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가평군의 도로주소명이 역사와 전설, 아름다운 자연경관까지 담아내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은 보안벚꽃길 전경.
[일요신문] 새주소 본격 시행 7개월이 지나면서 경기 가평군의 도로명 중 새롭게 이름을 부여받은 도로명이 그 뜻과 아름다움에서 이목을 끌고 있다.
13일 가평군에 따르면 이들 도로명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드러내는 이름부터 그 지역의 역사와 전설까지 담아내는 다양한 면모를 선보이고 있다.
자연경관을 담아내는 도로명으로는 ‘녹수계곡로’를 우선 꼽는다. 이 도로명은 거울같은 하천과 계곡의 수목이 한 폭의 풍경화와 같이 푸르름을 더한다는 녹수계곡의 이름을 따왔고, ‘구정동길’은 굽이치는 조종천 물줄기와 양쪽 펼쳐지는 산세가 어우러져 더없이 아름다운 경관을 누릴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 길은 옛날 왕이 마을을 지나가다가 산수계곡이 너무 아름다워 아홉 번 돌아보았다고 해 불리던 옛 이름을 인용한 것이다. 북면에 위치한 ‘보안벚꽃길’은 단어 뜻 그대로 ‘보 안쪽의 벚꽃길’이다. 오래전 솔가지 등을 이용해 만든 자연보를 조성한 곳 안쪽에 자리한 길로, 가지런히 자리 잡은 벚나무가 더 없이 아름다운 소박한 옛길이다. 하면에는 ‘조종새싹로’도 있다. 이 길은 조종초등학교 주변 도로로, 어린이를 비유하는 새싹을 인용해 이름을 붙였다.
재미있는 전설이 담긴 도로명도 다수다. 그 예가 청평면 ‘솥틀로’다. 옛날 홀로된 시아버지를 정성껏 모시던 청상과부에게 산신령이 복을 가져다 준 ‘솥’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멱골로’는 가평군 북면의 샛강이 이어지는 긴 도로로 나타내는 것으로 ‘물이 맑고 깨끗해 선녀가 목욕하던 곳’이라 하여 ‘멱골로’로 칭하게 됐다.
또 과거사가 담긴 도로명도 있다. 북면 ‘칠림길’은 한국전쟁 직후 화악산 산판작업 시 해당지역이 일곱번째 구간이었다. 그 곳을 칠림으로 불리던 옛 지명을 인용한 것이 칠림길이다. 북한강 가까이에 위치한 ‘굴바우길’은 전쟁 시 대피할 수 있는 굴바우 즉 ‘굴이 있는 마을’이었다. 청평면 ‘오댓골길’은 옛날 이 터에 다섯 집 밖에 남지 않고 다른 집들은 없어져 버렸던 유래에 따른 옛 지명을 그대로 사용했다. 하면에 위치한 ‘성터길’은 후삼국시대에 ‘성이 세워졌던 자리’라는 과거 이야기를 지명에 담았으며, 옛날 봉화를 올리던 산봉우리가 있었던 마을에서 유래된 도로명이 바로 상면의 깃대봉길이다.
이밖에도 ‘선비들이 한양에서 보름동안 걸어서 도착한 거리’에서 유래된 ‘보름골길’과 한말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인 남궁 억 선생의 호를 인용한 ‘한서로’를 비롯해 가평군수를 지낸 서예가 한호의 호를 인용한 ‘석봉로’도 있다.
비룡로, 유명로, 연인산로, 운악청계로, 화악산로, 축령로, 명지산로, 조무락골길, 용추로 등은 명소를 그대로 담아 보다 쉽게 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했으며, 남이터길, 기와집길, 노씨터길, 큰마을길, 명장길, 장터길 등 소소한 마을의 이야기가 담긴 도로명까지 각 마을의 특색을 따라 개성 넘치는 이름들을 가평 내 도로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군 관계자는 “도로명은 지역의 고유성이나 장소성 등을 반영해 주민들이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밝혔다.
한편, 도로명 주소는 1월부터 전면 시행된 제도로, 지번주소의 문제점들을 개선, 그 기준을 도로명과 건물번호로 바꿔 빠르고 편리하게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정원평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