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지난 20일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다만 차기 대선 출마에 관한 질문만큼은 극도로 말을 아꼈다. 또 “언론에서 나를 ‘비주류 좌장’이라고 하는 것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며 자신은 ‘원조 친박’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날 토론회를 관심 있게 지켜본 이들이라면 김 대표를 더는 친박근혜계로 생각할 이유가 많지 않을 것 같다. 김 대표는 토론회 내내 박 대통령과는 다른 정치적 스탠스를 취하며 친박과 비박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선보였다.
“제발 부탁드리는데 대선에 관한 질문은 하지 말아주시고, 여론조사 기관에서도 제 이름을 빼주시기 바랍니다.”
김무성 대표는 20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차기 대선 관련 질문을 받고 한껏 몸을 낮췄다. 당 대표 임기 초반부터 차기 대권을 노린다는 이미지가 여러 면에서 부담인 까닭에서다. ‘김무성은 킹메이커이지 킹은 아니다, 라는 이미지가 있다’는 한 기자의 질문에 그는 “잘 보셨다”라며 받아치기까지 했다.
하지만 끝까지 차기 대권 욕심을 숨기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차기 대선에 출마하지 않는다고 밝혔다고 쓰면 되겠느냐’는 또 다른 질문에 김 대표는 “현재로서는 생각이 없다”라며 묘한 여운을 남겼다.
그가 끝까지 숨기지 못한 것은 또 있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과의 ‘어색한 관계’였다. 한때 친박계 좌장임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던 김 대표지만 지금은 비주류의 좌장으로 더 많이 거론된다. 본인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라고 부인하지만 지난 전당대회 당시 여권 내에서조차 “김 대표가 당선되면 현 정권 레임덕이 빨라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그리 낯설지 않았다.
이날 토론회 역시 김 대표의 말에서는 친박의 그림자를 지우고 독자적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가 곳곳에 묻어났다. “앞으로 고급호텔을 가지 않겠다”는 모두 발언 역시 그중 하나였다.
“제가 당 대표 당선되고 당 상임고문 34분을 모시고 오찬을 했다. 그동안 63빌딩 B 식당에서 했다. 1인당 22만 원 정도. 내가 지시해서 국회 앞 D 식당에서 했다. (상임고문들에게) 양해를 구했는데 아주 잘했다고 했다. 공식 모임이 아니더라도 앞으로는 호텔이나 고급식당에 가지 않겠다.”
보수 혁신을 위해 작은 것부터 실천하겠다는 취지였지만 그의 발언에서 박 대통령이 떠오르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박 대통령은 당 대표 시절 보안이나 편리성을 이유로 각종 오찬이나 간담회 등을 고급호텔에서 추진해 왔다.
이와 함께 김 대표는 ‘청와대가 구중궁궐 식으로 운영돼 소통과 국정 효율에 대한 지적이 많다. 청와대가 좀 더 백악관 식으로 소통이 잘되도록 노력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청와대 설계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제가 청와대에서 2년여 정도 근무한 경험으로 볼 때 청와대는 설계가 잘못됐다. 비서실장이 대통령에게 결재를 받으려면 자기 방에서 내려와 차를 타고 경호원들이 지키는 문을 2개 통과해서 본관에 도착, 어김없이 검색대를 통과하고 또 2층 계단을 걸어 올라가 그 큰 방에서 대통령에게 걸어가서 보고를 하는 구조다. 잘못된 설계에서 권위주의 분위기가 더 강화된다고 생각한다. 빨리 청와대 집무실 구조를 바꿔야한다.”
주요 이슈에 관해서도 그는 한때의 주군과는 생각이 참 달랐다. 올 초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은 블랙홀”이라며 개헌 논의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것과 달리 “앞으로 속도를 내겠다”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5년 단임제는 우리 실정에 맞지 않다. 무능한 대통령에게 5년은 너무 길고 유능한 대통령에게 5년은 너무나 짧다. 어쨌든 3분의 2 이상의 지지가 나오는 것이 4년 중임제다. 개헌 논의는 너무나 큰 이슈라 집권 초기에 하게 되면 블랙홀이 생긴다는 이유로 미뤄졌던 것이다. 이미 17대, 18대 국회에서 준비된 부분이 있다. 시작하면 빨리 될 수 있다. 세월호 특별법 논의가 끝나면 이 문제를 시작할 때가 됐다.”
개헌과 더불어 민감한 이슈인 증세에 관해서도 그 필요성을 역설했다. 지난 대선 ‘증세없는 복지’를 외쳤던 박근혜 대통령과 미묘하게 대립되면서 눈길을 끌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감세가 옳았는지 회의적이다. 우리나라의 낮은 조세부담률에 대해 생각해볼 때가 됐다. 국민에게 복지 욕구를 자제해달라고 부탁하긴 어렵다. 세금은 안 들어온다. 그럼 방법이 있나. 그러니까 증세 부분에 대해서 검토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다.”
이는 단순 일회성 발언이 아니기도 했다. 김 대표는 같은 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책세미나 자리에서도 소득 양극화 문제 해결책으로 부유층 증세 등을 주장한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스 피케티에 관해 “개인적으로 피케티 주장이 맞다고 생각한다”라며 증세를 통한 재정건전성 강화에 힘을 실었다.
또 대북 문제와 관련해서는 “기본적으로 정부 방침대로 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좀 더 전향적인 자세를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이와 함께 최근 인천아시안게임 북한 선수단 초청 협상 문제에 관해 일침을 가했다.
“우리 정부가 쩨쩨하게 놀았기 때문에 협상이 결렬된 것이다. 그 협상장에서 우리 정부가 ‘국제관례’를 따른다고 했는데, 이런 것은 통 크게 양보해 북한에서 원하는 대로 선수단과 응원단이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부 해봐야 30억 원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런 것이 남북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김 대표는 당 대표 취임 당시 박 대통령과 정례회동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청와대에 제안은 하셨는지’라는 질문에 그는 멋쩍은 듯 “제가 너무 바빠 대통령을 만날 엄두를 못 내고 있다. 비서실장, 정무수석과 필요한 소통을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토론회장 뒤쪽에서 한 노신사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자기가 바빠서 대통령 못 만나고 있다는 거 아냐, 참.”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