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가톨릭이 관심을 가질 만한 신앙의 신비가 충만한 땅이다. 희망의 땅이자 고난의 땅이다. 18세기에 서양의 선교사가 없이 조선인 사제가 교회를 세우고 선교를 시작한 가톨릭 역사에서 희귀한 나라고, 무수한 순교자의 피로 세워진 나라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이미 1984년과 1989년 두 차례 한국에 와 순교자들을 시복했고,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번에 124위의 순교자에 대한 시복미사를 집전한다.
한반도는 다른 나라를 침략함이 거의 없이 무수한 외세의 침공을 이겨낸 평화의 땅으로서, 근세 들어 일본의 식민 지배를 겪었고 분단의 고통 속에서 산하를 피로 물들인 전쟁을 치렀다. 분단과 전쟁의 후유증을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고 세계 유일의 해방 후 70년이 다 되도록 최장기 분단국으로 남아 긴장과 대결이 끊임없다. 가톨릭이 특별히 기원하는 평화가 깃들어야 할 땅이다.
신앙이 쇠퇴하는 서양과는 달리 종교인구도 늘어나는 나라다. 인구의 10%가 넘는 550만 명의 신자를 거느린 가톨릭은 신도 수에서는 불교나 개신교에 못 미치지만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수행하는 데는 손색이 없다. 젊음을 사랑하는 교황은 아시아 가톨릭청년대회가 한국에서 열린다는 소식에, 그들과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해 선뜻 한국행을 선택했다.
한국은 불과 한 세대 만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룬 젊음과 활력의 나라다. 10만㎢도 안 되는 좁은 면적에 5000만 명이 몰려 살면서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으로 발돋움한 나라다. 그것의 세속적인 이름이 ‘한강의 기적’이다.
정치적으로도 폭력적 정권교체기를 거쳐 선거에 의한 평화적 정권교체의 토대를 구축한 나라다. 한국이 이룩한 이런 성취들은 뿌리가 깊지 못해 많은 모순과 갈등의 원인이 된다. 최근에 그것은 세월호의 모습으로 분출되기도 했다.
한반도의 가장 큰 고난은 남북 분단이 결과한 북한의 가난과 억압이다. 빈곤의 해결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최대 관심사다. 지구상에 교황의 방문을 거절하는 나라 중의 하나가 북한이다. 1980년대 폴란드 출신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조국 방문은 공산체제를 무너뜨린 기폭제였다. 북한이 교황을 두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다.
교황은 지난 5월 예루살렘을 찾아 통곡의 벽에서 기도를 했다. 휴전선을 향해서, 가난과 억압 속에서 고통 받는 북녘 동포를 위해서도 기도를 할 것이다. 그 기도를 이루는 것이 교황 방한의 최대 섭리가 되기를 기원한다.
임종건 언론인·전 서울경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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