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의 원당초등학교 방과 후 바둑교실은 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왼쪽 사진은 원당초등학교의 김준섭 교장과 박종한 사범.
‘방과 후 바둑 수업’을 담당하는 ‘바둑 선생님들’은 “그런데도 15년이 지나도록 아직 어떤 책임 있는 단체가 교육의 방법과 방향에 대해 장기적-구체적 청사진을 뚜렷하게 제시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지적하면서 “어린이 교육의 중차대함은 모든 분야에 해당하는 것이니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거니와, 방과 후 바둑은 바둑 인구 저변확대의 출발점이자, 이른바 바둑계 지속발전 여부의 가늠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니 현안이 될 수밖에 없고,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방과 후 바둑도 개선해야 할 점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일반이 오해하고 있는 것도 있다. 방과 후 바둑 때문에 많은 바둑교실이 문을 닫았다는 것이 대표적인데, 현재 바둑교실이 전성기 때의 15%밖에 남지 않게 된 것은, 사실을 말하자면 ▲출산율 저하 ▲원장의 고령화 ▲수강료 정체 등이 주요 원인이다. 방과 후 바둑이 바둑교실보다 수강료가 훨씬 더 저렴하니까 원인의 하나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요즘은 미술이나 피아노 태권도 등 예체능 학원도 모두 고전하고 있는데, 그런 걸 전부 방과 후 수업 탓으로 돌릴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방과 후 바둑의 문제점은? 지금은 방과 후 바둑이 있는 초등학교가 전국적으로 약 1500개, 수업은 학교에 따라 1주일에 1~5회로 다양하며 강사는 1000명 안팎, 그 중 여성이 약 40%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업료는 한 달에 3만 원 내외, 수강생 부담이다. 강사의 수입은 수강생 숫자에 따라 증감한다. 이와는 달리 학교에서 강사에게 시간당 3만 원을 지급하는 곳도 있다.
“무엇보다도 수업시간이 부족하다. 1주일에 1~5회라고 했지만, 보통은 한두 번인데, 그걸로 교육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1년을 배웠는데도 바둑 한 판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한다고 학부모들께서 불만을 토로하실 때는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지 좀 난감하기도 하다.”
“강사의 자격조건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전체 강사의 70% 정도는 대한바둑협회 산하 초등연맹 소속입니다. 초등연맹에서는 정기적으로 시험도 치르고 연수도 하면서 자격증을 발급합니다. 한국기원이 발행하는 아마추어 단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필수지요. 나머지 30%는 단증만 갖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걸 체계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사의 수급도 문제입니다. 대도시에 몰려 있어요. 벽지나 오지에는 안 가려고들 합니다. 이런 것도 하루빨리 교통정리가 되어야 합니다.”
한 달 전쯤에 바둑계 인사가 충청남도 당진의 원당초등학교를 추천했다. 교장선생님이 바둑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김준섭 교장(60)이었다. 당진은 2012년에야 시로 승격한 인구 17만의 소도시. 충남은 바둑으로 말하자면 실력과 열기에서 전국 중위권이라고도 하고 그보다 조금 아래라고도 한다. 어쨌거나 충남의 바둑은 오래전부터 서산이 중심 역할을 해오고 있다. 당진은 인구와 면적에서 서산에 약간 뒤지지만, 바둑에서는 서산의 변방 같았다. 그런데 소개한 사람은 서산이 아니라 당진을, 그것도 초등학교의 교장을 거론한 것이었다.
지난 5월 일요신문배 어린이 바둑대회 현장 모습. 우태윤 기자
원당초등학교는 2006년에 개교했고, 김 교장은 2012년 9월에 부임했다. 김 교장은 꿈을 실현하고 싶었다. 전인교육-인성교육이었다. 방과 후 수업과 예체능 특별활동에 무지개처럼 아름답고 다양한 꽃과 나무를 심었다. 음악에는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사물놀이 우크렐라 오카리나…, 스포츠에는 육상 태권도 수영 티볼…, 미술을 위해서는 본관 2층에 갤러리를 설치했다. 그리고 5층에는 바둑교실을 만들었다. 1400명 꿈나무들은 예능과 스포츠와 바둑에 젖어 일주일을 보낸다.
바둑은 특히 교장이 되기 전부터 꼭 하고 싶었다. 바둑의 장점이 뭐다, 뭐다 하지만, ‘바둑은 가정을 화목케 한다’, 이거면 다다. 여러 개를 나열할 필요가 없다. 바둑실력을 묻자 “타이젬 초~2단 정도?”라면서 웃는다.
“시작한 지는 제법 됐는데, 실력은 별로지요? 그래도 바둑이 왜 좋은지, 그걸 아는 건 최소 타이젬 7단은 될 겁니다. 그런데 그동안 바둑 선생님을 못 구해 애를 먹었어요. 세 분이나 오셨다가 얼마 안 계시고 가시는 겁니다.”
올봄에 네 번째 만난 선생님이 지금 강의를 하고 있는 박종한 씨(59)였다. 박 사범은 원래는 부산 출신. 사업으로 몇 번 부침하다가 20년 전쯤에 서산에 정착한 후 직업을 바둑으로 전환해 지금까지 바둑교실, 방과 후 바둑으로 맹활약하고 있는 ‘유명 강사’다. 동서의 역사와 문물에 해박하고 특히 차(茶) 문화에 관해서는 조예가 상당하다. 그가 김 교장에 대한 소문을 듣고 당진으로 방향을 잡았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했다. 떠나갔던 아이들이 다시 찾아왔다. 반가웠다. 박 사범에게 아이들을 끌어 모으는 비결이 뭐냐고 물었다.
“글쎄요, 이런 것도 비결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바둑반 교실을 시간 정해 놓고 열고 닫는 게 아니라 그냥 하루 종일 열어 둡니다. 하루 종일은 아니고 12시면 문을 엽니다. 아시다시피 요즘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바쁜 아이들도 많지만, 늦어도 3학년만 되면 바쁩니다. 1~2학년 때 바둑을 재미있게 배웠는데, 3학년 올라가면 바둑을 두고 싶어도 바빠서 둘 수가 없는 겁니다. 12시부터 문을 열어 놓으면 점심시간에 와서 둘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학교 끝나고 집에 갈 때, 또 한 30분, 두고 갈 수 있습니다. 수업 듣는 시간 외에 스스로 즐기는 시간과 장소를 만들어 주자는 생각입니다.”
김 교장은 바둑 계획이 많아졌다. 소년체전에 바둑이 들어갔다고 하니 우리 아이들을 거기도 한번 내보내고 싶다. 경기 일원에는 바둑특성화 초등학교들이 네댓 개 있고, 순천에는 바둑전문고등학교도 있다고 하니, 바둑전문까지는 그렇고 특성화는 생각해봄 직하다. 주말이나 연휴 같은 때 아빠 엄마와 같이 배우고 즐기는 바둑, 그런 프로그램도 의논해 볼 생각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주말에도 바둑반을 하루 종일 열어 놓을 계획입니다. 우리학교는 시골의 작은 학교지만, 만만치 않다. 티볼 같은 경우 전국대회에 나가 3등을 했다. 바둑은 올해는 좀 어렵고 내년에 보자.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