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집 없이 사는 인간들에게 집을 지어주고 싶었던 성주신은 하느님께 소원을 빌었다. 크게 감동한 하느님이 응답하시기를, 제비원에서 솔씨를 전해 받으라고 했다. 성주신은 솔씨를 받아 산천에 골고루 뿌렸다 (16쪽).’
이 책은 집 없이 사는 인간들이 안타까워 솔씨를 뿌려 재목을 키운 성주신 설화로 시작한다. 소나무는 인간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함께하며 우리를 지키는 나무였다.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에서 자라난 한국의 소나무는 외국 소나무에 비해 단단하고 강하다. 따라서 일반 가옥에서 사찰, 궁궐 건축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건축 자재로 여겨왔다.
소나무 집에서 푸른 생솔가지를 꽂은 금줄을 치고 아이가 태어나고 자란다. 시원한 솔숲은 놀이터가 되고 쉼터가 된다. 소나무 껍질로 양식을 삼아 배고픔을 달래던 시절 역시 서글픈 우리네 인생이었다. 소나무를 먹고 솔연기를 맡으며 살다, 죽으면 소나무관에 육신이 담긴다. 무덤가에는 둘래솔을 심어 망자를 지켰다. 신성하다고 여겨진 소나무가 우리를 지켜준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소나무는 또 많은 것을 내주었다. 생활용 그릇과 도구, 농기구의 재료가 되기도 하며 송이버섯ㆍ솔순ㆍ솔방울ㆍ솔씨 또한 쓰임새가 아주 많았다. 일상생활 곳곳에서 버릴 것 하나 없이 활용되어온 소나무의 모습이 이 책에는 빼곡하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함께해온 소나무의 참모습이다.
소나무는 우리 민족과 아픔을 공유하고 그 대가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인 1943년 가을부터 1945년 여름까지, 조선총독부는 한국의 모든 초ㆍ중등학교에 관솔 수집 총동원령을 내렸다. 할당된 양을 채우기 위해 소나무 밑둥치에 상처를 내고 송진을 뽑아냈다. 오늘날까지도 우리나라 솔숲 울창한 곳이면 어김없이 흔적이 남아있다.
일본인들은 한국 사람들의 민족정신을 말살시키려는 목적으로, 일본 소나무는 곧은데 한국의 솔은 굽었다는 ‘소나무 망국론’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 터무니없는 주장이었지만 그런 이야기를 퍼뜨릴 만큼 소나무는 민족을 대표하는 나무였다.
이처럼 저자 정동주는 한국인의 심성과 소나무와의 특별한 관계에 주목한다. 소나무의 생태학적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소나무가 서 있는 마을마다 삶의 나이테로 스미어 있는 애환, 소나무 한 그루에 깃들어 있는 세상 이야기, 식물학으로서의 소나무 이론, 한국인의 기상을 이루어온 솔그늘과 솔바람의 멋과 풍류를 전한다.
정동주. 한길사. 정가 2만 원.
연규범 기자 ygb@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