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건물에 마음대로 드나들며 음료수도 훔쳐 먹느냐. 당장 나가라”
지난달 30일 거리를 헤매다 새벽 1시경 광주 북구 중흥동의 4층 건물 옥상으로 향하던 이 아무개 씨(25)는 날카로운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그의 앞을 막아선 사람은 이 건물 2층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는 윤 아무개 씨(여·73)였다. 윤 씨는 수개월 전부터 건물 계단이나 옥상에서 노숙을 하는 이 씨 때문에 상당한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배고픈 이 씨가 가끔 노래방으로 내려와 몰래 음료수를 훔쳐 먹고 건물을 지저분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참다못한 윤 씨는 그날 이 씨와 마주치자 꾸지람을 했고 이는 심한 말다툼으로 이어졌다. 이 씨도 건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윤 씨에 화가 나 급기야 폭력을 쓰기 시작했다. 윤 씨는 자신의 목을 조르는 이 씨의 팔을 할퀴고 발버둥을 쳤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 씨가 아무리 제대로 끼니를 챙겨먹지 못하는 노숙자라지만 힘없는 70대 할머니가 젊은 성인남자를 상대하기엔 벅찼다.
그런데 이 씨의 행동이 어딘지 이상했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윤 씨를 보고도 이상하리만큼 차분했던 것. 경찰에 신고하거나 윤 씨를 병원으로 옮기려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 씨는 자신의 옷을 벗어던지더니 의식이 없는 윤 씨를 성폭행까지 했다. 윤 씨가 죽은 줄 알고 시신과 성관계를 가진 것이었다.
이 씨의 엽기적인 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돈이 궁했던 이 씨는 성폭행도 모자라 윤 씨가 착용하고 있던 반지와 묵주까지 빼앗았다. 지갑은 윤 씨가 꽁꽁 숨겨뒀던 터라 이 씨가 찾지 못했다. 윤 씨를 주방으로 옮긴 뒤 허기를 느낀 이 씨는 라면도 끓여먹었다. 배를 든든히 채우자 이번엔 졸음이 밀려왔고 그렇게 노래방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사람을 죽이고도 태연히 현장을 지켰던 이 씨의 ‘여유로움’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사건이 발생한 건물은 1층과 2층이 연결통로를 공용으로 쓰고 있었는데 때마침 위층으로 가려던 1층 사용자가 문이 잠긴 점을 이상하게 여겨 윤 씨를 찾아 나선 것. 노래방에 전화를 해도 연락이 닿지 않자 1층 사용자는 옆 건물에 올라가 내부를 살폈고 주방에서 쓰러져있는 윤 씨의 다리를 보곤 곧장 경찰에 신고했다.
그 시각 노래방에서 시신과 동침하고 있던 이 씨는 바깥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떴다. 창문을 통해 경찰이 출동한 사실을 깨달은 이 씨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훔쳤던 반지와 묵주를 다시 내려두고 방안에 숨었지만 내부를 수색하던 형사에 의해 현장에서 검거됐다.
이 씨는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계단에서 자려고 했는데 할머니가 못 올라가게 해 순간적으로 목을 졸랐다”며 우발적인 사건이라고 둘러댈 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이 씨의 입에서 “시체와 성관계를 했다”는 진술이 나왔고 이후에도 덤덤히 자신의 범행을 털어놓는 모습에 경찰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광주 북부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시체를 강간했다는 사실을 너무 태연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부검 결과 성폭행을 하던 순간까지 윤 씨는 살아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단지 정신을 잃었을 뿐이었는데 빨리 조치를 취하지 않아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며 “피의자는 사람을 죽이고도 전혀 반성하는 기미도 없고 아무렇지 않게 당시 상황에 대해 진술했다. 눈빛이나 행동을 보면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 같아 보였다. 애초에 성폭행이나 금품을 노린 범행이었는지 파악하기 위해 추가로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