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학봉 씨 | ||
“이제 나이 칠십이 되고 보니까 새벽 세 시가 되면 오줌이 어떻게나 마려운지 일어나게 되요. 그때 잠이 깨는 바람에 책을 읽는데 아침 여섯 시까지 공부한다니까요. 이제 완전히 할아버지가 됐어요.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고 있어요.”
그가 사람 좋은 표정으로 내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그래도 드라마에서는 아직 선글라스를 쓰고 젊던데요.”
내가 농담같이 말했다.
“그러지 마세요. 난 한 번도 검은 선글라스를 써 본 적이 없어요. 또 인상도 남들이 우직하고 단순해 보인다고 하지 그 탤런트처럼 날카롭고 야무지지도 않아요.”
그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는 어쨌든 중령 시절 전두환 소장을 보좌해서 정권을 바꾸어버린 역사의 주인공이었다. 인생 칠십이 돼도 변함없이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그의 전두환 사령관에 대한 시각을 먼저 알고 싶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물었다. 인간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모습이다.
“저는 육군 중위 시절 전두환 대통령과 만나 지내왔는데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부하들의 뱃속을 알아내는 데는 귀신이에요. 그 양반한테 거짓말하는 건 불가능해요. 그 양반 태도를 보면 정직하게 얘기하는데 단수는 고수예요. 세상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머리가 비상한 분이라니까요.”
“옆에서 지켜본 에피소드가 있으면 말씀해 주시죠.”
내가 말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미국에 가서 레이건을 만나는 자리에서였어요. 전 대통령이 갑자기 레이건을 보고 ‘우리가 사실 레이건 대통령 각하를 도와 드리려고 왔습니다’라는 거예요. 우리는 깜짝 놀랐고 그 말을 들은 레이건 대통령이나 배석한 미 국무장관도 기가 막힌지 웃더라고요. 그때 전두환 대통령이 레이건에게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일본은 한국의 6·25 덕을 보고 경제부흥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한테 탱크 한 대 거저 준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 제가 일본에서 50억 달러를 얻어낼 겁니다. 그 돈으로 미국의 군수물자를 사면 레이건 대통령 각하를 도와드리는 셈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하는 겁니다. 레이건이 그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껄껄 웃더라고요.”
그가 잠시 쉬었다가 말을 계속했다.
“한번은 냉장고나 텔레비전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민원이 올라왔죠. 전 대통령이 그 말을 듣고 청와대로 30대 재벌회장들을 불러 전기제품 가격 좀 내릴 수 없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재벌회장들이 저마다 죽는 시늉을 하면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더군요. 그 말을 들은 전 대통령이 그러면 미국이나 일본의 제품을 관세를 철폐하고 들여와도 되겠느냐고 물었죠. 그 말이 나오자마자 재벌회장들이 금세 태도를 바꿔서 손익분기점까지 가격을 낮추겠다고 약속했어요. 우스운 얘기 같지만 정치지도력이 경제를 잡은 거 아닙니까?”
이학봉 씨는 전두환 대통령이 즉흥적으로 어떤 일을 판단하고 과감히 실행한 예를 한 가지 더 들었다.
“ 전두환 사령관이 대통령이 되고 보니까 저축률이 형편없는 거예요. 은행에 돈이 있어야 사업을 하는 거 아닙니까? 대통령이 처음한 일은 모든 군인 월급을 현찰로 주지 말고 온라인으로 보내라고 했어요. 사실 우리 군인들 월말이면 술집주인에게 외상값 먼저 주고 나머지 돈을 집에 가져다 주던 시절이 있었거든요. 통장으로 월급을 받아든 장교부인들이 우리 남편 이렇게 월급 많이 받았는지 몰랐다고 모두들 좋아했죠. 그렇게 군인으로부터 시작해서 공무원, 공단까지 월급을 온라인으로 보내주는 걸 확대했어요. 월급이 나오면 단번에 그 돈을 다 찾는 집이 어디 있겠어요? 은행에 놔뒀다가 필요한 것만 찾아 쓰죠.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 저축률을 일본의 35퍼센트보다 3퍼센트나 높여 38퍼센트까지 단번에 만들었죠.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비난하고 우스갯소리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나름대로 대단한 능력이 있는 분입니다. 10·26이 일어나고 그 혼란한 시절 산적한 문제들을 누가 과감히 즉석에서 밀고나갔겠습니까?”
결국 10·26 당시 갑자기 생긴 권력의 진공상태에서의 즉흥적 행동들 역시 그들의 독특한 개성에서 나온 면이 있는 것 같았다.
“일개 육군 중령이 어떻게 그 서슬이 시퍼렇던 중앙정보부장을 조사할 수 있었죠? 더구나 김재규의 주장대로 혁명이 성공할 가능성도 있는 상태 아니었습니까? 간이 붓지 않으면 조사하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
내가 그의 배짱에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내가 대위 때부터 거물급들을 수사하다 보니까 간이 커졌어요. 보안사령부는 사실상 박정희 대통령 직속으로 있는 막강한 부대였으니까요.”
“중앙정보부장이던 김재규와는 아시는 사이였습니까?”
“김재규가 보안사령관을 할 때 저는 사령부 수사계장이었죠. 간첩을 잡으면 매일 사령관인 김재규에게 브리핑을 했었죠. 그 생활을 8년 하고 다시 수사과장이 됐죠.”
“김재규를 직접 조사하셨죠?”
“그렇습니다. 제가 부산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운전병한테서 박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사령부로 가니까 수사관들이 우왕좌왕하면서 눈치를 봅디다. 김재규가 내일 새벽이면 새 세상이 와서 다 잡혀갈 놈들이 나를 조사한다고 큰소리치니까 겁을 먹은 거죠. 저는 사태를 일단 ‘혁명적 상황’으로 판단하고 어느 부대가 서울로 쳐들어올지를 파악하는 게 급선무였어요. 어떤 부대가 혁명에 공모하고 쳐들어오는지를 알아야 막을 거 아닙니까? 새벽 한 시에 직접 조사실에서 김재규를 만났습니다.”
▲ 권총을 들고 박정희 대통령 시해 상황을 재현하는 김재규. 80보도사진연감 | ||
내가 물었다. 일반적으로 책임자는 보고만 받았다.
“저는 중요한 순간은 직접 피의자를 만나 얘기했습니다. 수사간부가 보고만 받으면 일선 수사관에게 속을 수가 있어요. 항상 직접 만나 핵심은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김재규를 처음 만났을 때 어땠습니까?”
“당장 나를 알아보면서 ‘자네가 수사책임자야?’라는 듯한 반가운 표정이더라고요. 김재규가 사령관을 할 때 내가 수사계장으로 브리핑을 했던 게 기억이 났나 봅디다. 보안사령부 서빙고분실도 사실 김재규 사령관이 만든 조사실이에요.”
“그러면 그때 김재규는 자신 있는 표정이었습니까?”
“물론 기본적으로야 자기도 불안은 한 것 같았어요.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걸 보고 그걸 짐작했어요.”
그때 종업원이 음식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왔다. 이학봉 씨는 갑자기 말을 중단하고 침묵했다. 이윽고 그의 얘기가 계속됐다.
“내가 김재규보고 ‘사령관님 왜 그러셨습니까?’라고 물었죠. 그랬더니 김재규가 나보고 ‘이미 판은 끝났어, 그럴 수밖에 없었어. 그게 나라를 위한 거야’라고 대답하더라고요. 저는 속이 바작바작 탔어요. 어느 부대가 김재규에게 동조하고 중앙정보부의 움직임이 어떤지 알아내서 전두환 사령관에게 보고해야 하는데 김재규가 자꾸만 동문서답을 하는 거예요. 김재규가 나보고 ‘그러지 말고 전두환 불러줘’라고 자꾸 부탁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저도 뭔가 알아야 가서 말씀드리고 오시라고 할 게 아닙니까?’라고 대답했죠.”
“그러면 당시 참모총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저는 만약 박정희 대통령이 죽지 않고 살아나셨다면 문제를 어떻게 처리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아마 궁정동에 있었던 정승화 참모총장과 김계원 비서실장을 가만두지 않았을 것으로 봤습니다. 저는 정승화 참모총장의 그날 행동을 우유부단하고 기회주의적이라고 봤습니다. 왜냐하면 대통령이 시해됐으면 바로 범인색출을 시작해야 하는 겁니다. 최소한 국방장관에게라도 즉각 보고해야겠지요. 그런데 그러지를 않았어요. 정승화 참모총장은 수도경비사령부로 전화를 걸어 청와대를 포위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이재전 경호실 차장에게 전화를 걸어 가만히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정 총장은 김재규와 어떤 부대를 출동시킬 것인지 논의하고서는 9공수여단은 육군본부로, 양평의 20사단은 태릉 부근으로 출동하라는 지시까지 내립니다. 국방장관한테는 보고하지도 않았죠. 나중에 이게 문제될 것 같으니까 다시 부대이동을 취소하는 명령도 내렸고요. 김재규의 말대로 정권이 바뀌면 자기로서도 어떤 기여를 한 것처럼 흔적을 남겨 놓으려는 것 같았어요.”
이학봉은 그날부터 김재규와 여러 시간을 얘기했다고 말했다. 김재규가 군사법정의 최후진술에서 말했듯이 민주회복을 위해 박 대통령을 시해한 이유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고 했다.
“김재규는 기본적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까?”
내가 물었다. 그는 법정에서 대통령이 될 의사는 없었다고 했다.
“김재규는 자기가 대통령을 하면 박정희보다 훨씬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야당 탄압을 늦추고 민주주의를 하면 미국 대통령 카터와의 불화 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였죠. 그리고 경제문제는 박정희 대통령같이 기업인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면 계속 문제없이 굴러간다는 사고였어요. 그리고 이상한 건 김재규가 우리보다 한 세대 위의 사람이라 그런지 미신을 많이 믿는 것 같았어요. 남산의 하얏트 호텔 아래 유명한 풍수쟁이가 있었죠. 그 사람이 김재규의 아버지를 이장하면서 앞으로 그 집안에 왕이 나온다고 했어요. 김재규는 그걸 믿고 있었던 것 같았어요. 김재규는 거사가 있으면 미국이 동조할 거라고 계산한 것 같았어요. 그게 오판이었죠. 제가 김재규에게 ‘어떻게 그렇게 치밀하지 못한 거사 준비를 했느냐’고 뭐라고 했죠. 그랬더니 하는 말이 ‘대통령을 죽이는 거사를 누구에게 말할 수 있느냐’는 거예요. 현장에 있던 측근 몇 명에게 실행 순간 말할 수밖에 없었다는 거죠. 참모총장 정승화만 옆에 와 있게 해서 동조하는 모습으로만 보이게 하면 된다는 거였죠. 계엄령을 선포하고 비상기구를 만들고 대통령이 되려고 했다는 거예요.”
이학봉 씨의 입에서 거침없이 얘기가 터져나왔다. 살피고 계산하면서 말하는 성격은 아닌 것 같았다. 그가 계속했다.
“내가 김재규보고 ‘대통령을 죽이면 그 치명적인 도덕성을 어떻게 감당하시려고 그랬느냐’고 했죠. 그랬더니 김재규가 그건 적당히 얼마든지 다르게 꾸며댈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거예요. 아마도 은폐나 조작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거 같았어요.”
“그런 김재규를 어떤 성품으로 보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김재규는 잔재주를 부리는 그런 사람은 아닙니다. 오히려 조금은 우둔한 편이죠. 말을 들어보니까 거사 전에 워낙 여러 가지 공상에 빠지다 보니까 실행계획이 너무 빈약했던 것 같아요.”
그의 말대로라면 결국 실패한 일인혁명이란 얘기였다. (끝)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