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군인권센터가 연 28사단 구타 사망사건 피해자 윤일병 추모제에서 군 의문사 희생자 부모들이 자식의 영정을 든 채 슬픔에 잠겨 있다.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2002년 5월 육사근무지원단 소속 정은호 일병(가명·당시 21세)은 부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족들이 당장 부대로 달려갔지만 누구도 정 일병의 죽음에 대해 속 시원히 말해주지 않았다. 그날부터 유가족과 군의 긴 싸움이 시작됐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잠겨 있는 정 일병의 부모를 대신해 작은아버지 정 아무개 씨가 나섰다. 정 씨는 “조사가 시작되자 헌병대에서 철저히 조사하겠다며 안심하라고 말했다. 필요하거나 알고 싶은 자료가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라더라.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무언가를 숨기려 했고 자살로 몰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였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작은아버지 정 씨가 최근 <일요신문>에 밝힌 가장 안타까워하는 부분은 “군이 사건 초기부터 자살로 몰아가려는 시도에 대해 철저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의문사 가족들도 똑같이 겪는 문제일 것이다. 군은 최대한 시간을 늦추고 미적거리며 미온적으로 대응해 유가족들의 진을 빼 놓은 다음 슬며시 자살로 몰아가려고 한다. 유가족들도 그냥 군에서 강요하는 대로 따라가게 되더라”며 후회했다.
정 씨의 얘기를 계속 따라가 보자. 부검도 헌병대의 강요로 이뤄졌다고 한다. 정 씨는 “자살이라는 법의학적 자료를 남겨놔야 추후 문제가 되지 않으니 그랬던 것 같다. 군을 믿지 못해 서울대에 부검을 맡겼지만 이 또한 쉽지 않았다. 부검의에게 제공해야 할 사고현장에 대한 자료를 전혀 주지 않아 사망원인을 규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조카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정 씨도 부검에 참여해 비디오 채증까지 했지만 전문지식이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부검결과 정 일병의 사인은 목을 매 죽은 ‘교사’였다. 그러나 석연치 않은 부분이 너무 많았다. 정확한 사망시간을 알기 위해 군부대 내 통화기록 자료를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거절당했다. 사단장으로부터 제공 약속을 받았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날짜를 미루다 결국 흐지부지된 것. 유서도 날조됐다.
작은아버지 정 씨는 “군에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훈련소 생활부터 매일 일기 비슷한 걸 쓰게 한다. 조카도 자신의 심경 등을 빼곡하게 기록해놨더라. 이게 사후에 유서로 둔갑했다. 유가족에게는 일부 내용이 지워진 상태로 자살로 몰고 갈 수 있는 것들만 추려서 보여줬다. 나머지 원본을 요구했지만 이 또한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직도 찾지 못한 정 일병의 시계도 의혹투성이다. 부검 당시 정 일병의 손목에는 시계를 착용했던 흔적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군에서 보낸 유품에는 시계가 없었으며 사망 현장이라고 말하는 곳에서도 찾지 못했다. 정 씨는 “시신이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면 분명 시계가 손목에 있었을 텐데 어디선가 폭행을 당했거나 해서 사망한 후 시신을 옮긴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며 여전히 의문을 제기했다.
그렇게 흐지부지될 것 같던 정 일병의 죽음은 2006년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재조사를 통해 조금은 실체가 드러났다. 헌병대의 최초 조사에서 동료들은 정 일병의 군 생활과 자살과정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식의 답변으로 일관돼 있었지만 이는 명백한 조작이었다. 재조사 결과 정 일병은 훈련소에서 발병한 아킬레스건염으로 자대배치를 받은 후에도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병원에 자주 들락거려야 했다. 선임병들은 그런 정 일병을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여겼는데 이 때문에 여러 차례 구타와 얼차려를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인도 ‘교사’가 아니었다. 사고현장에는 목을 매달만한 지지대가 없었으며 이 때문인지 사인이 스스로 목을 졸라 죽은 ‘자교사’로 번복됐다. 자교사란 ‘노끈따위를 감아서 체중을 이용하지 않고 자기 손으로 조여 경부를 압박하여 사망’하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를 말한다.
4년 만에 이뤄진 재조사에서 약간의 소득은 얻었지만 정 씨는 지금도 조카를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먹먹하다. 정 씨는 “일반인들이 군 자료를 받아볼 수 없게 막고 있는 데다 조직적으로 은폐하기 때문에 진상규명이 어렵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휴전상태라 사고가 발생하면 원인 찾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사망처리규정에 따라 움직인다. 군에서 스스로 사망원인 규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데 어떻게 실체에 접근할 수 있겠나”며 현재의 군 대응방식에 불만을 토로했다.
또한 정 씨는 “군은 계급사회라 뭐 하나 부대 내에서 문제가 생기면 진급에 큰 문제가 될 거라고 여긴다. 헌병대도 은폐에만 급급하다. 기무사는 사실대로 조사하고 그대로 위에 보고하는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기무사의 조사내용은 유족에게도 공개하지 않는다”며 “방송에 의문사가족들이 나와 윤 일병 사건을 두고 그래도 진상규명이 되어서 부럽다고 얘기하는 데 참 공감이 되더라. 아직도 조카가 왜 사망했는지 나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며 씁쓸해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