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언론에 공개된 윤 아무개 일병의 시신 사진은 한마디로 참혹했다. 지난 1일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사진 속 윤 일병의 모습은 가슴과 배 부분이 대부분이 피멍으로 얼룩져 있었다. 공개된 모습은 윤 일병을 사망에 이르게 한 마지막 구타 사건 때 입은 부상인 것으로 알려진다. 아무리 구타를 심하게 했다고 하지만 사진 속의 피멍은 ‘살인’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처럼 가혹한 폭행이 이뤄진 배경에는 아직까지 끊어지지 않고 있는 ‘구타 세습’이 자리 잡고 있다. 이번 사건을 폭로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한 인터뷰에서 이 부대에 구타 행위가 세습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 소장은 “이 사건은 이 아무개 병장이 주범이고 지 아무개 상병이나 종범들이 끊임없이 구타를 했다”며 “그 피해자(윤 일병)가 전입 오기 전에 지 아무개 상병은 죽을 만큼 두들겨 맞았다라는 표현들이 진술에서 나왔다”라고 밝혀 구타행위가 세습됐음을 폭로했다. 폭행 세습에 대한 논란은 윤 일병에 앞서 3개월 전 전입한 직속 선임인 이 아무개 일병도 가혹행위를 당하다 윤 일병 전입 후 가해자로 바뀌었다는 의혹으로도 퍼지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군은 “자세한 내용을 지금 파악 중에 있다. 검찰에서 그 내용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28사단 포병연대 의무대 윤 아무개 일병이 선임병에게 폭행을 당해 사망했다. 윤 일병의 전신이 폭행으로 인해 멍든 모습. 사진제공=군인권센터
이렇게 구타 세습이 가능했던 것은 윤 일병의 의무대가 독립된 섬처럼 존재하며 간부들의 감시 사각지대에 놓여있었기 때문이었다. 윤 일병의 의무중대는 대대본부와 떨어져 있어 상대적으로 간부들의 관리가 소홀했다. 이 의무중대를 지휘하는 간부는 하사 한 명이었는데 이 하사마저도 사실상 주범인 이 아무개 병장보다 어려 이 병장을 “형님, 형님”이라면서 따르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앞서의 임태훈 소장은 이에 대해 “조직폭력배들이 힘겨루기 마냥 아랫사람을 힘으로 제압하는 식의 범죄 집단 비슷한 구성이 돼있었다”라며 “일반적으로 다른 부대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상황들이 이곳에서는 벌어졌다”고 전했다.
윤 일병에 대한 본격적인 폭행이 시작된 것은 ‘대답이 느리고 인상을 쓴다’는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2주간의 대기기간이 끝난 직후인 3월 3일부터 이 아무개 상병은 윤 일병의 가슴부위를 때리는 등 지속적인 폭행을 자행했다. 주범인 이 아무개 병장은 ‘대답을 제대로 못한다’며 마대자루가 부러지도록 윤 일병의 허벅지를 폭행하는가 하면 이 상병도 부러진 마대자루로 윤 일병의 종아리를 마구 때렸다. 신병의 경우 심한 압박감 속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정상인도 처음 몇 달 간은 어눌해지고 정신이 없는 게 보통이다. ‘대답이 느리다’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폭행을 하는 것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폭행의 이유도 다양해졌다. 3월 8일에는 ‘어눌하게 대답한다’는 이유로 지 아무개 상병까지 동참해 3명이 번갈아 돌아가며 윤 일병의 복부와 가슴, 턱을 폭행했다. 견디다 못한 윤 일병의 입에서는 “살려 달라”는 절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지만 가해자들은 이에 아랑곳없이 2~3시간씩 기마자세까지 강요했다.
이 병장이 휴가를 떠났던 3월 17일 전후로 폭행은 극에 달했다. 그는 윤 일병이 걸을 수 없도록 다리를 폭행한 뒤 휴가를 나갔는데 이 때문에 윤 일병은 허벅지 통증으로 전투화를 일어서서 닦아야만 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본 이 상병은 편의를 봐주기는커녕 윤 일병을 넘어뜨리고 옆에 있던 지 상병 역시 아파하는 윤 일병의 반응이 웃기다며 허벅지를 계속 찔러댔다. 3월 19일에는 윤 일병의 무릎이 형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퉁퉁 부어올랐는데 지 상병은 “무릎이 사라졌네. 존나 신기하다”며 무릎까지 찔렀다.
폭행의 강도가 심각해져갔지만 간부들도 이를 알면서도 묵인했다. 3월 29일 하 아무개 병장은 “목소리가 작고 행동이 느리다”며 윤 일병의 가슴과 복부를 폭행한 뒤 욕설을 퍼부었다. 알고 보니 “네가 분대장이니 때려서라도 군기를 잡으라”는 유 아무개 하사의 지시를 따른 것이었다. 이렇게 간부급까지 폭행을 부추기거나 가혹행위에 대해 모른 척 한 정황을 볼 때 구타와 폭행이 이 부대의 관행은 아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럴 경우 부주의에 의한 상해치사를 적용할 것이 아니라 살인죄와 성추행 죄 등 보다 엄격한 법 적용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이처럼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부터 밤까지 수십 대를 맞아온 윤 일병은 결국 건강이 악화됐다. 이를 본 가해자들은 윤 일병에게 링거 수액을 투약했는데 문제는 치료 후 약간 기력을 회복하자 또 다시 폭행을 가했다는 점이다. 가해자 4명은 링거를 맞은 다음날인 3월 30일 밤새도록 경례, 제식동작, 도수체조 등을 시켰으며 윤 일병이 잠을 자지 못하게 돌아가면서 감시까지 섰다.
또한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잘못이 드러나지 않게 철저히 윤 일병을 빼돌렸다. 가족 초청 운동회가 있는 날에도 “점수가 부족해 윤 일병은 가족들을 초청할 자격이 없다”며 면회를 방해했으며 독실한 기독교 집안인 것을 알고도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했을 정도다.
이 같은 괴롭힘은 윤 일병이 사망하는 날까지 계속됐다. 4월 5일 점호가 끝난 오후 9시 45분부터 이 병장은 다음날 새벽 2시까지 4시간 동안 미친 듯이 윤 일병을 폭행했다. 다음날 날이 밝아서도 폭행은 이어졌고 이 병장은 윤 일병에게 비타민 수액을 주사한 다음 또 괴롭혔다. 이날엔 고문 수준의 가혹행위도 이뤄졌는데 이 병장이 뱉은 가래침을 핥아 먹게 하고 얼굴과 허벅지의 멍을 없애기 위해 안티푸라민을 바르면서 윤 일병의 성기에도 약을 발라버렸다.
폭풍 같은 오전이 지나가고 오후 3시 30분 결국 사고가 발생했다. 냉동식품을 사와서 다함께 먹는 도중에 폭행을 가한 것. 4명의 가해자들은 정수리 부분과 배 부위를 폭행하고 엎드려뻗쳐를 시킨 상태에서 폭행을 계속했다. 1시간 후 윤 일병이 오줌을 싸며 쓰러졌는데도 맥박과 산소포화도 측정을 한 결과 정상으로 나오자 꾀병을 부린 거라며 폭행해서 넘어뜨렸다. 하지만 그렇게 쓰러져버린 윤 일병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며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다음날인 4월 7일 결국 숨지고 말았다.
가혹행위를 주도한 이들은 윤 일병이 잠을 자지 못 하게 돌아가면서 감시까지 섰다.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윤 일병 ‘살해’에 가담한 가해자들이 적극적으로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점이다. 이 병장의 주도아래 가해자들은 윤 일병이 음식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다 갑자기 쓰러졌다고 말을 맞췄다. 평소에도 구타나 가혹행위가 전혀 없었으며 평소 화목했다는 뻔뻔한 거짓말도 해댔다. 하 병장은 윤 일병의 관물대를 뒤져 수첩 2권을 찢어버리기까지 했다. 자칫 윤 일병의 억울한 죽음이 묻힐 뻔했지만 수사과정에서 폭행이 있었다는 진술을 입수, 헌병대가 ‘윤 일병이 깨어날 것 같다’고 하자 그제야 가해자들의 자백이 이뤄졌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이번 사건을 낱낱이 고발한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가해자들은 1개월 동안 잠도 재우지 않은 채 쉬지 않고 집단 폭행을 했다. 그 정도쯤 되면 사망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가해자들은 폭행을 멈추지 않았으며 빈도와 강도를 높여갔다. 진술서에서도 이 병장은 사건 이전에 ‘윤 일병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윤 일병이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이 병장과 지 상병은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했다. 이는 살해의도가 명백하다. 상해치사로 된 공소장을 살인죄로 변경하고 성추행 부분도 추가로 기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임 소장은 “윤 일병에 대한 가혹행위는 알려진 것 외에도 다른 정황들도 있다. 그것은 앞으로 군 당국이 이 사건에 있어서 공소장 변경이라든지 성추행에 대한 추가 기소를 하지 않으면 추가로 우리가 준비한 것들을 폭로할 예정이다”라고 밝혀 향후 윤 일병 사건에 대한 또 다른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날 가능성도 있다.
한편 지난 7월 31일 국방부는 내무반에서 상습적으로 구타와 가혹행위를 해 후임병을 숨지게 한 혐의(상해치사)로 이 아무개 병장 등 5명을 구속 기소하고 나머지 1명은 폭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또한 군은 윤 일병에 대한 구타와 가혹행위를 확인하고 지휘감독 책임을 물어 연대장과 대대장 등 간부 16명을 징계했다. 하지만 이번 구타사망사건은 22사단 임 아무개 병장의 총기난사 사건이 나고 군이 병영생활을 혁신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로 뒤의 일이라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사건이 터지고 ‘개선해 나가겠다’고 빠져나간 뒤 또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한 ‘제 2의 윤 일병’이 또 다른 부대에서 지금도 신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