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기 무대에서 6전 전패 후 생애 첫승을 거둔 ‘싱글맘 파이터’ 송효경에 대한 팬들의 관심이 뜨겁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사실 이번 대회가 열리기 전에는 하즈키 선수와의 대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에서 치른 여섯 번의 대회가 모두 패배로 끝났고 더 이상 선수 생활을 이어갈 만한 여력도 없었다. 무엇보다 부상이 많았다. 과거 왼쪽 무릎 십자인대 수술을 받은 데다 이번 시합을 준비하면서 오른쪽 무릎 인대마저 손상됐는데 나이가 있다 보니 회복 속도가 더디다는 걸 깨달았다. 더욱이 아들한테 계속 지는 모습만 보이는 게 힘들었다. 멋진 엄마의 모습을 보이고 싶었는데…. 그래서 꼭 이기고 싶었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서. 더욱이 한국에서 치른 첫 경기였기 때문에 잘하고 싶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다. 첫 승도 챙겼고, 유명세를 얻었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왜? 나를? 뭐가 잘났다고? 하는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전에는 ‘이혼녀’라는 타이틀이 감추고 싶은 비밀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지금은 그로 인해 더 인기를 얻고 있으니 이런 걸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하는 거 아닌가.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할 게 있다. 난 ‘싱글맘’이 아니다. 아들은 시댁에서 키우고 있다. 아들을 만나기 위해 시댁에 자주 방문한다. 남편을 제외하면 시댁 어른들과도 예전처럼 잘 지낸다.”
―이혼을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남편은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사진작가였다. 어려울 때 만나 사랑 하나로 맺어졌고, 스튜디오 차리는 데 내가 갖고 있던 많은 부분을 내놓기도 했지만 결국엔 남편이 다른 길을 걸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길을. 여자로서 배신감을 느꼈고 그래서 오랫동안 갈등을 빚다 헤어진 것이다. 헤어질 때는 아들을 내가 키웠지만 남편이 이혼 후 단 한 번도 아들을 찾지 않아 걱정된 나머지 아들을 시댁에 맡긴 것이다. 아빠 얼굴이라도 자주 보라고. 상대방의 입장도 있기 때문에 가정사를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다. 지금은 아들을 시댁에 맡긴 게 후회된다. 내가 자립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 되면 아들을 데려오고 싶다.”
―다시 경기 얘기로 돌아가 보자. 상대 선수였던 기무라 하즈키 선수는 체중이나 신장이 송효경 선수에 비해 차이가 났다. -54㎏급이었지만 하즈키 선수는 49㎏으로 나왔다. 그래서 ‘미스 매치’란 얘기도 있었다.
“내 체중은 체급에 맞게 뺐고, 너무 많이 뺀 다음에는 오히려 살을 더 찌웠다. 그런데 하즈키 선수는 52㎏의 체중에서 계체 직전에 오히려 살을 더 뺐다. 그래서 난 53.5㎏이, 그 선수는 49.35㎏으로 계체량을 통과했다. 그쪽에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체중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갖고 있었다고 하더라. 하즈키 선수가 체중조절에 실패한 게 경기에서 패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하즈키 선수는 8월 17일 로드 FC 017대회 송가연의 데뷔전 상대인 에미 야마모토를 암바로 이긴 선수다. 그리고 ‘서커스 매치’ 운운하는 건 다 관심의 표현이라고 받아들이겠다. 이전에는 ‘송효경’이란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면서 그런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고 본다. 난 악플조차 없는 무관심보다 악플이라도 달리는 게 더 기분 좋다.”
격투기 선수가 되기 전에는 보디빌더, 퍼스널트레이닝 강사 등으로 수입이 좋았다고 한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격투기 선수가 되기 전에는 보디빌더, 퍼스널트레이닝 강사, 크로스핏 등으로 수입이 좋았다고 들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격투기에 입문하게 된 건가.
“남편과 이혼 후 내 인생에 대해 회의가 들었다. 내 잘못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 내 인생 전체가 흔들리는 게 너무 화가 났다. 그에 대한 분노가 솟구쳤지만, 그걸 풀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것이 복싱이었다. 복싱을 하고 격투기를 배웠지만 사실 룰은커녕 기술도 모르는 풋내기에 불과했다. 오기와 분노만 가득한 채 링 위에 오르다보니 얻어맞기 일쑤였다. 상대가 나보다 키가 작으면 쉽게 판단하고 덤벼들었다가 그라운드 기술에 압도돼 패한 적도 있었다. 난 격투기를 오래 할 생각이 없었다. 합법적으로 싸울 수 있는 상대, 그런 과정에서 내 분노를 터뜨릴 수 있는 상대만 있으면 오케이였다. 그러다보니 상대가 아무리 대단한 선수라고 해도 우습게 보였다.”
―왜 일본에서만 여섯 경기를 치렀나.
“한국에서는 내 체급에 맞는 상대 선수가 없었다. 로드 FC에는 김지연, 함서희, 송가연 등이 있지만 체급이 다 다르다. 그래서 일본으로 건너갔고 거기서 격투기의 신세계를 경험했다. 첫 번째 시합 상대가 고등학생이었고 나는 당시 스물 아홉 살이었다. 그 나이에 고등학생을 이기지 못하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시합을 뛰니까 2분씩 하는 3라운드가 3시간은 더 되는 듯했다. 체력 고갈로 결국엔 판정패 당했다. 두 번째 경기는 챔피언과 국가대표 출신의 40대 아줌마의 은퇴 경기였다. 그때도 상대를 만만하게 봤다가 큰코다쳤다. 경기 시작 15초 만에 암바 기술에 녹다운돼 경기가 끝났다. 세 번째는 고3 여학생이었다. 복싱과 유도 챔피언이었고 주짓수를 겸비한 ‘천재 소녀’였다. 그런 선수를 상대하는 내가 영광일 정도였다. 그런데 세 번째 경기부터는 허무하게 지지 않았다. 그 친구보다 타격이 앞섰는데 2라운드 서브미션 암바로 졌다. 그때부터 오기와 분노로 링 위에 올라갔던 데서 벗어나 진정한 선수로 대회에 참가하는 계기가 됐다. 아마 세 번째 경기 이후에는 그라운드 기술도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고 상대의 레슬링 기술이 들어와도 쉽게 넘어지지 않았다. 일본 격투기 단체인 딥에 속한 랭킹 1, 2, 3위와는 다 상대했었다. 물론 다 졌지만(웃음).”
―한국에서 처음 치른 대회를 통해 이만큼 인기와 관심을 끄는 것도 드문 일인 것 같다.
“격투기 경력이 3년밖에 안됐다.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 10년 이상씩 선수 생활을 하는데도 이름조차 알리지 못한 선수들도 많다. 그래서 그들한테 굉장히 미안하고 부끄럽다. 내가 아는 교수님이 이런 얘길 해주셨다. ‘맥주 거품처럼 살지 마라’고. 지금 내가 주목을 받고 있긴 하지만 난 연예인이 아닌 운동선수일 뿐이다. 앞으로 재활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이길 수 있는 경기를 치를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응원을 보내는 팬들에게 기쁨을 선물하고 싶다.”
사진출처=송효경 페이스북
―격투기를 하면서 돈은 벌고 있나. 대회가 많지 않아 생활이 어려울 것 같은데.
“맞다. ‘헝그리 스포츠’다(웃음). 이번 대회를 마치고 로드 FC와 3년 계약을 맺긴 했지만 계약금은 물론이고 방송 출연료 등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지원도 없이 혼자 고군분투 중이다.”
―생활이 안 되는데도 격투기를 할 것인가.
“지금까지 해온 게 아까워서라도 격투기는 계속 할 것이다. 단순히 ‘싱글맘 파이터’로만 알려졌다가 사라지면 그동안의 수고가 아까울 것 같다. 문제는 아들이 엄마가 하는 일을 매 맞는 직업으로만 인식할까봐 걱정된다. 나이를 더 먹으면 이전 내가 해왔던 직업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8월 17일 데뷔전을 갖는 송가연 선수와 이전부터 친분이 있다고 들었다.
“가연이하고는 격투기를 배우면서 친해졌다. 격투기 초짜들이라 서로에게 기대하고 의지하면서 운동을 했다. 내가 지난 대회에서 첫 승을 거뒀기 때문에 가연이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준비를 많이 한 만큼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치르길 바란다. 요즘엔 가연이가 방송 촬영하랴, 운동하랴, 바빠서 얼굴 보기가 힘들다. 종종 문자만 주고 받는데 가연이 시합 끝나면 얼굴 보고 회포 좀 풀어야 할 것 같다.”
―격투기에서 여성이라는, 그리고 미모를 앞세워 자신을 상품화시킨다는 비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얼굴이 예뻐서 격투기를 시작한 게 아니지 않나. 개인적인 아픔을 이기기 위해 시작한 운동이었고 대회에 나가다보니 외모에 대해 관심을 주셨고 또 대중적인 인기를 위해선 나를 어필해야 할 필요성도 느꼈다. 일본에선 못 느꼈지만, 이번 한국 대회를 뛰면서 관중들이 보내는 응원, 격려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깨달았다. 그래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대회를 터닝 포인트로 삼고 다시 선수 생활을 이어가려 한다. 이길 수 있다면 내가 못할 게 없다.”
송효경은 지금 허리와 목 디스크 진단을 받았고, 양쪽 무릎 인대가 상당히 안 좋다. 그런데 9월이나 10월 정도에 시합이 있을 예정이라고 한다. “뛸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시합이 없어서 걱정일 때도 있었는데, 지금 엄살을 부리는 건 사치다”라고 잘라 말한다. 아줌마, 엄마, 그리고 파이터의 존재감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