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속의 중국’이라 불리는 바오젠 거리. 중국인 발길이 늘어나자 차 없는 거리를 조성했다.
제주시 연동 바오젠(宝健) 거리에서 만난 상인들은 특히나 표정이 어두웠다. 거리에서 만난 한 상인은 “우리 가게도 얼마 안 가 쫓겨나게 생겼다”며 손사래를 쳤다. 상인들은 중국 관광객이 몰리기 시작한 2~3년 전부터 건물주가 많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사람들이 모여들면 부동산 가격이 뛰는 건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상인들은 “그렇다고 세가 뛴 걸 보상할 만큼 장사가 잘 되는 것도 아니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일요일 저녁 찾은 바오젠 거리는 한산했다. 저녁식사 때임에도 식당마다 두세 테이블만 차있었다. 대형 편의점, 화장품 가게에서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나오는 요우커(遊客·중국인 관광객)들이 눈에 띌 뿐이었다. 바오젠 거리에서 특이한 점은 간판마다 들어찬 중국어였다. 식당마다 메뉴판은 중국어로 준비돼 있었고, 아예 간판을 중국어로 단 가게도 많았다.
원래 젊은이들이 모이는 술집과 식당이 주를 이뤘다는 바오젠 거리에는 이제 저가 화장품을 파는 로드숍이 늘어서 있었다. 이곳의 원래 이름은 ‘제주 로데오 거리’였다. 2011년 화장품으로 유명한 중국의 바오젠사가 포상여행으로 사원 1만 2000명을 제주도를 보낸 것을 기념해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중국인들의 발길이 늘어나자 차 없는 거리를 조성해 ‘제주 속의 중국’이라 불리는 특화 거리를 만들었다.
상인들은 어떤 변화를 체감하고 있는지 듣기 위해 오래된 간판을 달고 있는 몇몇 가게를 찾았다. 부대찌개 집을 운영하고 있는 여주인은 “임대료가 50% 이상 뛴 곳이 부지기수다. 우리 가게는 세가 그만큼 뛰진 않았지만 주인이 바뀌어 곧 가게를 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주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 아무개 씨(55)는 “우리 가게도 타지 사람으로 건물주가 변경됐는데 얼굴 한 번 비추지 않고 퇴거명령만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강제퇴거를 당한 가게도 몇 된다. 시장논리에 따라 월세가 오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오랫동안 거리를 지켜온 상인들을 하루아침에 쫓아내는 건 불합리한 게 아니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바오젠 거리는 간판은 물론 메뉴까지 중국어로 표기돼 있다.
일대 건물을 중국인들이 사들인다는 소문도 상인들 사이에 돌고 있었다. 거리에서 만난 또 다른 상인은 “부동산 중개소에서 건물을 한꺼번에 사들여 중국인들한테 차례로 판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추세는 바오젠 거리만의 일이 아니었다. 제주시내에서 개인택시를 모는 송 아무개 씨는 “시내에 작은 호텔들이 많은데 중국인들이 많이 사들이고 있다. 이제는 투자인지 투기인지 헷갈릴 정도다”고 말했다.
서귀포시는 제주시보다 상대적으로 중국인 개인투자열풍이 덜했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중국인들 때문에 우리 같은 주민들 살 집이 없다”고 호소했다. 인근에서 부동산을 오래 운영했다는 최 아무개 씨(70)는 “부동산 매매량이 적은 게 꼭 중국인들 때문은 아니다. 이쪽은 토박이들이 많아 원래 매물이 많지 않았고, 여기에 귀촌하는 외지인이 늘면서 일어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최 씨는 “인근 땅 값이 많이 뛴 건 사실이다. 개인투자자들 때문이라기보단 헬스케어타운이 생기면서 투자 기대감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평당 40만~50만 원 하던 게 이제 100만 원은 줘야 한다. 주택도 예전에는 4000만 원이면 괜찮은 집을 샀지만, 이제 1억 밑으로는 살 게 없다”고 말했다. 위미리에 사는 오 아무개 씨는 “위미 쪽에는 지난해에 20만~30만 평쯤 되는 목장이 중국인에게 팔렸다. 앞으로 동쪽으로까지 투자열기가 뻗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중국 자본 유치 기대로 인근 부동산 시세가 뛰긴 했지만, 이것은 오히려 실 거주자들에게 주거비용 상승만 가져올 뿐 ‘중국특수’가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는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부동산 투자 열풍을 반기는 이들도 있었다. 제주시 연동에 산다는 최 아무개 씨(60)는 “3년 전 제주도에 내려와 제주시내에 있는 호텔에 투자를 했다. 중국인들이 많이 와 호텔도 잘 되고 부동산 가격도 많이 뛰었다”며 반색했다. 그는 또 “하와이를 봐라. 일본인들이 그렇게 사들였지만 거기가 일본 땅이냐. 중국 사람이 땅 산다고 해서 중국이 되지 않는다”며 주민들이 불안감을 느끼는 데 의문을 표했다.
한 치킨 전문점이 간판에 <별에서 온 그대> 사진을 넣고 중국인 관광객을 끌고 있다.
중국인들이 차명으로 농지를 매입한다는 소문도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돌고 있었다. 지난 3월 제주참여환경연대는 “한림읍 금능리 일대 대규모 농지를 차명으로 매입한 사례가 적발됐다”고 발표했다. 제주 지역 언론 역시 “내국인 등 제3 자를 내세운 부동산 매입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고 여러 차례 보도했다.
그 소문의 실상을 확인하기 위해 제주시와 서귀포시 일대의 공인중개사무소를 훑었다. 신제주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최찬명 씨(60)는 “차명으로 거래한다는 얘기는 소문으로만 들었다. 차명이 아니더라도 정식으로 땅이나 건물을 사려는 중국인들의 문의가 한 달에 2~3건씩은 꾸준히 들어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거래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게 최 씨의 전언이다.
제주 시가지 인근에는 중국어 간판을 단 중개업소도 몇 곳 있었다. 그중 한 곳을 찾아 들어가 봤다. 현금으로 거래를 많이 하는지 지폐계수기가 두 대 놓여있었다. 한국에 온 지 20년이 넘었다는 중국인 사장은 “투자 문의가 아주 많이 들어온다. 중국은 부정부패가 많고 땅을 사도 완전히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주에 와서 보니 살기 좋고, 부정부패도 전혀 없기에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차명 부동산 매입에 대해 묻는 질문에 “그런 건 없다”며 고개를 저으며 구체적인 대답을 피했다. 그는 “상가를 위주로 많이 샀지만 실제로 재미 본 사람은 거의 없는 걸로 안다. 권리금 등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낭패를 보는 사례도 많다”고 추세를 전했다.
서귀포시 중정로에 위치한 부동산을 운영하는 한 주인은 “차명거래는 정식 중개소를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잘 모른다. 하지만 대규모 땅을 찾는다는 문자는 가끔씩 받는다. 이런 건 중개업소에서 땅을 사들여 중국인들한테 나눠 팔기 위해서 땅을 찾는 걸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제주=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
관광업계의 표정 운수업계는 웃고 소형 식당은 울고 반면 부정적인 목소리도 흔히 들을 수 있었다. 제주 시내 토속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상인은 “관광버스 대절해서 화장품 가게에서 쇼핑하고 이동한다. 우리 같은 작은 식당은 관광객들 많아졌다고 해서 이득 볼 게 별로 없다”고 말했다. 서귀포 시내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박 아무개 씨(40) 역시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그는 “요우커들이 몰려오고 인근 숙박업소 질이 떨어졌다. 게스트하우스는 많이 생겼는데 중국인들이 이용하는 곳은 따로 있다. 그런 데는 침대 시트도 안 가는 데가 수두룩하다. 저렴한 숙소에서 묵고 쇼핑을 많이 하고 돌아가는 특성 때문에 중국인 관광객들도 숙소 위생에 그리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게스트하우스를 차리기 전에 관광업에 오래 종사했다는 박 씨는 “아침에 와서 쇼핑하고 자연경관을 둘러보고 그날 밤에 돌아가는 코스도 흔한데 지역 경제에 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고 토로했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