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 9일 국방부 정문에서 ‘F-15K 도입 전면중단’을 촉구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F-15K는 총 40대 도입에 무려 5조6000억 원이 드는 초대형 군 증강사업이었다. 더욱이 지난 2002년 차세대 주력전투기(FX) 사업 기종 선정 과정에서 엄청난 파문이 인 바 있다. 전투기 선정 과정을 둘러싸고 정부와 공군이 정면충돌하는 양상을 보였고, 급기야 현역 공군 대령이 구속되는 사태까지 빚어질 정도로 시작부터 끝까지 온통 의혹으로 점철된 사업이었기에 더 그랬다.
당시 일선 공군 장교들과 한 목소리로 “차세대 주력전투기로 F-15K는 안 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가 결국 금품 수수 혐의로 구속되고 불명예제대까지 당한 조주형 예비역 대령(53)에게 이번 사고는 또 남다를 수밖에 없다. 차세대전투기 시험평가단 부단장이었던 그는 이번 사고의 원인을 군이 ‘비행착각’ 등으로 몰아가려 하자 “군이 조종사를 두 번 죽이고 있다”며 강한 의혹을 나타냈다. 착잡함과 고뇌 속에서 이번 사고를 바라보는 조 씨를 <일요신문>이 단독으로 인터뷰했다.
지난 9일 밤 기자 앞에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조 씨의 표정에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지난 4~5년간 본인에게 닥쳤던 엄청난 변화의 중심에 바로 F-15K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사 23기 출신으로 93년 FX 기종 선정 작업에 초창기부터 참여했던 그는 95년 대령으로 진급하며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밟고 있었다. FX 사업 전문가로의 능력을 인정받아 그는 2001년 10월 보국훈장 삼일장을 받기도 했다. 2000년 8월에는 FX 사업 시험평가단 부단장을 맡아 후보에 오른 4개 기종 전투기를 모두 섭렵했다.
하지만 이런 입지는 오히려 그의 군 생활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말았다. 당시 유력 기종으로 떠오른 후보는 프랑스 다소사의 라팔 전투기와 미국 보잉사의 F-15K였다. 이 중 신기종은 라팔이었다. 일선 공군 장교들은 대부분 라팔을 선호했다. 기술이전 조건이나 가격 성능 등 여러 부문에서도 라팔은 F-15K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조 예비역 대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선정 과정에서 그는 군 수뇌부가 이미 F-15K로 사실상 정해놓은 채 시험평가는 단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점을 확연히 감지했다. 노골적으로 “기종은 이미 결정된 것”이라며 그에게 ‘외압’이 가해졌다. 그는 2002년 3월 일부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외압설을 제기했다. 군은 발칵 뒤집혔다. 그는 곧 군 기무사에 의해 전격 구속 수감됐다. 뇌물수수와 군사기밀 누출 등의 혐의였다.
당시 일부 공군 장교들과 군 주변에서는 “이미 미국과 약속이 돼있는 DJ 정권과 군 수뇌부가 조 대령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고 한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여기에는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도 가세했다. 결국 그는 금품수수 사실이 인정됐고 불명예 제대했다.
그로부터 4년 만에 자신의 군 인생을 순식간에 뒤바꿔놓은 F-15K 전투기가 기어이 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그는 이번에 불의의 사고를 당한 두 후배 장교를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공군사관학교 대대장 시절, 그들은 생도였다. “정말 아까운 후배 장교들이 또 희생당하고 말았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애써 감정을 자제하며 차분히 인터뷰에 응했지만, 문득문득 표출되는 내면의 답답함과 분노는 숨기지 못했다. 그는 “오늘 뉴스를 보니 군은 역시 ‘비행착각’으로 결과를 몰아가더라. 이번에도 역시 모든 잘못을 조종사에게 돌리려는 것이다. 전투기 추락사고 때마다 조종사 탓을 한다. 군은 그들을 두 번 죽이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 이번 동해에 추락한 전투기와 같은 기종인 F-15K. | ||
그는 그 가운데 비행착각 가능성을 가장 낮게 봤다. 그는 “1만 피트 이상의 상공을 나는 전투기가 바다를 상공으로 착각하고 급강하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2000~3000피트 정도라면 또 모르겠다. 비행을 해보면 알겠지만 중력 차이 때문에 공중으로 치솟을 때와 아래로 하강할 때 느껴지는 몸의 체감은 확연히 구분된다. 10~20초 정도를 지속적으로 하강할 때 그들과 같은 2명의 베테랑 조종사들이 동시에 그것을 구분 못하고 공중인 줄 착각하고 계속 바다 속으로 급강하해서 추락했다는 추측은 그야말로 난센스”라고 밝혔다. 그는 “당시 F-15K가 내세운 또 하나의 강점은 비행착각 방지 시스템이었다. 만약 군의 주장대로 비행착각이라면 그들 스스로 F-15K의 치명적 결함을 인정하는 격”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급기동 등의 오작동으로 조종사들이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었을 가능성도 제시했다. 또 엔진 고장에 의한 사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고 추측했다. 하지만 이 같은 가능성도 역시 낮게 보고 있다. 왜냐하면 사고 최초 발표 당시 공군이 “전투기 한 대가 레이더 상에서 갑자기 사라졌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조종사들이 의식을 잃었거나 엔진 고장에 의한 추락일 경우 갑자기 레이더 상에 항적이 사라질 수는 없다는 것. 이는 비행착각으로 추락했을 때도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그는 “그렇다면 남은 한 가지 가능성은 공중폭발”이라고 조심스레 추정했다.
그는 “물론 공중폭발 가능성도 여러 가지 가능성 중의 하나지만, 갑자기 기체가 사라졌고, ‘임무완수’를 교신한 이후 추가 교신이 없었고, 조종사들이 비상 탈출을 시도하지도 못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증언했다.
그렇다면 과연 군은 자체 조사를 통해서 사고 원인을 명확히 규명해낼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조 씨 역시 “결국 규명해내지 못할 것”이라며 알 듯 모를 듯한 다소 자조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기체 내의 ‘블랙박스’와 같은 증거자료는 바다 속으로 수장됐다고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군이 원인 규명을 할 자신이 없으면 가만히라도 있을 것이지 왜 툭하면 ‘비행착각’으로 몰아가서 조종사는 물론 그 가족들까지 죽이려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 씨는 이번 사고 역시 예고된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도입된 지 불과 1년도 안 된 전투기를 가지고 제대로 검증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세 대씩이나 그것도 야간에 끌고나가서 굳이 훈련을 강행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따졌다. 그는 “당시 F-15K에 대해서 일선 장교들은 기체에 대한 검증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자 보잉사 측은 이미 15년 이상이나 된 기종으로 그동안의 전투비행만으로도 충분한 검증 작업을 거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신기종이 아닌 구기종이 아니냐’고 또 문제를 제기하자 이번에는 또 ‘기체 엔진을 대부분 교체한 신기종’이라고 해명했다. 앞뒤가 안 맞는 억지였는데 여기에 불행하게도 당시 군수뇌부가 동의했다”고 어이없어했다.
인터뷰에 이은 사진 촬영 요청에 그는 “제대로 임무 수행도 못하고 아까운 후배 장교를 둘씩이나 희생시켰는데 어떻게 얼굴을 내밀겠느냐”며 끝내 고사했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