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동안 지속되어 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영토 분쟁으로 전 세계적으로 ‘반이스라엘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최근 재개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으로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아무런 죄 없이 학살되자 이에 대한 분노와 거부감이 일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제품 불매운동’이 속속 확산되고 있어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BDS 운동’이라고도 불리는 이 불매운동은 이스라엘에서 생산되거나 이스라엘을 직간접적으로 후원하고 있는 기업의 제품 구매를 거부하는 운동이다. 과거 남아공의 인종차별 정책에 반대해서 벌어졌던 ‘BDS 운동’이 효과를 거두었다는 점에 착안해서 시작된 이 운동은 현재 팔레스타인 등 중동지역을 넘어 유럽, 미주, 아시아 등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이런 불매운동이 과연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그리고 혹시 오해를 받은 또 다른 순수한 피해자들이 나오는 건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프랑스 시민들의 반 이스라엘 시위 모습. 이스라엘 제품 불매운동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EPA/연합뉴스
‘BDS 운동’이란 불매(Boycott), 투자중단(Divestment), 제재(Sanction)를 의미한다. 아랍연맹을 중심으로 한 ‘BDS 운동’은 과거 남아공의 극단적인 인종차별 정책(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해서 벌어졌던 ‘BDS 운동’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됐다.
현재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불매운동의 타깃이 되는 친이스라엘 기업들의 목록이 떠돌고 있다. 여기에는 코카콜라, 맥도널드, 스타벅스, 네슬레, IBM 등 대형 글로벌 기업들이 포함되어 있다.
온라인선 “바코드 729 사지 마세요” 이스라엘 제품 식별법 안내도
이들이 이처럼 불매운동을 벌이는 이유는 단순히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 때문만은 아니다. 더 나아가서는 이스라엘 군대를 무력화시키는 데 있다. 요컨대 이스라엘을 후원하는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면 결국 이스라엘의 경제 발전을 돕게 되고, 이렇게 이스라엘로 흘러들어간 돈은 결국에는 이스라엘 군대를 막강하게 키우는 데 쓰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불매운동이 과연 효과가 있긴 한 걸까. 말레이시아 푸트라대학의 하피치 모드 누어 박사는 “불매운동은 하나의 전술이다. 현대사회의 전쟁은 더 이상 무기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시온주의(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려는 민족주의 운동)와의 전쟁은 ‘전면전’이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경제, 정치, 문화, 사회, 교육 등 전반에 걸쳐서 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누어 박사는 오늘날의 시온주의자들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가령 유대인 파워의 눈치를 보고 있는 유엔마저 이스라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힘을 못 쓰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바로 이 때문에 범세계적인 불매운동이야말로 이스라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라고 말했다.
사실 불매운동의 심각성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마저 인정한 바 있다. 올해 초 뉴욕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그는 “불매운동으로 이스라엘에 중대한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또한 이스라엘의 야이르 라파드 내무장관 역시 “불매운동이 계속될 경우 이스라엘은 57억 달러(약 5조 9000억 원)의 손실을 입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누어 박사는 “불매운동이 이슬람 국가나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나라들에서만 일어나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이-팔 분쟁이 종교적 갈등이 아니라 인권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현재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 가자지구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진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불매운동은 여러 곳에서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가장 많은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곳은 유럽이다. 2010년 노르웨이 정부는 정부연금펀드 투자 대상에서 이스라엘 기업 두 곳을 제외시켰는가 하면, 덴마크의 단스케 은행, 스웨덴의 노르디아 은행은 이스라엘 기업에 대한 투자를 중단했다. 또한 네덜란드의 생수회사인 비텐스는 이스라엘 기업인 메코로트와의 거래를 중단했다.
그렇다면 ‘BDS 운동’의 표적이 되는 기업들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먼저 식음료 부문을 보면 코카콜라, 맥도널드, 스타벅스, 네슬레, 다농, 소다스트림 등이 있다. 이스라엘 불매운동을 벌이는 시민단체의 주장에 따르면 코카콜라는 1966년부터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이에 지난 1997년 이스라엘 정부는 30년 동안 코카콜라가 이스라엘에 보내준 변함없는 후원에 감사한다는 의미로 ‘이스라엘 트레이드 어워드’ 만찬에서 공로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코카콜라는 지난 2001년, 코카콜라 본사에서 열린 이스라엘상공회의소 어워즈 갈라를 주최하는 한편 메인 스폰서로 나서기도 했었다. 현재 코카콜라는 이스라엘상공회의소에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으며, 2009년에는 이스라엘의 베냐민 벤엘리에제르 준장을 위한 특별만찬을 주최하기도 했었다. 벤엘리에제르 준장은 1964년 이스라엘과 중동국 사이에 벌어졌던 6일 전쟁에서 300명 이상의 이집트 전쟁포로를 학살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샤론 총리 시절에는 국방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지난 20년간 코카콜라가 ‘JCC마카비’를 후원해왔다는 사실 또한 코카콜라가 친이스라엘 기업이라는 점을 나타내고 있다. ‘JCC마카비’는 매년 열리는 올림픽 형식의 이스라엘 청소년 체육대회로, 유대인 청소년들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코카콜라는 이 대회에 참가한 소년소녀들이 이스라엘 군부대를 견학할 수 있도록 후원하고 있다.
친이스라엘 기업으로 알려진 맥도널드와 스타벅스 앞에서도 불매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맥도널드의 경우에는 유대인연합기금(JUF) 및 미유대인협회(AJC)의 주요 협력사란 점 때문에 ‘BDS운동’의 표적이 되고 있다. JUF는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군과 이스라엘의 경제, 외교를 지원하고 있는 단체며, 잭 그린버그 전 맥도널드 CEO 역시 JUF 소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BDS 운동가들은 ‘당신이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사먹는 것은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을 겨냥한 총알 생산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 주기적으로 이스라엘 총리와 회동을 갖고 있는 AJC가 지난 2001년 이집트의 맥도널드 광고를 중단하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이유인즉슨 광고에 삽입된 노래를 부른 가수가 과거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었다. 24시간 만에 맥도널드는 해당 광고를 일체 중단했으며, 당시 이집트 맥도널드 지사의 관계자는 “광고 테이프의 복사본이 바람과 함께 사무실에서 모두 사라졌다”라고 말했다.
스타벅스의 경우에는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다. 스타벅스의 창업주이자 회장인 하워드 슐츠는 유대인 출신으로서 열성적인 시온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실제 슐츠 회장은 1998년 예루살렘 펀드로부터 공로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 공로상은 투자와 무역을 통해 이스라엘 경제에 공헌한 개인과 단체에게 수여하는 ‘이스라엘 건국 50주년 기념 시온의 친구들 공로상’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레바논, 이집트 등 이슬람 국가의 스타벅스 점포들이 집단 테러를 당한 바 있으며, 이스라엘 대사관 인근에 위치한 런던의 스타벅스 두 곳에서는 유리창이 깨지는 등 피해를 입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스타벅스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슐츠 회장과 스타벅스가 시온주의를 지지한다는 의혹은 거짓으로 꾸며진 한 통의 편지에서 시작됐을 뿐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문제가 됐던 편지는 지난 2006년 슐츠 회장이 고객들에게 쓴 것으로 알려졌던 편지며,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친애하는 스타벅스 고객 여러분, 여러분이 스타벅스에 마시는 모든 라떼와 마끼아또는 미국와 이스라엘의 친밀한 동맹관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이스라엘 건국 50주년 기념 시온의 친구들 공로상을 수상한 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편지에는 스타벅스가 매년 수백만 달러를 이스라엘 발전에 기부하고 있다고도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이 편지는 반유대주의 블로그의 운영자가 거짓으로 꾸민 가짜였다. 실제 슐츠가 받은 상은 미국 등지에서 성공한 유대인들에게 수여하는 ‘이스라엘 건국 50주년 공로상’이었지 ‘시온의 친구들 공로상’은 아니었다.
이에 스타벅스는 고객들의 오해를 풀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홈페이지를 통해 이스라엘이나 이스라엘 군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홍보하는 한편, 비정치적 기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 2003년에는 운영상의 어려움을 겪어 이스라엘의 지점을 철수했으며, 현재 이스라엘 내 단 한 곳에서도 점포를 운영하고 있지 않다. 또한 설령 슐츠 회장이 개인적으로 이스라엘을 후원한다고 하더라도 회사 입장에서는 어떤 외국 군대나 정부에 대한 후원을 하고 있지 않다고도 말했다.
기술회사의 경우에는 IBM, 휴렛팩커드(HP), 인텔, AOL/타임워너 등이 불매운동 리스트에 올라있다. IBM은 지속적으로 이스라엘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2002년 이스라엘상공회의소는 IBM 부회장인 로렌스 리치아르디에게 이스라엘의 첨단산업 발전에 막대한 기여를 하고 미국과 이스라엘 간의 무역을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해 ‘앰배서더’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HP는 ‘EDS 이스라엘’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표적이 되고 있다. 현재 EDS는 이스라엘 국방부에 컴퓨터시스템을 공급하고 있으며, 가자지구의 검문소와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바이오메트릭 시스템(지문, 얼굴, 눈동자 등의 정보로 신원을 확인하는 시스템)을 생산하고 있다. 이밖에 HP의 장비들이 이스라엘 교도소와 군부대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점, 팔레스타인 내 유대인 불법 정착촌의 기술개발에 투자하고 있다는 점 또한 HP가 불매운동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유다.
인텔 역시 이스라엘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팔레스타인 내 불법 점령지인 라키쉬-키리앗 가트에 공장을 건설했다는 점 등이 이유로 꼽히고 있다.
화장품 및 건강관리 회사로는 에스티로더, 로레알, 킴벌리-클라크(하기스, 크리넥스) 등이 있다. 에스티로더의 회장인 로널드 로더는 현재 전국유대인기금(JNF) 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열렬한 시온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회사인 로레알은 이스라엘 바이츠만 연구소의 과학자 등 다수의 이스라엘 과학자들을 후원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을 중동 지역 홍보센터로 삼아 활동하고 있다.
이밖에 의류업체인 팀버랜드는 회장인 제프리 스와츠가 시온주의자라는 점 때문에, 그리고 빅토리아 시크릿, 캘빈 클라인, 나이키, 콜럼비아, 월마트 등은 원단 공급처가 서안지구의 유대인 불법 정착촌인 바르칸에 있는 ‘델타 갈릴’사라는 점 때문에 불매운동 대상에 포함됐다.
디즈니의 경우에는 과거 이스라엘 대사관과 함께 플로리다의 앱콧센터에 예루살렘을 홍보하는 전시관을 건설했다가 세간의 비난을 산 바 있다. 당시 이 전시관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홍보하는 데 전략적으로 사용됐으며, 방문객들이 출구로 나갈 때 반드시 이 전시관을 지나가도록 꾸며졌다. 문제는 현재 예루살렘이 국제법상 어느 나라의 영토도 아니기 때문에 정식으로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는 데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BDS운동’의 확산에 우려를 나타내는 사람들도 많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런 불매운동이 결코 유대인 전체를 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무조건적인 ‘반유대인’ ‘반USA’를 주장하는 캠페인과는 차별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유대인들 가운데는 시오니즘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으며, 단지 유대인 출신의 기업인이 운영하는 회사라는 이유로 불매운동 리스트에 올라선 안 된다는 것이다. 누어 박사는 “유대인들과 시온주의자들은 다르다. 단지 유대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후원하기 때문에 불매운동을 벌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독교인이나 무슬림이 이스라엘을 후원할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불매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