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펀드가 LG실트론 투자 실패로 디폴트 상태에 빠졌다. 사진은 LG트윈타워.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보고펀드는 LG그룹 최고경영진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디폴트의 책임이 LG에 있다는 것. 보고펀드 측에 따르면 LG 경영진이 LG실트론의 IPO(기업공개·상장)를 미루면서 엑시트(투자금 회수) 기회를 놓쳤고 LG이노텍 등을 무리하게 지원하면서 우량했던 LG실트론 실적마저 악화돼 상장 자체가 아예 무산됐다는 것이다. “LG 측이 주주 간 계약서상 의무를 위반하고 LG실트론 기업공개를 반대했다”는 것이 보고펀드 측 주장이다.
LG는 변양호 대표를 상대로 ‘신인도 훼손 및 배임 강요’ 등으로 맞소송을 벌이는 등 강력 대응에 나섰다. LG 측은 “주주 간 계약서에는 반드시 상장해야 한다거나 언제까지 완료해야 한다는 조항이 없다”고 밝혔다. LG는 보고펀드 역시 상장 연기 등에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또 2012년 10월 상장예비심사 승인까지 받았지만 공모가가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 보고펀드가 오히려 일방적으로 상장 철회를 주장해 무산됐다고 반박했다.
LG는 그동안 보고펀드가 지속적으로 LG실트론 지분을 매입할 것을 요구해왔던 것도 지적했다. 문제는 보고펀드가 현재 기업가치보다 2~3배 높은 가격에 매입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LG는 이 같은 일이 LG 경영진에 배임을 강요하고 압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LG 관계자는 “보고펀드와 변 대표가 투자 실패의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으며 회사 신인도를 훼손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펀드와 LG의 법적 다툼의 쟁점은 LG실트론의 상장 추진 여부와 그것이 무산된 책임 소재다. 금융권과 재계도 이 대목을 주목하고 있다. 사실 LG 실트론의 상장 논의는 보고펀드가 동부그룹이 보유하고 있던 LG실트론 지분 49% 중 29.4%를 인수했던 2007년에 이미 무르익었다.
재계 관계자는 “당시 동부가 전기로 열연공장 건설 등 급전이 필요해 상장 차익을 포기하면서까지 지분을 매각한 것으로 안다”면서 “사모펀드가 그런 메리트(상장 차익) 없이 들어갔겠느냐”고 반문했다.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의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일명 진대제 펀드)도 2007년 LG실트론 지분 인수전에 뛰어들었으나 고배를 마셨다.
금융권 일부에서는 보고펀드가 주주 간 계약서 작성에 미숙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 같으면 IPO가 무산되면 지분을 되사야 한다거나 경영진이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등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조항을 꼼꼼히 체크했을 것”이라면서 “LG가 강력 대응하는 것은 계약서 등에 자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전했다.
2007년은 국내 사모펀드는 태동기라 할 만한 시기였다. 관료 출신인 변양호 대표가 LG실트론 지분 투자를 주도하면서 이런 부분을 소홀히 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보고펀드 측은 “리먼 브러더스 출신의 이재우 공동대표가 함께 추진한 일이기에 소홀히 했을 리 없다”고 잘라 말했다.
보고펀드 디폴트의 책임은 이제 법정에서 다투게 됐다. 보고펀드와 변 대표, LG가 서로 한 치도 양보할 기색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길고 긴 싸움이 예상되고 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변양호 굴곡의 세월 ‘론스타’로 구긴 체면 되살리나 했더니… 변양호 보고펀드 대표. 연합뉴스 변양호 대표는 행정고시 19회에 합격하며 관료의 길로 들어섰다. 변 대표의 관료 시절 전성기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였다.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까지 오르면서 변 대표는 금융권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변 대표는 재정경제부 내에서 이른바 ‘이헌재 사단’으로 분류되기도 했으며 현재 보고펀드가 ‘이헌재 펀드’를 이어받은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관료에서 물러난 변 대표는 리먼 브라더스 한국 대표 출신인 이재우 공동대표와 함께 2005년 보고펀드를 설립했다. ‘외국 자본에 맞서는 토종 펀드’라는 의미로 장보고에서 이름을 따와 보고펀드라 지었다. 때마침 정부에서는 토종 사모펀드를 적극 육성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터였다. 관료 출신으로서 사모펀드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변 대표는 보고 1호 펀드를 이끌며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잇달아 성사시켰다. 게다가 기나긴 법정 공방으로 실추된 명예를 보고펀드를 통해 회복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25일 디폴트에 빠지면서 다시 한 번 쓴 맛을 보고 있다. [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