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경제팀의 부동산 대출규제 완화 조치가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시키기보다 오히려 집값 하락을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강남의 한 재건축 단지.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결혼 후 6년째 전세로 살고 있는 직장인 서준수 씨(가명·35)의 하소연이다. 서 씨는 서울 노원구 중계동 2억 5000만 원짜리 전용면적 66㎡ 아파트에 살고 있다. 서 씨는 “젊은 사람들이 대출을 못 받아서 집을 안 사는 게 아니고, 집값이 너무 비싸 못 사는 것 아니냐”며 “정부는 자꾸 집값만 올리려 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부는 8월 1일부터 주택대출 규제인 DTI(총부채상환비율)와 LTV(주택담보대출인정비율)을 지역·은행에 상관없이 각각 60%, 70%로 통일시켰다. 특히 서울의 경우 DTI와 LTV가 각각 50%, 60%에서 10%포인트씩 확대된다. 그만큼 받을 수 있는 대출규모가 커지는 것이다. 거꾸로 보면 갚아야 할 부채도 그만큼 많아지는 셈이다.
정부가 대출규제 완화에 나선 주된 이유는 경기 회복에 대한 강력한 시그널을 주기 위해서다.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심리적 기대감을 심어 우선 부동산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계산이다. 부동산시장이 살아나면 경기 전반에 영향을 미쳐 저성장 국면에서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정부 판단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7월 16일 취임사에서 “서민을 위한다는 부동산규제가 오히려 실수요자와 관련 종사자들에게 어려움을 주고 있는 실정”이라며 “경기가 살아나고 심리가 살아날 때까지 거시정책을 과감하게 확장적으로 운용하고, 한겨울에 한여름의 옷을 입고 있는 것과 같은 부동산시장의 낡은 규제들을 조속히 혁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출규제 완화의 직접적 수혜지인 강남 재건축 시장에선 바로 반응이 나타났다. 정부가 DTI와 LTV 완화 등을 담은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지난 7월 24일 발표하자마자 호가(집주인이 부르는 가격)가 오르는 등 부동산 투자 일번지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하지만 정부 대책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 시장의 움직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수요가 제한적인 데다 시장 영향이 미미할 경우는 가장 먼저 침체기로 돌아서는 곳이 재건축시장이기 때문이다.
결국 실수요자들이 어느 정도 움직이느냐에 따라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 성패가 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정부의 집값 부양정책에는 몇 가지 ‘함정’이 숨어있다.
우선 정부 예상대로 부동산 거래가 증가할 것이냐 하는 문제다. 주택시장은 집을 사려는 사람들과 팔려는 사람, 두 부류로 나뉜다. 집을 사려는 사람들은 전·월세 부담에 시달려온 젊은 층으로, 소득이 그리 많지 않은 사회 초년생들이 많다. 앞서의 서 씨처럼 집을 사고 싶어도 집값 부담이 너무 커 사기 힘든 계층이다.
2012년 주거실태조사 결과 우리나라 가구주 1773만 명 가운데 무주택자는 41.5%인 737만 명이다. 이 중 집을 살 여력이 있는 경우는 143만 9000가구뿐인 것으로 현대경제연구원 조사결과 나타났다. 또 국토연구원이 주거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분석한 내용을 보면 전세에서 자가로 전환하는 비율은 2005년 53%에서 2008년 38.7%, 2010년 26.1%, 2012년 23.2%로 점차 감소하고 있다. 그만큼 집을 사고자 하는 의지도, 살 수 있는 여력도 많지 않다는 얘기다.
집값 상승에 대한 불확실성이 큰 것도 문제다.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되고 있고, 거래도 급매물 위주로만 이뤄지고 있어 주택 거래량이 늘어도 집값 상승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지적이 이것이다. 이 또한 대출을 끼고 집을 사기가 부담스러운 이유며 정부가 피해야 할 두 번째 함정이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부동산학)는 “집값 하락이 여전히 예견되고 있어 LTV는 그냥 놔둬도 저절로 확대된다”며 “오히려 금융기관의 회수 압박을 받게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금력이 있는 중상류층이 움직일지 여부도 규제완화 정책 성패를 가르는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50대 유주택자들은 현재 집을 사는 게 아니라 오히려 팔려는 움직임이 강하다. 이들 중 상당수는 2000년대 중후반 주택을 매입,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집값이 하락하면서 자산가치가 크게 떨어지는 쓰디쓴 경험을 한 바 있다. 일명 ‘하우스푸어’ 유경험자들로, 시장이 되살아나는 기점을 매도 타이밍으로 보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승훈 하나대투증권 자산관리팀장은 “자금 여력이 있는 자산가들은 부동산규제 완화로 거래시장이 회복되면 보유중인 부동산을 적극적으로 처분하려고 한다”며 “부동산가치가 하락한 이후 회복되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시세 차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해서”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규제완화정책이 빠질 수 있는 세 번째 함정이다.
마지막으로 지적되는 것은 주택대출이 정부 계획대로 부동산시장에 유입되느냐다. 현재도 주택담보대출의 50% 가까이가 주택과 관련 없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박대동 새누리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을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 3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주택담보대출 총액(221조 1000억 원) 가운데 주택 구입에 쓴 대출액은 106조 3000억 원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주택 구입 외의 목적으로 사용된 대출금은 114조 9000억 원으로 비중이 52%나 됐다. 특히 주택담보로 돈을 빌려 생계자금 등에 사용하고 있는 규모가 20%(44조 3000억 원)에 달했다.
이연정 하나은행 자산관리팀장은 “사금융을 통해 주택담보 대출을 받으러 오는 상담자 대부분이 집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를 통해 사업자금을 마련하려는 수요자들”이라고 전했다. 대출금이 부동산 매수 이외의 용도로 흘러들어갈 경우 부동산 살리기는커녕 가계부채만 증가시켜 금융부실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수영 이데일리 기자 grassdew@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