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지도부가 당무감사를 통해 ‘지역구 따로, 거주지 따로’인 당협위원장들을 솎아내겠다는 방침이다. 사진은 지난 20일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김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현재 여권에서는 9월 당무 감사를 앞두고 전국 당원협의회(당협) 현황 파악에 분주하다. 이군현 신임 사무총장 주도로 대책 회의가 소집되는 등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전언이다. 새누리당은 통상 현역 국회의원이 해당 지역구 당협을 맡고, 현역이 없는 곳은 별도로 당협위원장을 선출해 지역구를 운영한다.
당무 감사는 통상 1년에 한 번 이뤄진다. 평소라면 중앙당 예산이 허투루 쓰이는 곳이 없는지 점검하고 사고 지역구를 정리하는 형식적인 수준에 그친다. 실제 새누리당은 지난해 말에도 전국 당협을 대상으로 특별 감사를 실시해 10여 곳을 적발하고 일부 당협위원장을 교체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도부가 교체됐거나 총선과 같은 큰 선거를 앞두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특히 이번 감사는 김무성 대표의 당 쇄신 의지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김 대표 측은 평소에는 알기 어려운 원외위원장들의 활동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불법적인 활동이 적발된 당협위원장은 조직강화특위를 통해 곧바로 교체될 수 있다.
당 지도부는 이번 감사를 통해 ‘지역구 따로, 거주지 따로’인 당협위원장들도 솎아내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현역 의원보다 원외위원장이 많은 수도권은 상당수가 강남 3구를 비롯해 서울 시내에 거주하면서 정작 지역구 관리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 수도권 승리를 위해 지금부터 조직을 단단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한 고참 당직자는 이번 감사와 관련해 “2004년 오세훈법(정치자금법 개정)으로 지구당이 폐지되고 당원협의회 체제로 운영되면서 사실상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라며 “현역과 달리 당협위원장은 본인 이름으로 사무실을 운영할 수 없어 시·구의원과 합동으로 사무실을 내는 등 편법이 동원되는 실정이다. 정치자금 모으는 것도 불법이기에 일단 직함만 걸고 지역구 활동이 아닌 다른 일에 주력하는 이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원외위원장 가운데 상당수가 전임 지도부에서 선출된 친박계 인사라는 점에 있다. 이 때문에 김무성 지도부에서 당무 감사를 핑계로 원외위원장을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로 교체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친박 성향의 한 원외위원장은 “나 역시 여의도에 집이 있고 여의도로 출·퇴근 하는 상황”이라며 “선거도 없는데 감사를 통해 당협위원장을 무리하게 바꾸려는 움직임이 관측된다면 아무리 김무성 대표라도 거센 반발에 직면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악의 경우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한나라당을 집어삼킨 ‘살생부의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당시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측에서 총선을 앞두고 현역 의원들을 상대로 등급을 매긴 ‘당무감사표’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재오 맹형규 이상득 등 친이계 중진은 대거 A, B등급을 받은 반면 친박계인 서청원 김기춘 이주영 의원 등은 C등급을 받아 거센 반발을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이재오 당시 사무총장은 눈물로 사퇴하기도 했다.
새누리당의 한 전략통은 “당시는 총선을 앞둔 특수한 상황이었다. 김 대표 본인이 공천 학살의 피해자였던 만큼 인위적으로 사람을 바꾸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사무총장과 부총장 등이 지난번 지도부와 대척점에 선 이들이 많아 (김무성 대표가) 비박계 좌장이라는 구설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라며 “김 대표가 차기 총선에서 ‘전략공천 절대 없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현역 의원 물갈이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국내 정치 환경상 지역구 경선은 어떤 룰이든지 현역 의원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다음 총선을 보장하는 의리를 통해 원내를 포섭하고 바깥의 원외위원장은 시간을 두고 포섭하거나 교체할 수 있다. 일종의 투 트랙 전략인 셈”이라고 덧붙였다.
김무성 대표 측의 당권 확장 움직임에 친박계 진영에서도 나름의 대응책을 고심 중이다. 현재 당 지도부를 비롯한 원내는 ‘무대(김무성 대표 별칭)’가 장악하고 있지만 원외위원장 상당수는 여전히 친박계 조직에 의탁하고 있는 만큼 당과 거리두기를 통해 독자적인 행보를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 산발적으로 제기되는 중이다.
이와 함께 현재 요양 중인 서청원 최고위원, 봉사 활동에 전념 중인 김문수 전 경기지사의 정치권 복귀가 앞당겨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한다. 지난 4일 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이후 모습을 감춘 서청원 최고위원은 최근 측근을 통해 “국정감사가 시작되면 국회에 나가겠다”는 의견을 전했다고 한다. 7·30 재·보궐 선거를 불출마했던 김문수 전 지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하기도 했던 충북 음성군 꽃동네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후사를 도모하고 있다.
친박계의 한 재선 의원은 “당권은 넘어갔으니 앞으로 대권감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지 않겠느냐. 김 대표가 대권 욕심이 없다는 말을 그대로 믿는 이들이 있겠느냐”라고 반문하며 “김 대표에 당권과 대권 모두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김문수 전 지사를 띄울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당 안에서 서청원 최고위원과 이재오 의원 등이 합심하면 지금과는 또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전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