입성해서 자기 사람들로 만든 게 마포구 정청래 의원밖에 더 있나. 천정배 손학규 정동영, 하다못해 같은 지역 조경태 의원에라도 읍소해야지. 바보주막 같은 거 전국에 열면 뭐 하느냐고. 모이는 사람만 모이는데(고참 당직자).”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