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실장이 속한 친박계 원로모임 ‘7인회’는 권력으로 작동하기보다 상징적 의미로 남았다. 연합뉴스
친박근혜계 권력을 지칭할 때 흔히 쓰는 단어들이다. 유달리 친박계에 비유적인 표현이 많은 것은 박 대통령이 권력 집중을 용인하지 않고 소수의 측근을 통해 인의 장막을 형성하고 있어 바깥에서 그 실체를 알 길이 요원해서다. 대개 언론이나 여의도 정가를 통해 만들어지고 유포된 용어들이기에 적확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김기춘 비서실장이 박 대통령의 가장 든든한 우군이자, 현 정권 최고 실세라는 데엔 이견이 없다. 김 실장은 지난해 말 외아들의 불미스런 사고 소식이 외부에 알려졌음에도 꿋꿋이 대통령비서실을 지키며 제 역할을 해내 박 대통령의 무한신뢰를 얻었다. 취임 1주년을 맞은 지난 6일 김 실장의 사표 제출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불거졌지만 청와대는 즉각 부인했다.
여권 일각에서는 2기 개각이 마무리된 시점에서 김 실장이 청와대 바깥으로 나오고 싶은 눈치지만 주변에서 붙잡고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친박계 한 보좌관은 “박 대통령을 비롯해 측근들이 김 실장 사퇴를 극구 만류하는 것 같다. 김 실장이 빠지면 박 대통령 힘도 같이 빠질 수 있고 당·청관계가 흩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라고 전했다.
김 실장이 속한 친박계 원로 모임 ‘7인회’는 권력으로 작동하기보다 상징적 의미로 남았다. 7인회 멤버 대부분 역시 여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대신 청와대 안팎에선 ‘신 7인회’ 또는 ‘김기춘 키즈’로 불리는 세력이 부각 중이다. 김 실장을 필두로 황교안 법무장관, 김영한 민정수석, 우병우 민정비서관, 권오창 공직기강비서관, 김학준 민원비서관, 김종필 법무비서관 7인이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판·검사 출신으로 ‘공안통’ 내지 ‘특수통’으로 활약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중 김학준 비서관을 제외하면 전원이 영남 출생으로 임명 당시 인사 편중 문제가 지적되기도 했다.
7·30 순천·곡성 재선거에 당선돼 국회로 입성한 이정현 최고위원. 이 최고가 2기 내각에서 당·청관계를 어떻게 조율해 나갈지가 초미 관심사다. 연합뉴스
현재 김 실장의 ‘신 7인회’를 견제하면서 대등한 위치에 놓일 수 있는 이는 7·30 전남 순천·곡성 재선거에 당선돼 국회로 입성한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있다. 지난 2004년 17대 총선에서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이 최고위원은 18대 국회 비례대표를 거쳐 현 정권 청와대 정무수석과 홍보수석을 맡으면서 명실상부 친박계 핵심축이 됐다. 정치권에서 이 최고위원은 박 대통령 ‘입’으로 통한다.
김 실장에게 ‘7인회’가 있다면 이 최고위원에게는 ‘11인 회의’가 있었다. 11인 회의란 박 대통령 당선인 시절부터 이 최고위원 주도로 열렸던 수석비서관급 회의를 일컫는다. 청와대 안에서는 사실상 국무회의 아젠다 세팅을 비롯해 박 대통령 일정에 이르기까지 국정과제 전반이 조정되는 자리로 알려졌다.
11인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은 이정현 정무수석(당시 직책)을 비롯해 이남기 홍보수석, 최형두 홍보기획비서관, 백기승 국정홍보비서관, 김선동 정무비서관,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김행·윤창중 대변인, 최상화 춘추관장, 홍남기 기획비서관, 오균 국정과제비서관이다. 이들 가운데 현재도 청와대에 남아있는 인원은 유민봉 수석, 최상화 춘추관장, 홍남기·오균 비서관 정도다. 나머지는 청와대를 떠나 공공기관장(이남기·김행)이나 국회(최형두)로 가거나 정치활동 재개를 준비 중(김선동)이다.
이 최고위원 역시 청와대를 떠나 국회로 입성한 만큼 2기 내각에서 당·청 관계를 어떻게 조율해 나갈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새누리당 한 전략통은 “홍문종 의원이 최고위 입성에 실패하고 윤상현 사무총장도 2선으로 물러나면서 친박계가 김무성 지도부를 효과적으로 견제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결국 이정현 최고위원에게 힘이 실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 최고위원이 청와대에 있을 때 주재했던 회의가 사실상 국무회의라고 할 정도였다. 그 후임격인 조윤선·안종범 수석에게 그만큼의 권한이 주어질 지는 의문”이라고 전했다.
김 실장이 청와대 상층부를 장악하고 이 최고위원이 당·청관계 키를 쥐고 있다면 밑바닥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쥐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실무진 그룹도 존재한다. 이른바 십상시(十常侍 : 중국 후한 말 영조 때 정권을 잡아 조정을 농락한 10명의 환관)다. 한 보수 일간지에서 사용하면서 통용되기 시작한 ‘십상시’는 당직자 출신이나 친박계 의원 보좌관 출신이면서 오랫동안 박근혜 대통령을 조력해온 이들을 지칭한다.
앞서의 여권 전략통은 “십상시라면 부정적인 어감이 있지만 실상은 현 정권의 밑그림을 그리고 밑바닥에서 권력 누수를 막는 중요한 사람들”이라며 “대체로 지난 대선 캠프에서 요직을 맡은 실무진 그룹이라고 보면 된다. 이들 중 2007년 당내 경선 캠프 때부터 함께했다면 성골, 그 이후라면 진골로 나눠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십상시 그룹대표는 박 대통령 초선 의원 시절부터 가까이서 보좌하면서 ‘문고리 권력’을 형성해 온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 부속실비서관, 안봉근 제2 부속실비서관 3명이다. 이들 ‘문고리 3인방’이 근무하고 있는 부속실은 흔히 민정수석실이나 홍보수석실보다 위세가 강하다는 말이 많다.
캠프 메시지팀장을 맡았던 조인근 연설기록비서관 역시 십상시 일원으로 박 대통령의 오랜 복심으로 꼽힌다. 문장 실력이 뛰어난 조 비서관은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이명박 캠프 측에서도 탐을 냈을 정도였다고 한다. 특히 드물게 호남 출신이라는 점에서 이정현 최고위원과도 호흡이 잘 맞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밖에도 전략기획팀장 장경상 전 행정관, 최진웅 연설기록비서관실 행정관, 일정기획팀장은 맡은 이창근 부속실 행정관 등도 2007년 당내 경선 시절부터 박 대통령과 호흡을 맞췄던 실무진이다. 최진웅 행정관은 김무성 대표, 이창근 행정관은 한선교 의원 보좌관 출신이다.
현재 십상시 그룹 위세는 이미 7인회를 뛰어 넘었다는 전언이다. 청와대 파견 근무 중인 한 인사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사태 당시 7인회에서조차 빨리 정리해야 한다는 인터뷰가 나왔을 때도 실무진 그룹에선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7인회와 같은 정치인 출신보다는 오히려 뉴라이트 같은 외부 조직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분위기였는데, 이때부터 7인회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라고 전했다.
최근 2기 내각에 들어서면서 친박계 십상시 그룹에도 고민은 있다. 권력은 유한하고, 청와대 어공(어쩌다 공무원) 생활 역시 한정될 수밖에 없는 까닭에서다. 이 때문에 최근 청와대 안에서는 이태호 전 행정관 사례에 관심이 쏠렸다는 후문이다. 허태열 전 비서실장을 오랫동안 보좌해 온 이태호 행정관은 일찌감치 청와대 생활을 접고 본격 정치권에 입문한 뒤 지난 6·4 지방선거 때 도의원으로 당선됐다.
결국 2기 내각 성공 여부는 실무진 그룹을 일치단결시키는 것에 달렸다는 게 중론이다. 앞서의 청와대 관계자는 “십상시란 어디까지나 실무진일 뿐, 정권 핵심으로 보는 것은 위험하다. 되레 비박 진영에서 조장하는 있는 것은 아닌가”라며 “다만 이들 중 몇몇이 청와대 지휘계통이 아닌 바깥의 비선라인을 잡고 움직이고 있다는 의혹이 따라다닌다. 당이나 친박계 원로 그룹에서 적절하게 제어해줘야 하는데 최근 그마저도 안 되는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