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회관 전경과 최경환 경제부총리. 최 부총리의 강력한 드라이브가 실물경기로 옮겨 붙을지를 놓고 회의적인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9월 23일까지 내놓을 예정이어서, 그 전에 예산 소요에 관한 구상과 정책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라며 “정부의 경제활성화 대책이 쉴 새 없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 부총리의 드라이브에 한국은행도 지난 14일 금리인하로 호응했다. 한은의 독립성 논란을 감수하고, 정부의 재정확대 기조에 화답한 것이다. 사실 한은이 15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춘 이유는 실물시장의 파급효과보다는 경제 심리의 측면이 강하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기준금리 25bp(1bp=0.01%) 인하 효과를 산술적으로 제시하기보다, 금리인하와 정부의 경기활성화 종합대책이 1차적으로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개선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최 부총리가 취임 전후로 한은의 금리인하를 압박하는 듯한 발언과 행보를 해온 터여서, 이번에도 한은이 금리동결이라는 반기를 들 경우 정책 혼선에 따른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간파하고 억지춘향 식으로 금리인하의 깃발을 들어 올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바야흐로 경제정책에 관한 한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최경환의 시대’인 셈이다.
하지만 최 부총리의 강력한 드라이브와 심리적 효과가 과연 실물경기로 옮겨 붙을지를 놓고 회의적인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재계의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다. 우선 유망서비스업종 활성화 대책이 문제다. 3조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보건, 의료, 관광, 콘텐츠, 소프트웨어, 물류, 6개 산업에 정책지원을 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세부사항으로 프로젝트별 활성화 대책도 내놓았다.
재계는 이 같은 최 부총리의 구상이 전통적인 수출제조업 중심의 경제성장 전략을 포기하고, 서비스산업 중심의 내수 견인 성장정책으로 전환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조선,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기계 등 제조업의 성장성이 한계에 이르러 추가 성장을 통해 충분한 고용창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제조업종들의 실적부진도 한몫하고 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수출만이 살길이다’며 제조업 육성 정책을 펴온 것이 지난 이명박 정부 때까지 이어졌는데, 그 딸이 경제성장 전략을 바꾼 것이나 다름없다”며 “한국의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면서 제조업의 성장성이 둔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수출제조업 중심의 정책을 간과하면 경제성장은 큰 중심축을 잃게 된다”고 밝혔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의 부침에 따라 업종별 업황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데 정부가 앞장서서 ‘이제 제조업은 끝났다’는 식의 시그널을 보내면 그걸 반길 기업이 어디 있겠느냐”고도 했다. 내수보다는 수출이 경제성장과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여전히 큰 만큼 제조업 중심의 정책방향이 유효하다는 게 재계의 인식이다.
경제단체들이 그동안 최 부총리가 이끄는 2기 경제팀을 향해 주문해온 것도 그런 방향이었다. 외환 리스크로 인한 국내 기업들의 국제 경쟁력 약화, 수도권 규제를 포함해 투자와 산업구조 재편을 지연시키는 규제, 인수·합병 시장의 활성화를 막는 규제 등을 최우선 해결과제로 꼽아왔지만 2기 경제팀에는 별로 먹혀들지 않았던 셈이다.
무엇보다 최 부총리가 내수 진작의 방법으로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올리는데 중점을 두면서, 그 타깃을 기업을 겨냥한 것도 재계의 불만이다. 8월 초 내놓은 세제개편안의 핵심은 ‘가계소득 증대 세제 3종 세트’다. 임금비용이 높아진 기업들에게 공제혜택을 확대하는 근로소득 증대 세제, 배당금에 대한 공제비율을 높여주는 배당소득 증대 세제, 기업의 당기순이익에서 일정 규모 이상 유보된 자금에 대해 세금을 물리는 기업소득 환류 세제다. 기업의 여윳돈이 가계로 흘러가도록 유도하자는 것이다.
한 10대그룹 관계자는 “결국 기업 돈으로 가계의 주머니를 불려주자는 것인데, 그게 경제 상식에 맞느냐”고 반문하며 “실제 가계소득을 올리는 것은 물가에 잡히지 않는 사교육비 등 생활비용과 주거비 부담을 줄여주고, 기업 투자 촉진으로 일자리를 늘려 고용여건을 개선하는 게 정석이다. 정부가 내놓은 3종 세트는 사회주의에서도 하기 힘든 기업 강탈”이라고 흥분된 목소리로 비판했다.
또 다른 10대 그룹 관계자도 “최 부총리의 경제정책이 일견 진보적 색채를 갖고 있지만, 진보진영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일관성이 결여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진보 성향의 경제연구소들은 이번 세제개편에 대해 “법인세 인상이란 가장 합법적인 수단을 놔둔 채 생색내기로 사내유보금 과세를 꺼내놓고 기업 편들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기업소득 환류세제의 구체적 내용은 시행령에 담을 계획이어서 기업들의 ‘입김’이 작용해 하나마나한 수준으로 완화될 가능성이 있는 데다, 근로소득 증대 세제와 배당소득 증대 세제의 효과도 국민경제 전체로 확산되기 어렵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소득분배의 불평등 심화에 대한 근본 처방은 놔둔 채 기업 돈을 가계로 흘려보내겠다는 방향 자체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앞서의 경제단체 관계자는 “최 부총리의 드라이브가 제대로 효과가 나지 않았을 경우, 기업들이 적극적이지 않아서 실패했다고 화살을 맞을 게 뻔하다”면서 “최 부총리의 행보를 불안하게 지켜보는 이유”라고 말했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