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이 외환카드 분사를 전격 신청하면서 하나은행과의 합병 작업이 가속화되고 있다. 외환은행 빌딩과 원 안은 하나은행 본점 로비 모습(연합뉴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반면 외환은행 사측은 금융당국을 상대로 외환카드 분사를 서둘러 인가해줄 것을 요청하며 합병에 속도를 내고 있다. 외환은행은 같은 날 외환카드로 옮기기로 한 직원 338명 이름으로 금융위원장에게 ‘외환카드 신용카드업 영위허가 승인 요청 호소문’을 냈다.
직원들이 팽팽한 기싸움을 벌이는 동안 두 은행 경영진은 조기통합을 위한 물밑작업에 한층 매진하고 있다. 통합하는 두 조직의 최고 수장이 될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지난 7월 17일 하나·외환은행 조기합병을 전격 공론화하면서 총대를 멨다. 김 회장은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직원 모두 통합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며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모두 이사회를 개최해 합병을 추진키로 했다고 선언했다.
김 회장이 앞장서면서 두 은행 수장들도 발걸음이 빨라졌다. 우선 김한조 외환은행장은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리거나 전국 지점장들을 차례로 만나면서 조기통합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직원들에 대한 설득을 당부했다. 그는 “조기 통합 논의는 불가피한 상황이며 직원들 입장에서도 더 나은 대안”이라는 취지를 적극적으로 설파하고 나섰다.
김종준 하나은행장. 연합뉴스
게다가 김 행장은 하나캐피탈 사장 재직 시절 미래저축은행을 부당 지원한 사실이 금융당국에 적발돼 ‘문책경고’ 상당의 중징계를 받은 데다 KT ENS 부실대출과 관련해 또 한 차례 금융당국의 징계를 받은 상황이라 사실상 ‘시한부 은행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상태다.
문책경고는 중징계에 해당돼 향후 3~5년간 금융권 재취업이 금지되는 만큼 뱅커로서의 그의 경력은 마지막 단계에 와있다. 금융당국의 거센 사퇴 압박에도 “임기를 마치겠다”며 완강하게 버티고는 있지만 임기가 불과 7개월여 뒤인 내년 3월로 다가온 만큼 ‘레임덕’ 상황이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 그가 자신과는 별 상관없어 보이는 ‘미래의 일’에 적극 나선 것을 두고 금융권에서는 “김 행장이 제도의 허점을 파고드는 묘수를 찾은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금융권이 말하는 ‘김 행장의 묘수’는 다름 아닌 외환카드와 하나SK카드의 합병으로 탄생할 통합 하나카드의 수장 자리를 일컫는다. 문책경고라는 중징계에도 카드사 사장으로 이직하면 법적 제한을 받지 않는 ‘구멍’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현행 은행법, 보험업법, 자본시장법 등은 각각의 법과 시행령에서 문책경고를 받으면 임원이 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문책경고를 받은 금융회사 임원은 다른 은행이나 보험사, 증권사 임원으로 갈 수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카드사와 캐피털사 등 여신전문금융사의 임원이 될 수 없는 자격에는 문책경고를 받은 경우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최근에야 확인됐다. 다른 법들과 달리 여신전문금융업법은 ‘정직이나 업무집행정지 이상’의 제재를 받은 이는 임원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같은 중징계라도 한 단계 낮은 문책경고를 받은 김 행장은 카드사나 캐피털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는데 문제가 없는 상태다. 금융권은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나아가 하나SK카드와 외환카드 합병작업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김 행장이 최근 열의를 보이는 것도 이런 허점이 드러난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예상치 못했던 법의 맹점이 드러나자 김 행장을 내심 못마땅해 하던 금융당국도 분주해졌다. 허를 찔린 셈인 금융위원회는 문책경고를 받으면 임원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을 담은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을 부랴부랴 입법 예고했다.
문제는 법이 제정되고 시행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돼도 해당 상임위원회와 본회의 통과 등을 거치려면 사실상 올해 안에 법이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금융권의 시각이다. 결국 김 행장이 법이 바뀌기 전에 하나SK카드-외환카드 통합법인을 출범시켜 사장으로 취임하면 금융당국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당국이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7월 30일과 8월 13일 열린 정례회의에서 외환은행의 외환카드 분할 승인을 잇달아 연기했다. 금융위는 아예 외환카드 분사 승인 안건 자체를 회의에 상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관련 안건을 면밀하게 검토하기 위해 ‘외환은행의 카드 사업 부문 분할 및 외환카드의 신용카드업 영위 인허가’ 건을 삭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김종준 행장에 대한 ‘괘씸죄’가 적용된 결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처럼 갑자기 빨라진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합병 작업의 이면에는 김종준 하나은행장과 금융당국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숨어 있다. 당국에 미운털이 박히고도 남은 임기를 완주하겠다며 버티기를 선언한 김 행장과 퇴진 압력을 거두지 않고 있는 금융당국이 실타래처럼 꼬인 상황을 어떻게 풀어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