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7월 24일 새 경제팀의 경제정책방향을 주제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진행했다. 사진제공=청와대
최근 사석에서 만난 한 청와대 관계자의 말이다. 실로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2년차인 2014년을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내는 해’로 만들겠다며 의욕적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세월호 침몰 참사로 한 해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4개월여에 걸쳐 국정 표류에 시달렸다.
정기국회 개회 직후로 예정돼 있는 추석 연휴(9월 6∼9일) 이후에도 민심을 확실하게 잡지 못한다면 주요 국정 관련 법안과 내년도 정부 예산안 처리 등에 줄줄이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게 이 관계자의 진단이었다. 잘못하면 올 한 해도 빈손으로 끝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5년 단임 대통령제 하에서 실질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집권 3년차까지라는 게 정치권의 상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우려엔 ‘지금 이 시기에 박근혜 정부 성패가 결정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서의 청와대 관계자는 이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사견일 뿐이라고 분명히 못을 박았지만 최근 나타나고 있는 일련의 흐름,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 및 정부·새누리당 고위 인사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여권 수뇌부를 중심으로 추석 민심을 잡기 위한 다각도의 전략과 구상이 마련되고 있으며 이미 상당 부분은 실행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의 추석 민심 잡기 총력전은 이미 시작됐다는 얘기다.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징후는 ‘최경환노믹스’로 이름 붙여진 민생·경제 활성화 몰아치기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임식을 열기 전부터 한국은행의 금리인하 필요성을 공개 언급하는 등 말 그대로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근혜노믹스’가 아닌 ‘최경환노믹스’라는 말이 시장에서 통용될 정도다.
최 부총리는 내수 살리기를 위해 41조 원가량을 쏟아 붓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하반기 경제운용방향을 제시하더니 투자 활성화와 내수 살리기에 초점을 맞춘 세제 개편안 발표, 공공부문 개혁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 추진, 공무원·군인 연금 개혁 등을 쉴 새 없이 몰아치고 있다. 지난 8월 8일에는 긴급 경제관계 장관회의를 열고 국회를 향해 경제 살리기 관련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기도 했다.
최경환 경제팀은 추석 전까지 줄줄이 이어지는 무역투자진흥회의와 경제관계 장관회의, 국민경제자문회의 등 경제 관련 3대 회의를 통해 경제 살리기 대책을 계속 쏟아낼 예정이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경제 살리기에 나서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말 그대로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추석 민심을 겨냥한 또 다른 징후는 고강도 사정과 부정부패 척결 움직임이다. 새누리당 박상은·조현룡, 새정치민주연합 신계륜·신학용·김재윤 의원에 대한 검찰의 비리혐의 수사는 더 큰 폭풍을 예고하는 전조에 지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국무총리실 산하에 신설된 부패척결추진단은 지난 8일 ‘깨끗하게 거듭난 대한민국을 위한 부정부패 척결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이날을 ‘부패와의 전쟁 출정식’이라고 명명했다. 검·경과 감사원, 각 부처가 총동원돼 공직사회와 민간영역에 만연한 부정부패 적폐를 뿌리 뽑겠다는 취지다. 정홍원 총리는 “모든 의지를 부패 척결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범정부 차원에서 ‘○○와의 전쟁’이라는 식의 슬로건을 내걸기는 지난 1990년 초반 ‘범죄와의 전쟁’ 이후 20여 년 만이다.
정부는 부정부패로 발생한 이익은 몇 배로 추징하는 쪽으로 관련법을 정비하기로 했다. 또 ‘부패사범 관리위원회’를 설치해 부패 행위자에 대한 기록을 관리하고 이들의 명단을 공개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비위 공무원 징계시효를 연장하고 부패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한 주민소환, 주민감사 청구요건도 대폭 완화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이들 대부분은 국회 입법 과정을 거쳐야 하는 과제들이다.
최경환 경제팀의 경제 살리기 총력전, 정홍원 총리를 중심으로 한 국가 대혁신 총력전이 이미 실행에 옮겨지고 있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는 게 여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내각 차원의 움직임과 별개로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가 ‘플러스 알파’를 내놓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박 대통령이 국민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데 방해가 되는 정치적인 사안이나 인사들을 정리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는 2기 내각 출범에도 불구하고 추가 인적쇄신이라는 카드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주장이어서 주목된다.
이와 관련해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사람은 황교안 법무장관이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황 장관은 2기 내각 구성 때 유력한 교체 대상으로 검토됐던 인물”이라며 “안고 가는 게 부담이 된다면 대통령이 언제든지 교체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 확인 지연과 이로 인한 국민 신뢰 상실, 행정력 낭비 등을 질타하면서 이성한 경찰청장을 경질했지만 김진태 검찰총장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검찰에선 수사를 지휘했던 최재경 전 인천지검장만 옷을 벗었다. 이를 두고 형평성이 상실된 조치라는 지적이 나왔다. 경찰 내부에선 “경찰청장이 인천지검장과 동급이냐”는 자조 섞인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총장 대신 황 장관 교체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김기춘 비서실장 교체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김관진 실장은 국방부 장관 시절 육군 제28사단 윤 아무개 일병 사망 사건을 보고받고도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축소·은폐에 일조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김기춘 실장도 잇단 인사 참사와 불통 논란에 대한 책임론 등으로 끊임없이 야당의 공격을 받아오고 있다. 현재까지 청와대 관계자들은 두 사람의 경질 가능성에 대해 단호하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윤두현 홍보수석이 이례적으로 기자간담회를 자청, 두 사람의 거취 관련 설왕설래에 대해 선을 그은 것도 이런 기류를 반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교체 가능성이 사설 정보지에까지 계속해서 오르내리는 이유는 여권 내에서 이들의 교체 여론이 만만찮다는 점을 보여준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