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실에서 박영선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며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 당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박영선 비대위원장의 첫 번째 목표가 무엇일 것 같은가. 일단 생존이다. 이번 비대위가 선택한 혁신형이건 관리형이건 조직의 모델은 의미 없다. 비대위의 본질은 결국 당의 존립을 지키는 것이다. 박 위원장 역시 마찬가지다. 그에게는 가혹한 얘기일 수 있지만, 본인 정치력에 따라 분당을 포함한 야권개편 시나리오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평론가의 진단이다. 이제 막 시험대에 오른 박영선 위원장에게는 섬뜩할 수 있겠지만, 현재의 야권 구도를 놓고 본다면 당장 내일 쪼개진다 해도 이상할 것도 없다. 그의 말을 좀 더 들어보자.
“서서히 차기 당권 후보군이 형성되고 있다. 당규 개정 여부에 따라 친노 좌장인 문재인 의원의 출마가 점쳐지는 가운데 김부겸, 추미애 등 비주류 진영의 유력 주자들도 당권 도전 선언이 임박했다. 문제는 친노건 비노건 공천권이 걸려있는 이번 당권 선거에 목숨을 건다는 것이다. 패배는 곧 몰락이라는 분위기다. 박영선 위원장이 추후 비대위 활동 말미에 내놓을 혁신안과 선거 룰에 따라 선거를 치르기 전에 어느 한 쪽이 짐을 쌀 수도 있다.”
박 위원장에게 주어진 시간은 100일 남짓으로 예상된다. 내년 1월과 2월 사이 전당대회를 예고한 상황에서 연말에는 대략적인 혁신안과 선거 룰을 내놓아야 한다. 일단 박 위원장은 취임 초기부터 줄곧 ‘오픈프라이머리’를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다.
비대위의 혁신안이 공감을 얻지 못할 경우 김부겸 전 의원을 비롯 김한길계와 안철수계가 합세해 연합신당을 구성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재관 정치컨설턴트는 “이번 비대위는 국민공감혁신위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출발부터 국민이 공감할 수준의 혁신안을 내놓겠다고 공포한 상황”이라며 “그 혁신안의 핵심은 현재의 정당 내 기득권 세력들의 퇴장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비대위원장 시절 내놓았던 천막당사 이전과 같은 획기적인 안을 내놓지 않으면 자멸할 수밖에 없다. 최소한 현직 지역위원장 총사퇴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재관 컨설턴트가 제시했듯 공천권을 쥐고 있는 현직 지역위원장의 개혁은 혁신안의 첫 손에 꼽히고 있다. 연내 실시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위원장 선출에 있어서 현직이 아예 손을 떼야 한다는 주장이다. 작게는 ‘재신임안’에서부터 큰 폭으로는 현직들의 진입 자체를 아예 막는 안까지 얘기가 오가지만 기본적으로 지역위원장 개혁이 핵심으로 꼽힌다. 유력 당권 주자인 김부겸 전 의원 역시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이를 제일 먼저 꼽았다.
이와 함께 일부 다선 중진 의원들의 용퇴도 하나의 카드로 손꼽힌다. 혁신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인적쇄신을 가장 확연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안이다. 일단 전권이 주어진 이상 박영선 위원장이 이들의 비난을 감내하고서라도 공론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큰 폭의 혁신안을 두고 박영선 위원장이 실제 관철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선 아직 의문부호가 붙고 있는 형국이다. 비대위 체제는 가동됐지만, 아직 비대위원 인사조차 못하고 세월호 정국에 발목을 잡혀 초반부터 박영선 위원장의 리더십에는 흠집이 나기 시작했다. 전망은 결코 밝지 않다.
여기에 최근 바람이 솔솔 불고 있는 ‘정의당 합당설’도 큰 축이다. 앞서의 평론가는 “혁신안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경우, 비노진영은 움직일 것”이라며 “현재 비노진영의 당권 주자로 거론되는 김부겸 전 의원이 당권 출마를 포기하고 정의당 진영과의 연합신당을 구성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물론 여기엔 안철수계와 김한길계도 합세할 가능성이 높다. 안철수계의 경우 이미 과거 몇 차례 교감이 목격되기도 하지 않았나. 그렇게 되면 그야말로 야권 분열이 현실화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른바 새정치 ‘정의’ 연합 탄생의 가능성이다.
김부겸 전 의원은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정의당과의 합당과 관련해 긍정적 답변을 내놓으며 “단순한 합당을 넘어 ‘범야권 재구성’ 개념으로 가야 한다”고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미 현 비대위에 범야권 재구성을 적극 주문한 것이다.
이는 현 비대위에 조심스레 던지는 경고로 받아들일 수 있다. 단순 합당은 결국 현재의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은 것과 다름없으며, 꼭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는 제로베이스에서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정의당과의 합당은 큰 폭의 혁신안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 만약 현 비대위가 이러한 혁신안을 내놓지 못할 경우, 김 전 의원을 비롯한 비노진영은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혁신안이 나오기까지 앞으로 100일은 박영선 위원장에게 있어서 ‘고난의 행군’일 수밖에 없다. 박 위원장이 비대위의 공식명칭(국민공감혁신위) 다운 결과를 이룰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