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7·30 재보선 압승으로 김무성 대표 체제가 조기에 안착하면서 결국은 박근혜 대통령(사진제공=청와대)과 엇박자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선거의 여왕 없이 이긴 첫 번째 선거다.”
재보선 다음날 만난 새누리당의 한 친박 의원은 압승의 의의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는 “6·4 지방선거에선 대대적인 ‘박근혜 마케팅’으로 겨우 본전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재보선에선 박 대통령 이름을 별로 팔지 않고도 크게 이겼다. 박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진 후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당이 자생적으로 살 길을 모색한 결과”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번 재보선에서 박 대통령 이름을 거론하는 당 지도부 인사들과 후보들은 거의 없었다. 김무성 대표가 선거 전날 “박근혜 정부 3년 7개월 남은 임기 동안 민생경제 활성화로 서민들 주름살을 펴드릴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당부한 게 그나마 눈에 띄었다. 이마저도 지난 지방선거에서 대놓고 “박근혜를 도와 달라”며 읍소했던 것에 비해선 확연히 약해진 수준이다.
사실 김무성 대표가 7·14 전당대회에서 친박 좌장 서청원 의원을 누르고 당권을 거머쥘 때부터 이러한 움직임은 어느 정도 예상된 바였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이미 당의 시선은 2016년 총선을 바라보고 있다. 의원들은 박 대통령을 전면에 내세운 ‘올드’한 느낌의 서 의원으로는 총선에서 힘들다고 판단한 것”이라면서 “재보선 승리로 김 의원 카드는 일단 시험을 통과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 지지율이 크게 반등하지 않는 이상 당의 ‘홀로서기’ 전략은 계속될 것으로 점친다. 일각에선 그동안 확고한 지지층과 카리스마로 수많은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선거의 여왕 신화가 막을 내렸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내부에선 확실한 히든카드를 잃어버렸다는 아쉬움도 나오고 있지만 박 대통령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가 더욱 큰 모습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은 “선거는 당이 하는 것”이라며 별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진 않지만 섭섭함을 털어놓는 이들도 적지 않다. 청와대 정무 관계자는 “이정현 전 정무수석이 당선된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 이는 유권자들이 박 대통령을 바라보고 투표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또 박 대통령이 최경환 경제부총리 등을 통해 적극적인 경기 부양책을 펼친 것도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선거 다음날인 7월 31일 선거 결과에 대한 공식적인 논평을 내놓은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국민 여러분께서 선택하신 뜻을 무겁고 소중하게 받들겠다. 경제를 반드시 살리고 국가혁신을 이루라는 엄중한 명령으로 듣고 이를 위해 더욱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선거에 대해 입장 표명을 꺼려했던 전례를 비춰보면 상당히 이례적이다. 더군다나 박 대통령은 휴가 중이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당이 박 대통령을 배제하려는 듯한 움직임에 제동을 건 것이란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재보선 대승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이처럼 못마땅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김무성 대표에 대한 불안감과도 관련이 있다. 김 대표는 이번 재보선 공천에는 관여하지 않았지만 선거지역을 발로 뛰어다니며 승리를 이끈 공신으로 꼽히고 있다. 이는 곧 김무성 체제의 연착륙을 의미하기도 한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김 대표가 전당대회에서 이기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친박과 치열한 공방을 벌어 과연 당을 잘 이끌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재보선 승리로 김 대표 리더십이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당분간은 당과 청이 잘 융화될 것이란 데엔 이견이 없다. 선거 과정에서 ‘민생’을 화두로 내건 만큼 여권이 경제 정책 입안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 역시 계파를 초월해 당을 운영한다는 방침이어서 당청 협력 분위기는 이어질 전망이다. ‘김무성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김 대표가 8월 중순 이후에 당 화합을 위한 구체적 방향을 제시할 것으로 안다. 김 대표는 전당대회에서 드러난 계파 간 갈등을 치유해야한다는 데 공감하고 이에 대한 입장도 밝힐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러나 대다수 정치권 관계자들은 김 대표가 결국은 ‘자기 정치’를 할 것이란 데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김 대표는 전당대회에서 “청와대에 할 말은 하겠다”는 것을 슬로건으로 내걸어 당심을 얻을 수 있었다. 박 대통령 임기 초반 청와대에 끌려 다니며 거수기로 전락해버린 당의 위상을 높여 수평적인 당청 관계를 확립하겠다는 의지였다. 집권당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청와대와의 충돌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이재광 정치평론가는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대통령은 임기 내에 일을 마무리하고 싶어 한다. 아무래도 민심과는 동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당은 그렇지 않다. 총선을 앞두고 있다면 더욱 그럴 것”이라면서 “잠룡들이 레임덕에 빠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는 장면을 흔하게 보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청와대가 우려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차기 주자로 분류되는 김 대표가 청와대와의 관계에 있어서 강경모드로 선회할 경우 당청 관계는 급속도로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 지난 2012년 대선에서 김 대표가 박 대통령을 돕기는 했지만 둘의 관계가 껄끄럽다는 것은 정치권에서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앞서의 김무성계 의원은 “김 대표가 큰 꿈을 꾸고 있다면 결국은 박 대통령과 다른 길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