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에 대한 얘긴 이 쯤 하고 영화 <루시> 자체로 들어가 보자.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뇌’의 이야기다. 대부분의 인간은 뇌사용량이 10% 정도에 그친다고 한다. 그런데 누군가가 뇌를 그 이상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것이 이 영화의 기본 설정이다.
뇌사용량이 늘어나면 당연히 똑똑해질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설정은 그 이상이다. 24%의 뇌를 사용하면 자신의 신체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으며 49%를 사용하면 모든 상황을 제어할 수 있다. 또한 62%가 되면 타인의 행동까지 컨트롤할 수 있게 되며 100%를 사용하면 인간 이상의 존재가 되는 데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다.
허무맹랑하게 여겨지는 대목도 많다. 뇌사용량이 60%를 넘기면서 루시는 자신을 공격하는 조폭들을 하늘 위로 띄운 뒤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것도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영화를 보며 기자는 ‘내 머릿속의 뇌를 60% 이상 활용한다고 거구의 적들을 공중 부양시킨 뒤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게 가능할까’ 생각하며 의아해 했다. 이런 의아함에 대해 <루시> 제작진은 세계적인 신경학자 이브스 아지드를 비롯한 다양한 과학자와 접촉해 영화적 상상에 이론적인 현실을 적절히 접목했다는 밝혔다.
그렇지만 아무리 뇌 사용량이 늘어날 지라도 외국어까지 척척 해내는 모습은 다소 터무니없다. 뇌 사용량이 늘면 학습 능력도 급증하겠지만 루시는 학습과정도 없이 중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고 그 어려운 한자도 척척 쓴다. 심지어 한글도 손쉽게 읽어 낸다. 영화적인 상상이 어느 순간 이론적인 현실을 확 뛰어 넘은 게 아닌가 싶다.
이런 설정이다 보니 루시(스칼렛 요한슨 분)는 뇌사용량이 급증하면서 슈퍼 히어로가 된다. 루시가 자신을 납치하고 괴롭힌 절대 악 미스터 장(최민식 분) 일당을 물리치는 천하무적 슈퍼 히어로가 되는 것. 따라서 <루시>는 갑자기 머리가 좋아져 슈퍼 히어로가 된 한 평범한 여성의 원맨쇼라고도 정리할 수 있는 영화다.
뤽 베송 감독은 다양한 편집적인 기교를 가미했다. 루시가 미스터 장 일당에게 붙잡히는 장면에선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사냥하는 ‘동물의 왕국’같은 다큐멘터리를 교차 편집했으며 영화 중간 중간 노먼 박사의 강의를 추가해 인간의 뇌사용량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 이 과정에서 뇌 사용량이 현재보다 훨씬 미비했던 유인원의 모습도 등장한다. 인간의 행동을 동물과 비교하고 유인원까지 등장시킨 편집이 일정 부분 영화에 몰입하는 걸 방해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는 결말에서의 메시지를 위한 뤽 베송 감독의 의도적인 편집으로 풀이된다.
스토리 자체는 조금 어설퍼 보일 만큼 구멍이 많다. 특히 영화의 주된 스토리 흐름인 루시와 미스터 장의 만남들이 그렇다. 루시와 미스터 장의 첫 만남과 미스터 장의 루시 납치, 루시의 탈출과 기습, 그리고 이들의 최후 일전까지 둘의 운명적인 흐름에는 사실 구멍이 많다.
기본적으로 미스터 장이 루시를 납치한 까닭은 그의 배 속에 신종 합성물질을 집어넣어 어딘가로 운반시키는 것이다. 루시처럼 납치당해 배속에 합성물질을 넣은 세 남성은 곧바로 비행기를 타고 유럽 각지로 운반을 떠난다. 그런데 유독 루시만 비행기를 타지 않고 퀴퀴한 창고에 감금했다. 게다가 그곳을 지키는 조폭들은 루시를 성폭행하려 한다. 왜 미스터 장은 뱃속에 고가의 합성물질을 넣은 루시를 즉시 운반에 활용하지 않고 창고에 감금했을까. 결과적으로 루시는 창고에 갇혀 조폭들에게 성추행당하다 반항해 배를 가격당하고 이로 인해 뱃속에서 숨겨져 있던 합성물질 담은 봉투가 터진다. 이로 인해 엄청난 양의 합성물질이 루시의 체내로 들어가 격한 반응을 일으켜 루시의 뇌 사용량이 급증하게 만든다. 만약 미스터 장이 다른 이들처럼 루시도 곧바로 비행기를 태워 운반을 시켰다면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미스터 장이 루시를 감금시킨 부하들에게 배에 중요한 것이 들어 있으니 조심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는지도 의문이다.
게다가 미스터 장은 ‘절대 악’ 치고 너무 약하다. 루시와의 첫 만남 장면에서 ‘절대 악’다운 강렬한 모습을 선보이지만 루시의 뇌 사용량이 급증한 이후에는 너무 어이없게 당하곤 한다. 게다가 루시는 미스터 장을 처음 기습했을 때 양 손에 칼을 찔러 큰 상처는 남겼지만 죽이지는 않는다. 만약 미스터 장이 루시를 곧장 운반에 투입했거나 부하들에게 배 부위는 건들지 말라고 지시했다면, 내지는 루시가 처음 미스터 장을 습격했을 때 그를 죽였다면 영화는 거기서 끝이 났을 것이다. 이는 스토리 흐름에서 매우 커다란 구멍이다.
영화 <루시>는 크게 세 줄기의 영화다. 우선 첫 번째는 루시의 뇌 사용량이 평균치인 10%에서 차츰 증가해 100%에 이르는 과정이다. 두 번째는 루시가 이런 일을 겪게 된 미스터 장과의 인연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세 번째는 노먼 박사를 중심으로 인간의 뇌사용량이 인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다.
그런데 세 가지 모두 허술해 보인다. 우선 루시는 뇌 사용량이 늘어난 뒤의 단지 머리만 좋아진 게 아니다. 조폭 일당과의 대결에서 루시는 액션과 첩보를 넘나드는 슈퍼히어로가 되는 데 아무리 세계적인 신경학자의 자문을 받았다고 한들 너무 허무맹랑하다.
두 번째 루시와 미스터 장의 거듭된 만남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은 앞서 언급했듯이 구멍이 숭숭 뚫린 느낌이 든다. 세 번째 루시의 뇌 사용량이 100%에 이른 것이 인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영화가 정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스포일러일 수 있지만 영화의 결말은 뇌사용량이 100%가 된 루시가 인간 이상의 존재가 돼 노먼 박사에게 결정적인 메시지를 남긴다는 것인데 그 메시지가 뭔지는 공개하지 않는다. 다만 노먼의 속에 결정적 메시지가 전달되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그러다 보니 결말은 속이 텅 비어있는 빈병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배우 최민식이 출연한 할리우드 영화라는 것 정도에 만족하는 수준에서 만족하고 관람해야 하는 영화라는 결론이 나온다. 영화 <명량>을 통해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흥행 기록을 남긴 최민식의 할리우드 데뷔작인 데다 <명량>을 바로 뒤이어 개봉해 흥행 대박이 예상되는 영화 <루시>지만, 냉정히 볼 때 그리 엄청난 흥행 대박은 힘들지 않을까 싶다.
@ 이 영화 볼까 말까?
볼까?
1. 최민식의 팬이라면 추천. 영어 따위 전혀 쓰지 않고 한국어 대사만으로도 최민식은 훌륭히 할리우드에 데뷔했다.
2. 인간의 뇌, 현재의 인류보다 진보한 생명체 등 과학적인 사안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도 추천. 뇌 사용량이 급증하며 슈퍼 히어로가 된 평범한 여성이라는 설정은 분명 기발했다.
3. 뤽 베송 감독 마니아에게도 추천. 그의 영화는 늘 흥행을 위한 상업영화지만 독특한 세계관과 메시지를 지녔다. <루시>에서도 이런 뤽 베송의 면모는 이어진다.
말까?
1. ‘최민식 출연’에 너무 흥분하진 말다. 해외파 축구 선수와 비교하면 데뷔전에서 풀타임 출전했으며 몇 차례 강한 임팩트도 선보였지만 아직 볼터치와 슈팅 수는 그리 많지 않은 수준이랄까.
2. 인간의 뇌, 현재의 인류보다 진보한 생명체 등 과학적인 사안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이 영화보다 일본 작가 다카노 가즈아키의 소설 <제노사이드>를 추천하고 싶다.
3. 스토리의 얼개와 짜임새를 중시하는 관객에게도 비추다. 설정을 기막히고 스칼렛 요한슨, 최민식, 모건 프리먼의 연기에 뤽 베송의 연출력도 좋지만 스토리가 다소 허술한 게 치명적인 구멍인 영화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