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성심맹아원에서 사망한 김주희 양의 아버지 김종필 씨 부부가 딸의 사망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 씨는 2년 동안 1인 시위를 벌이며 진상규명을 요구했고, 대전고등법원은 최근 “정식재판으로 다루겠다”며 검찰에 공소제기를 명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주희가 잠든 곳에 아직 제대로 찾아가 보지 못했다. 너무 미안해서. 억울함 다 풀어주고, 부모로서의 도리를 다 한 다음에야 주희를 찾아 갈 수 있을 것 같다.”
김 양의 아버지 김 씨의 방 한 구석에는 그동안 모은 진상조사촉구 서명과 사건 자료들이 차곡차곡 정리돼 박스에 담겨 있었다. 딸 죽음과 관련한 진상규명을 위해 생업도 포기한 채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김 씨 부부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김 씨는 2년 전부터 매일같이 국회와 청와대를 오가며 딸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는 1인 시위를 이어갔다. 화성과 서울을 오가는 기름 값이 아까워 차안에서 먹고 자는 생활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 씨에게는 변호사 수임료와 생활비로 사용한 5000만 원의 빚과 신용불량자라는 꼬리표만 남았다.
김 씨 부부는 김 양이 떠난 후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다. 아내는 딸을 잃은 고통에 몇 번이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무너져가는 부모님을 지켜보던 5남매 중 둘째는 결국 집을 떠났다. 단란했던 가족은 그렇게 뿔뿔이 흩어졌다. 딸의 책이 있던 책장에는 헌법과 형사법에 관련한 책들이 꽂혀있었다. 혹시나 재판까지 가게 되면 알아둬야 할 것 같아 시작한 법 공부였다.
주희는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6개월 만에 미숙아로 태어난 주희는 1급 시각장애와 4급 뇌병변 장애를 가지게 됐다. 김 양은 특수학교를 다니면서 일상생활이 가능해질 정도로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김 씨는 딸에게 좀 더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키고 싶었다. 김 씨 부부는 김 양과 김 양의 쌍둥이 언니에게 맞는 학교를 찾기 위해 전국으로 찾아다녔다.
김 씨 부부는 4년간의 준비 끝에 24시간 3교대로 교사가 돌봐준다는 충주성심맹아원에 보내기로 결심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떨어져 본 적 없는 주희였지만 시각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특화된 교육을 시킨다는 말에 어렵게 한 결심이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주말이면 김 씨 부부가 데려가는 생활을 1년간 이어갔다.
김 양이 사망한 2012년 11월 8일은 김 씨 부부가 김 양을 데리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그런데 김 양을 데리러 가기로 한 며칠 전부터 성심맹아원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일주일마다 맹아원을 방문하던 김 씨 부부에게 ‘아이들에게 방해가 되니 다른 아이들의 부모처럼 2주일에 한 번씩 방문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김 양을 보러가기로 한 하루 전 또 한 번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는 김 양이 다쳐서 골반 쪽에 상처가 생겼다는 말이었다. 맹아원 관계자는 ‘기저귀에 쓸린 상처’라고 설명하며 당장 내려가겠다는 김 씨 부부를 만류했다. 김 씨 부부도 다음날이면 김 양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잠을 청했다.
그런데 김 양을 데리러 가기로 한 11월 8일 새벽 6시 40분 김 씨 부부에게 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주희가 사망했다”는 맹아원 관계자의 전화였다. 날벼락 같은 딸의 사망소식에 김 씨 부부는 꿈이라고만 생각했다. 김 씨 부부는 상복을 입고 2시간을 달려 김 양이 있다는 병원으로 향했다. 김 양은 이미 병원 영안실에 안치돼 있었다.
경황없는 김 씨 부부에게 맹아원 관계자는 “주희가 잠든 상태에서 편안하게 떠났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건강한 모습이었던 딸이 잠든 상태에서 돌연사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김 씨는 딸의 장례절차를 위해 사망진단서와 검안서를 확인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맹아원 관계자가 “의논하면서 장례를 치르자”며 김 씨를 설득했다. 그제서야 이상한 낌새를 느낀 김 씨는 영안실로 내려가 딸의 시신을 확인했다. 그런데 딸의 모습이 이상했다. 자면서 편안하게 떠났다던 딸의 시신 곳곳에 멍자국이 있었고, 골반과 귀 뒤쪽에는 살점이 깊게 패인 상처가 있었다. 결국 김 씨 부부의 강력한 항의 끝에 오후 2시께 경찰에 신고가 접수됐다. 김 양이 사망한 지 12시간도 넘은 시각이었다.
김주희 양의 시신 곳곳에 있는 멍자국과, 귀 뒤쪽 살점이 깊게 패인 상처. 김 양은 수많은 의문점을 남긴 채 사망했다.
김 양은 자다가 사망한 것이 아니었다. 김 양의 사망 당일 새벽 1시 30분께 담당교사 강 아무개 씨(42)는 김 양이 잠이 들지 않자 빈 방으로 데려가 컴퓨터 앞에 앉히고 음악을 틀어주고 다른 방에 가서 잠이 들었다고 했다. 4시간 뒤인 5시 30분께 담당교사 강 씨는 김 양이 혼자 있던 방으로 들어갔는데 김 양이 의자 팔걸이와 등받이 사이 공간에 목이 끼인 채로 사망해 있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계속 바뀌는 맹아원 측 진술에 김 씨는 김 양의 사망원인을 밝혀 달라고 경찰에 요청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는 너무 허술하고 무성의해 보였다. 1차 부검 결과 경찰은 약물사로 단정했다. 그러나 얼마 후 국과수 부검결과는 ‘사인불명’으로 나왔다. 사망한 시각도 알 수 없다고 했다. 김 양 시신 곳곳에 있던 상처에 대해서는 아무런 소견이 없었다. 김 씨는 “사인만이라도 알려달라고 애원했는데 경찰은 냉담한 반응만 보였다. 장례도 못 치르고 계속해서 진정서를 넣자 담당 검사가 시신을 확인하러 왔다. 시신을 본 검사가 타살과 학대에 관해서 명명백백히 수사하겠다며 딸을 그만 보내주라고 했다. 그렇게 3개월 만에 딸의 장례를 치렀는데 3일 뒤 담당검사가 바뀌었다. 다음번 담당검사는 면담요청을 해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김 양의 시신이 화장되고, 담당검사가 교체되고 나서야 재부검 승인이 떨어졌다. 부검할 시신이 없다고 하자 수사당국은 사진으로 재검시를 하겠다고 했다. 부검으로도 판명하지 못했던 사인이었다. 그런데 사진으로 판독한 결과 ‘돌발성 간질로 인한 급사’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결국 청주지검은 시설관계자 5명을 불기소 처분했다.
하지만 아동이 간질로 인한 돌연사를 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는 것이 국내 전문의들의 공통적인 소견이다. 김 양의 주치의였던 서울아산병원 고태성 의사도 소견서를 통해 “소아청소년 간질 환자를 대상으로 한 외국의 대규모 연구결과에서는 원인 중에 원인불명의 돌연사는 매우 드물다고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김 씨 부부는 김 양의 몸에 상처가 왜 생긴 것인지, 앞을 볼 수 없는 아이가 왜 4시간이 넘게 방치돼 있었는지, 사인은 무엇인지, 언제 사망했는지 여전히 아무 것도 알 수 없다고 했다. 김 씨 부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재수사를 해달라고 호소하는 것이 전부였다. 김 씨 부부는 지난 2년간 100명이 넘는 국회의원을 면담하고 청와대 관계자들을 만났다고 했다. 재판으로 시시비비라도 가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김 씨 부부의 싸움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그런데 최근 대전고등법원이 검찰에게 공소제기 명령을 내렸다. 지난 7월 21일 대전 고법은 ‘시설 일부 직원의 업무상 과실로 볼 수 있다’며 담당교사 강 씨에 대한 재정신청을 받아들여 공소제기를 명했다. 김 양의 죽음과 관련해 진상을 규명할 수 있는 기회가 어렵게 찾아 온 것이다. 남은 쟁점은 ‘위급상황에 처한 주희를 시설 측이 제때 발견해 조치를 취했다면 살릴 수 있었느냐’로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김 씨는 “맹아원은 장애어린이들은 돌봐야 하는 시설 특성상 24시간 관찰·보호하는 것이 의무다. 26억 원이 넘는 국고 지원금을 받는 맹아원이 업무상 의무를 다하지 못한 과실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최근에는 1인 시위를 잠시 멈추고 재판에 필요할지도 모르는 자료들을 모으고 있다. 주희의 억울한 죽음을 꼭 풀어주고 싶다. 그게 부모의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재판 핵심 논점은 일찍 발견했다면 살 수 있었을까 충주성심맹아원에서 사망한 김주희 양(당시 12)의 사인은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김 양의 사망을 119에 신고했던 맹아원 관계자는 김 양이 의자 팔걸이와 등받이 사이 공간에 목이 끼인 채 발견됐다고 했다. 맹아원 관계자의 진술에 따르면 질식사가 의심되는 상황이었지만 경찰은 ‘약물사’를 우려했다. 그러나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부검에서는 ‘사인불명’이라는 결과와 함께 사망시각도 알 수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반면 김 양의 주치의이자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고태성 교수는 “(김 양의 경우) 심장계통의 합병증이 아닌 이상 응급호흡으로 생존했을 가능성이 있었다고 예상된다”며 “발작시 환자상태를 발견하고 즉각적인 처치가 있었다면, 사망까지 이르게 될 확률은 적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서울대 분당병원과 세브란스병원 등 6명의 신경과 전문의들도 ‘약을 안 먹고 치료를 안 받는 상태가 아니라면 간질 발작으로 아동이 사망할 확률은 적다’라는 소견을 보였다. 남은 쟁점은 ‘담당교사가 4시간 동안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면 위급상황에 처한 주희를 발견하고 조치를 취해 살릴 수 있었느냐’이다. 법원의 공소제기 명령으로 담당교사인 강 아무개 씨(42)가 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된 가운데 정식재판이 열린다면 ‘주희를 방치하지 않았다면 주희를 살릴 수 있었는지’에 관한 치열한 법정공방이 오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