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7·30 재보선이 끝나자마자 현역 의원들에 대한 광범위한 비리 수사에 착수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과거 정부 집권 2년차까지의 사정 정국을 살펴보면 일정한 사이클이 나타남을 확인할 수 있다. 1년차 때는 공기업과 재계를 향해 사정 칼날을 휘두르며 정부 기틀을 잡는 데 공을 쏟는다. 그러다 2년차로 접어들면 어김없이 정치권 인사들이 검찰 수사를 받으며 곤욕을 치렀다. 이를 놓고 지난 정권에 대한 표적 수사 논란이 되풀이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8년 출범한 MB 정부가 임기 초반부터 공공기관과 기업을 강하게 몰아붙인 뒤 이듬해부터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도 이와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지난해 몇몇 공기업과 재벌들을 수사한 데 이어 올해부터 본격적인 정치권 사정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기 내각 주요 과제로 경제 회복과 관피아로 대표되는 부정부패 일소를 내걸었다. 한 손엔 경제, 다른 손엔 사정을 쥐고 국정을 이끌어 나가겠다는 의지로 풀이되는데 관피아의 ‘몸통’이 정치권이라는 게 박 대통령 판단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정치권을 조준하고 있는 현 정부 검찰 움직임은 지난 정부들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우선 야권은 물론 여권으로까지 메스를 들이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검찰 리스트에 오른 정치권 인사들 중에선 집권당 주류인 친박계를 포함해 새누리당 의원도 상당수다. 수사 대상도 과거에 비해 대폭 늘어났다. 이처럼 현역 의원들이 무더기로 비리 수사선상에 오른 것은 극히 이례적인 것으로 이는 대통령 재가 혹은 묵인 없인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여권 핵심부가 어떤 의도 하에 정치권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는 얘기다.
검찰도 그 어느 때보다 정치권을 벼르는 모습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 축소 의혹을 비롯해 채동욱 전 총장 혼외자 논란, 유병언 검거 실패 등 체면을 구길 때마다 정치권으로부터 수모를 당했던 검찰로서는 앙갚음할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유병언 부실 수사 책임을 물어 김진태 현 총장에 대한 사퇴 요구를 했던 정치권이 대대적인 수사 개시 후 침묵하고 있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의 한 고위 인사는 “세월호 참사와 선거 정국 때문에 미뤄졌던 수사를 한꺼번에 하다 보니 그 규모나 범위가 커진 것일 뿐”이라면서도 “정권이 바뀐 후 정치권 인사들에 대한 자료를 많이 수집해 비축해 왔던 건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현재 정치권 사정 선봉에 서 있는 곳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다. 대검 중수부 폐지 후 사실상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검찰 내 최정예 부대다. 서울중앙지검 3차장 산하에 있는 특수 4개 부서가 모두 관피아 척결 연장선상으로 정치권을 정조준하고 있다. 앞서의 서울중앙지검 인사는 “내부적으로는 김진태 총장 체제의 성패를 좌우할 수사로 보고 있다. 중수부 폐지 후 현역 의원 최초 사법처리라는 영광을 차지하기 위해 각 부서가 물밑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 그만큼 실적도 좋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철피아’ 비리를 수사하고 있는 특수 1부는 조현룡 새누리당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8월 7일 청구했다. 조 의원은 철도부품 납품업체 삼표이앤씨로부터 1억 6000만 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를 받고 있다. 조 의원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의혹을 부인하고 있지만 검찰은 모든 증거를 확보했다며 입증을 자신한다. 검찰은 조 의원 외에도 철도업체로부터 로비 명목으로 금품을 받은 의원들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 회원들이 6월 23일 인천지방검찰청 앞에서 해운비리 연루 의혹을 받는 박상은 의원의 구속 수사를 촉구했다. 연합뉴스
철피아 수사가 특히 주목받고 있는 것은 주로 여권, 그것도 친박계 인사들이 수사 리스트에 올라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미 구속된 권영모 전 새누리당 수석대변인, 철도 부품업체 AVT사의 이 아무개 대표 등에 대한 조사를 통해 새누리당 의원 3~4명에 대한 비리를 포착했다고 한다. 이 대표 등은 정권이 바뀐 후 입찰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정권 실세들에게 접근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에 따르면 친박계로 분류되는 K, S 의원과 원외 친박 인사 C 씨 등이 이 대표와 각별한 관계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이 중 한 명은 철피아 수사를 막기 위해 압력을 행사한 의혹도 받고 있다.
서울종합예술실용전문학교(서종예)의 입법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특수 2부는 야권 중진급 의원 세 명을 겨누고 있다. 수사팀은 신계륜·신학용·김재윤 새정치연합 의원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하고 있다. 이들은 서종예 교명에서 ‘직업’을 삭제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켜주는 대가로 금품을 받은 혐의다. 세 의원은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지만 검찰은 김민성 서종예 이사장이 돈을 줬다고 밝힌 시기에 이들 의원실 관계자들이 국회 안 ATM기에 현금 뭉치를 입금하는 장면이 담긴 CCTV 화면을 확보하는 등 결정적인 증거를 잡은 상태다.
검찰은 김 이사장이 세 의원 외에도 법안 통과를 위해 또 다른 여야 환노위 의원들에게도 금품을 건넸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해당 법안은 지난해 9월 신계륜 의원이 대표 발의했으며, 야권 의원 17명과 새누리당 의원 3명이 법안에 서명했다. 당시 교육부와 고용노동부가 끝까지 반대했지만 지난 4월 21일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진통 끝에 통과된 바 있다.
수사의 ‘키맨’인 김 이사장은 비교적 검찰 수사에 협조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그의 ‘입’에 따라 수사 방향이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선 보수적 성향인 김 이사장이 야권보다는 여권 인사들과 더 친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새정치연합의 한 의원은 “김 이사장이 전략적으로 우리 쪽 비리만 흘리고 있는 것 같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그러나 검찰은 김 이사장 조사 과정에서 친박계 전직 의원 L 씨, 새누리당 K 의원, 야권의 K·S 의원, J 전 의원에 대한 비리 정황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수사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수3·4부는 ‘통피아(통신+마피아)’ 비리 척결을 진행하고 있다. 각각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과 한국전파기지국을 수사하고 있다. 그동안 내부 비리 문제를 파헤치며 몸을 풀어온 수사팀은 정·관계 로비 여부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본다는 방침이다. 특수 3부의 한 관계자는 “구 정보통신부 시절부터 정치권을 상대로 한 뿌리 깊은 로비 관행이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면서 “수사의 본류는 통피아들로부터 금품을 받은 전·현직 국회의원들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수사팀은 새누리당 H 의원과 새정치연합 J 의원이 지난 정권에서 특정 업체로부터 돈을 받고 인·허가 과정에 개입했다는 첩보를 입수, 은밀히 내사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아니지만 현역 의원을 수사하고 있는 곳이 하나 더 있다. 인천지검 해운비리 특별수사팀이다. 인천지검은 지난 6월 12일 박상은 새누리당 의원 운전기사가 “불법 정치자금으로 의심된다”며 박 의원 차량에서 현금 3000만 원을 가지고 와 신고하자 수사에 착수한 바 있다. 박 의원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뿐 아니라 해운업체와의 유착, 임금갈취 등 10여 개의 비리 혐의를 받고 있다. 수사팀은 박 의원이 해운업계와 의원들을 연결해주는 가교역할을 했다는 제보에 따라 이 부분 수사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박 의원 수사가 향후 정치권으로 튈 것으로 추측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