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전 의원은 최우선 목표가 차기 대구지역 총선 재도전이라며 정치 그만둘 각오로 총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종현 기자
“공천이나 리더십과 같은 말단적인 요인들이 문제가 아니다. 야권은 이미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밀려났다. 2010년 지방선거를 제외하고는 계속 밀려나고 있다. 국민들이 야권에 대해 불신을 표명한 지 꽤 오래 됐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동안 그때그때 땜빵 이벤트로 커버해왔다. 반성과 변화가 필요했지만 정책도 태도도 내용도 아무것도 없었다. 한마디로 권투에서 10년 동안 잽만 맞다가 골병 든 거다.”
―고질병인 계파문제가 결국 핵심인가.
“물론 한 부분이다. 이번 선거에서 공천이 안일했고, 보기 싫은 계파싸움도 있었고…. 국민 마음에 정나미가 뚝 떨어졌을 것이다.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국민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인데 우리는 여야 간 정치력에서 국민들을 또 한 번 절망케 했다. 선거 앞두고 국민을 설득할 뭔가를 내놓지 않고 세월호 심판만 얘기했다. 국민 눈엔 정말 기가 막힌 거다.”
―비상대책위가 출범했다. 본인도 비대위원장의 후보군에 있었다.
“난 적절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애초부터 (비대위원장에) 당외 인사를 모시자고 했다. 그래서 편견이나 인맥에 구애받지 않고 당을 확 쓸어버렸어야 했다. 마치 히딩크가 그랬던 것처럼, 지난 2008년 박재승 공심위원장이 당의 혁신을 일궈낸 것처럼. 물론 박영선 원내대표가 능력이 없거나 절차상 하자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너무 편하게 갔다. 당내 인사로는 대중과 우리 사이의 거리를 실감하기 어렵지 않나.”
―비대위 절반(5명)을 외부 인사로 구성하기로 했지만 충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 인사들은 거절했다고 한다. 일각에선 어쩔 수 없이 외부 인사 비중을 줄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반드시 외부 인사를 모셔 와야 한다. 당 내부 인사 늘리면 누가 진정성을 믿겠나. 정말 이번엔 외연을 확대해야 한다. 외부 인사의 진솔한 목소리를 담아내야 한다. 솔직히 지금처럼 당 내부 인사가 반씩이나 있으면 누가 오겠나. 비대위 내에선 당내 인사가 소수파가 돼야 한다. 비율도 비율이지만, 외부 인사의 에너지와 아이디어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게 관건이다.”
―벌써 세월호 재협상 요구 등 리더십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아쉬운 것을 떠나서 어쨌든 지금은 박영선 위원장이 구원투수가 됐다. 당분간 우리 당을 대표하고 메신저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당내에서 불신하고 흔들면 오합지졸이 된다. 비대위에 대한 비대위를 만들 작정인가. 바람직하지 않다. 세월호 재협상 요구 문제는 물론 박영선 위원장이 애초 유족들과 소통이 부족한 측면이 있지만, 지금 와서 어쩌겠나. 우선은 여권과의 신뢰 문제 이전에 유족들의 입장 반영이 우선이다. 다만 여권과의 재협상 관철과 함께 유족에 대해서도 현실적 측면을 고려해 잘 설명해줘야 한다.”
―비대위 혁신안, 무엇이 제일 중요한가.
“역시 지역위원장 개혁이 급하다. 우리가 갖고 있는 공천권과 당내 직위를 과감하게 박탈해야 새로운 자원들이 우리당에 노크를 할 게 아니냐. 이것이 선행돼야 지식인들도 정책 아젠다를 던져줄 것이다. 우리 스스로 그런 믿음을 줘야지. 지금 얘기 나오는 오픈프라이머리도 어차피 현직이나 지역위원장에 유리하다. 정교하게 디자인해야 한다.”
―일부 중진들의 정계은퇴 선언 카드도 거론된다.
“조심스럽다. 지금이 총선 국면이라면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용퇴도 큰 계기는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것이 쟁점이 되면 안 된다. 그보다 근본은 앞서 말한 현직 지역위원장 구조가 깨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칫 중진들의 용퇴를 종용할 경우 제3당이 생길 수도 있다. 지금 새정치연합은 정의당 하나에도 벌벌 떨지 않나. 절박해야 한다. 지금 새누리당이 호남에서 당선자를 내는 판 아니냐.”
―비슷한 처지였던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의 당선을 어떻게 봤나.
“짠하다. 당으로 보면 엄청난 위기다. 이 의원이 예산폭탄 때문에 당선된 거 아니다. 국민이 알아서 판을 바꿔주고 있는 거다. 나도 대구서 선거를 두 번 치렀지만, 막판에 ‘그래도 새누리당’ 핑계를 못 넘어섰다. 그런데 이정현과 새누리당이 그것을 넘어섰다. 지역주의라는 마지막 장벽까지 넘었다. 호남 국민이 이제 부담 없어졌다. 우리를 찍어 줄 이유가 없다. 그렇지 않나. 여당은 예산책이나 지역인사책이라는 당근이 있지만 야당은 그것도 없다. 우리는 이제 이것을 정확하게 읽어야 한다.”
―이정현 의원과는 호형호제(두 사람은 동갑이지만, 김 전 의원의 학번이 2년 위라 형으로 불린다)하며 친하게 지내는데.
“한 인간으로서 보면 고개가 숙여진다. 그 사람 첫 출마 당시 득표가 1%였다. 이건 정치적 사망선고다. 그런데 그 1%가 49%가 됐다. 한 개인의 피눈물 나는 진정성 말고 설명할 길이 없다. 우린 드라마틱한 뭔가가 없지 않나.”
―이미 차기 총선에서 세 번째 대구 정치 도전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본인이 그 드라마를 쓰면 되지 않나.
“나 혼자 한들. 당이 튼튼해야지. 여당은 더 강화되고 있다. 지지율이 40%를 넘더라. 우린 20% 초반 아니냐. 현재 우리는 이정현과 같은 드라마를 쓸 수도 없고, 만들 힘도 없다. 대단한 위기다. 언제 집권 여당 지지율이 40%를 넘었나. 야당 지지율이 낮은 것은 결국 국민 인식에 ‘새정치연합은 어차피 찍어도 안 되니까’라고 박힌 거다.”
지난 6월 대구시장 선거 막판 유세전(위)과 2012년 1월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 후보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박은숙 기자
―앞서 지적했듯 야권의 개혁안은 이미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 큰 축은 안철수의 새정치였다.
“안철수가 자신의 새정치를 왜 관철시키지 못했다고 보나.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안철수 데려다 놓고 이지메 한 거다. 새정치연합이 안철수를 쓱 데려와 이용만 하고 뒤통수 친 셈이다. 우리 당은 안철수가 성장할 토대도 안 만들어줬다. 간단히 보자. 우리가 안철수 데려오면서 뭘 약속했나. 기초공천제 폐지다. 그리고 합당했다. 중요한 계약이었지만 결국 우리가 깼다. 당이 불리하다고 안철수를 좌절시켰다. 약속 못 지킬 거라면 합당 안했어야지.”
―새정치 실패에 안철수 본인 책임도 있지 않나. 어차피 기초공천제 폐지 철회는 본인도 받아들인 것인데.
“그 사람(안철수)이 정치를 안 해봐서 순진한 측면이 있다. 본인 스스로 이 험난한 정치판에 대한 준비가 덜한 측면도 있다. 만약 우리가 기초공천제 폐지했으면 박근혜 대통령도 못 밀어붙였을 것이다. 최소한 우리는 여당을 두고 ‘기호 1번은 돈 먹고 공천한 정당 후보’라고 몰아붙일 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돌을 던지고자 했던 안철수를 우리가 좌절시킨 셈이다. 우리가 뒤통수쳤다. 국민으로 하여금 우리 당이 약은 집단으로 비치게 했다.”
―그럼 안철수 전 대표의 정치생명과 새정치는 끝났다고 보는가.
“이제 본인 스스로 만들어야지. 안철수는 이제 첫 출발선에서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도약의 기회는 있다. 안철수 현상은 안철수 하기 나름이다.”
―김 전 의원은 유력한 차기 당권주자다.
“(잠시 생각하며) 지금으로서는 무슨 말도 할 수 없다. 노코멘트 하겠다. 지금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차기 대구지역 총선 재도전이다. 대구 돌파가 내 최우선 목표다.”
―이정현 의원이 종전 총선에서 39%를 얻었다. 여기에 이번 선거에서 10%를 보탤 수 있었던 것은 결국 현 정권 청와대 공직을 거친 것이 크다는 분석이 있다. 이 때문에 김부겸의 대구 당선 필요조건으로 당권 접수가 거론된다.
“물론 이정현 의원의 당선에 그 부분이 컸다는 것은 맞다. 다만 아직 난 뭐라 얘기 안하겠다. 본래 정치 하는 사람이 상황을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웃음).”
―대구 돌파 도전은 다음 총선이 마지막인가.
“그렇다. 세 번하고 떨어지면 어렵다고 봐야하지 않나. 정말 이번 마지막 도전은 정치 관둘 각오로 해야 한다고 본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정의당 합당설 입장은… “비대위 다 내려놓고 범야권 재구성 해야” 김 전 의원은 “단순한 정의당과의 합당은 시너지가 작다. 더 나아가 범야권 재구성을 해야한다”며 “정의당이라고 달리할 이유는 없다. 다만 단순히 흡수 개념의 합당이라면 정의당 사람들이 올 이유가 없다. 어차피 들어가 봤자 워낙 기존 기득권이 탄탄해서 죽는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직접 현 비대위에 대해 “지금 비대위는 반드시 다 내려놓고, 범야권 재구성을 이룩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계속 살림살이만 쪼그라들다가 망해갈 수밖에 없다”고 현실적 경고와 함께 범야권 재구성을 적극 주문했다. 김 전 의원이 이번 인터뷰에서 밝힌 범야권 재구성 제안은 향후 당내 하나의 파동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곧 향후 당권 재구성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현실화된다면 차기 전당대회에 정의당 진영 역시 하나의 축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