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1588년 정읍 현감으로 지낸 이순신 장군이 파직당하고 백의종군하면서 수군진영으로 가던 도중 갈재 아래서 하룻밤을 묵게 됐다. 이 사실을 간파한 왜군이 특수부대를 조직하여 입암산 갈재에서 매복을 하고 야간에 기습 암살할 계획을 세웠다. 하루 종일 걸었던 탓에 깊은 잠에 빠진 이순신 장군은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잠을 깨어보니 하얀 옷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곧 왜적의 침입이 있을 것이니 대비를 하라”고 말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이상히 여긴 이순신은 혹시나 싶어 급히 군졸을 깨워 야습에 대비, 침입해오는 왜군을 모두 사살하는 데 성공했다.’
옛길은 한 발짝 내딛는 순간부터 끝없는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주변을 이루는 자연경관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길의 숨겨진 사연까지 재잘거린다.
<옛길의 유혹, 역사를 탐하다>는 고행의 억울함이 사무쳐 있는 단종 유배길, 비참하게 죽음을 맞으며 나라를 뺏겨야 했던 삼별초 길, 신분의 벽을 넘어설 수 없었던 홍길동 길, 세상을 등지고 풍류를 즐기며 자연주의의 발걸음을 걸었던 김삿갓 길 등 다양한 인물과 사건들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
선조들이 걸었던 경제, 문화, 사상, 역사가 옛길에서 부활한다. 추악하고 부끄러운 진실이, 피 끓는 저항과 울분의 역사가, 감출 수 없는 인생의 노고와 성찰이 옛길 안에서 오롯이 피어오른다. 아는 것만큼 보이는 것처럼, 알고 걷는 것만큼 느낄 수 있는 길이 옛길이다.
저자는 옛길이라는 공간에 인문학이라는 생명력을 부여해 그동안 잠자고 있던 옛길의 숨결을 새롭게 살아나게 했다. 방대한 역사 고증과 인물 탐구가 함께 녹아 있는 옛길에 올라서는 순간, 미풍조차 예사롭지 않게 스쳐 지난다.
박정원 지음. 내안에뜰. 정가 1만 5000원.
연규범 기자 ygb@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