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11일 열린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회 중앙위 워크숍에서 박근혜 대선 후보와 김무성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관료 출신인 새누리당 초선 의원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최근의 사정 정국 이야기가 나왔다. 역대 정부가 검경을 앞세워 여의도를 ‘공포정치’로 통제한 것의 말로가 좋지 않았다며 그는 “적을 만드는 정치는 꼭 그 적 때문에 죽기 마련”이라고 했다.
6월 지방선거, 7월 14일 새누리당 전당대회, 7월 30일 재·보궐 선거라는 빅 이벤트가 끝난 지금, 정가에선 벌벌 떠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건도 각양각색이어서 종잡을 수 없다는 푸념도 들린다. 국회의원 보좌진 사이에서도 ‘누구는 큰일 났다더라’, ‘누구도 연관된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한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런 말을 들려줬다.
“완전 도돌이표다. 평행이론이다. 이명박 정부도 강부자(강남 땅부자)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인사로 비판을 받았고, 임기 첫해에는 미국산 광우병 파동 수습에 세월을 보냈다. 대선 공신들끼리 싸우더니 상왕이라던 SD(이상득)도 정치 일선에서 후퇴했다. 그런데 이번 정부도 수첩인사로 대표되는 인사파동을 겪고 있고 아예 청문회 트라우마라는 말도 쓴다. 지난해엔 서해 북방한계선(NLL) 논란으로 올해에는 세월호 참사로 시간을 잃고 있다. 가장 힘 받아 팍팍 나아가야 할 때 지지율은 급락하고…. 그러니 칼을 휘둘러 잔챙이라도 잡아 본보기를 보여주려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MB는 너무 도가 지나쳤고,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순간이 오면서 만신창이가 됐다.”
철피아(철도 마피아) 비리 의혹으로 새누리당 조현룡 의원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같은 당 박상은 의원도 세월호 사건으로 불거진 해운비리 의혹에 걸려 조사를 받았다. 서울종합예술직업학교를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로 이름을 바꾸는 데 일조한 신계륜, 김재윤, 신학용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검찰이 소환을 앞두고 있다. 공통점은 있다. 거물이 아니라는 점, 여야 가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에 밝은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사실 이 사정 정국이 선거들 때문에 좀 뒤로 밀린 감이 있지만 BH(청와대)에서는 예전부터 만지작거렸던 것으로 안다. 결국은 타이밍을 본 것인데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한 듯하다. 2기 내각이 완성됐고 정기국회가 바로 목전이다. 공직사회 개혁, 경제 활성화, 연금 개혁 등에 대대적으로 나서야 할 때이니 국회 군기 잡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야권만 때려서는 정치탄압이라 할 것이고, 여권만 때리면 노림수가 있다고 볼 것이어서 마구 뒤섞은 것 같다. 결국은 목표는 하나 아니겠는가. 나 아직 살아있다. 좋은 말로 할 때 같이 잘 가보자.”
사정정국과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여러 정치권 인사들과 이야기하다보면 꼭 나오는 이름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였다. 비박 신당권파로 분류되는 김 대표가 전당대회에서 서청원 최고위원을 누르고 당선되면서 당 내부가 요동치는 것을 청와대가 바로잡으려 한다는 해석이다. 김 대표에게 줄 서는 범친박에게 엄포를 놓고 있다는 것이다.
몇몇 새누리당 의원의 검찰 수사는 결국 김 대표에 보낸 경고장일 수도 있다는 관측이 있다. 김 대표가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과 관련해 경찰의 후진적 수사를 지적한 것을 두고 일부 정치권 호사가들은 “김 대표는 왜 경찰만 혼내고 검찰에 대해선 가타부타 말이 없나”라며 입을 모았다. 정치권을 향해 칼을 겨누는 검찰에만큼은 저자세 아니냐는 목소리다.
실제 서청원 최고위원은 전당대회에서 김 대표에게 “누가 선주협회 돈으로 외국을 다녀왔고 누가 정치자금을 받았는지 다 알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김 대표가 선주협회 돈으로 외유를 갔다는 의혹 제기였다. 또 5선 정도 되면 갖은 민원과 청탁에 시달렸을 것이고, 의혹을 제기할 만한 곳에서 후원금도 좀 받지 않았겠느냐는 말들도 했다. 털면 다 먼지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친박계 한 재선 의원은 “여의도에서 레임덕 이야기가 너무 빨리 나왔다. 서 최고위원은 이제 언론에 보도조차 되지 않는다. 최경환, 안종범 등 충성도 높은 친박 인사는 내각으로 모두 빼갔다. 당에 구심이 없는 와중에 자신들의 공천 문제가 걸려 있는 의원들 입장에서는 현재권력보다 미래권력에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며 “당장 지금을 본다면 김 대표가 대권에 가장 가까이 가 있는 것 아니냐”고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가 있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이런 식의 ‘사정정국 기획설’은 여의도 정가가 좋아하는 스토리이긴 하지만 그렇게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우선 세월호 참사가 없었다면 해운비리 사건은 나올 수 없었다. 또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자 논란 등으로 검찰이 기획성 있는 사건을 만들 틈도 없었다는 것이다. 또 민심과 당심을 얻어 당 대표가 된 사람을 겁줘서 남는 게 뭐가 있느냐는 말도 들을 수 있었다.
“김 대표는 대선에서 박근혜 캠프의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았던 사람이다. 그가 쥔 것은 없겠는가”라고 말한 정치권 한 관계자는 “서로가 물고 물려 있기 때문에 하나가 터지면 다 터지는 구조”라고 했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