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와 한국시설안전공단 등으로 구성된 특별점검반이 20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지하철 9호선 공사현장 내부에서 터널 굴착장비인 쉴드TBM을 점검하고 있다. 왼쪽 작은 사진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의원, 관계자들이 22일 석촌지하차도 싱크홀 현장을 방문해 점검을 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이로부터 열흘이 채 안 된 13일, 조사단은 원인조사 도중 석촌지하차도 중심부에서 폭 5~8m, 깊이 4~5m, 길이 70m의 대형 동공을 추가로 발견했다. 또 사흘 후인 16일에는 동공 5개를 더 확인했다. 5개 동공 중 2개는 깊이 5m가 넘었고, 이후 크기를 확인한 나머지 세 개 중 가장 큰 것은 길이 16m였다. 발견된 싱크홀과 동공 길이를 모두 합하면 125m에 이른다. 490m짜리 지하차도의 밑바닥 4분의 1이 언제 주저앉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자동차들이 통행해왔던 것이다.
서울시는 기자회견을 통해 “지하철 9호선 건설을 위해 석촌지하차도 하부를 통과하는 919공구의 쉴드터널 공사가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919공구의 지하터널과 지면 사이를 채운 부분에 빈공간이 생기면서 동공이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13일부터 조사단은 석촌지하차도 양방향 차량 통행을 전면 통제하고 정밀안전진단에 나섰다. 이은상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 도시철도토목부장은 “919구간을 40m 간격으로 시추조사를 하고, 레이더로 지하공간이 없는지 확인했다. 추가 동공 발생 위험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고 말했다.
이런 서울시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다. 공사장 바로 앞 카페의 한 아르바이트생은 “오는 손님들이 불안해하는 게 느껴진다. 특히 공사현장과 가까워서 싱크홀 발생 이전보다 20% 정도 매출이 줄었다”고 말했다. 공사장 바로 옆에는 393세대가 사는 아파트가 있다. 이 아파트의 관리사무소 직원은 “9호선 공사를 시작할 때 설치한 수평 계측기를 이전보다 더 자주 확인하고 있다. 주민들이 많이 불안해한다”고 전했다.
서울시를 향한 주민들의 눈초리도 따갑다.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축소·은폐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는 첫 번째 싱크홀이 발생했을 당시 원인규명 없이 바로 흙을 메워버렸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원인 규명 후에 덮어도 될 텐데 뭘 감추려 하는 건가”라는 물음이 나왔다. 동공을 추가로 발견하고도 발표를 일부러 미뤘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서울시는 18일 긴급 브리핑을 열어 동공 5개를 추가로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사흘 전 파악했던 부분이었다. 현장에서도 “크게 문제되는 게 아닌데 자꾸 현장보존 해서 사회적으로 문제 만들 일이 뭐가 있느냐. 티 안 나는 곳은 사진 찍어놓고 석분으로 메우도록 했다”는 내용의 서울시 관계자 간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이번에 싱크홀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쉴드공법’이라는 것이다. 발파 작업을 통해 지하 공간을 확보하는 NATM(나틈)공법과 달리 드릴과 같은 원리로 원통형 굴착기구 쉴드를 돌려 땅을 파내는 방법이다. 연약한 지반을 공사할 때 폭발물을 사용하면 지반이 무너져버릴 수 있어 사용하는 공법이다. 연약지반에 주로 적용하기에 보강물질로 틈새를 막는 ‘그라우팅’이 중요하다.
서울시에서 꾸린 전문가 조사단은 그라우팅 기법에 문제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촘촘히 보강물질을 주입하지 않아 동공이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조사단에 따르면 동공이 발생한 구간에서는 수평 그라우팅 공법을 사용했다. 수평그라우팅 공법은 쉴드로 땅을 뚫어감과 동시에 지하에서 지반 보강물질을 주입하는 기법이다. 때문에 수직공법에 비해 보강이 제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
반면 수직 그라우팅 공법은 지상에 구멍을 뚫어 보강물질을 넣는 방식이다. 지상에서 작업을 하기에 더 쉽게, 촘촘히 지반 보강이 가능하지만, 지상에서도 굴착을 해야하기 때문에 일대 교통흐름이나 통행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서울시에서는 지하차도에 구멍을 뚫으면 교통 흐름을 막고, 도로 안전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판단에서 수평 그라우팅 기법을 시공사에 주문했다. 김상환 호서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수직 그라우팅 공법이 훨씬 안전한데도 주변 환경 때문에 수평 그라우팅을 적용해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쉴드공법의 안전성에 대해 “소음과 진동이 적은 고급 공법이지만 연약지반을 뚫는 만큼 세심하게 작업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서울시내에서는 암반지대에만 적용돼 왔다. 암반지대에서 하는 방식으로 연약지반에 작업하다가는 큰코다치는 수가 있다”고 말했다.
미흡한 쉴드공법 처리를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했음에도 같은 공법을 적용한 지하철 구간에 대한 서울시의 대처는 아직까지 미온적이다. 서울시는 지난 7월 싱크홀이 발생한 국회의사당 앞을 재조사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3.6km에 이르는 구간 중 단 두 곳만 시추한다. 이곳에서 싱크홀이 생겼을 당시 서울시는 “낡은 하수관이 깨지면서 새어나온 물로 빈공간이 생긴 것이다”고 발표했다. 여의도를 지나는 9호선 구간 역시 충적층으로 이뤄진 연약지반 지대에 쉴드공법으로 작업했다.
분당선과 공항철도 일부 구간에도 쉴드공법이 적용됐다. 성수에서 청담을 잇는 분당선구간과 김포공항사거리 밑의 인천공항철도 구간이 그곳이다. 해당 지역 위험도 조사를 계획하고 있는지 서울시 측에 물었으나 “그쪽은 코레일이 관리하는 곳이지 우리 책임 구간이 아니다”고 답했다. 기자는 코레일 측에 조사계획을 묻고자 수차례 토목부에 연락했으나 닿지 않았다.
서울시가 처음 싱크홀 사고 예방계획을 발표한 건 2013년 1월이다. 당시 “로드 스캐너 등을 이용해 3년 주기로 전수 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송파구 일대 싱크홀 발생 의혹이 인 지 수개월이 지나도록 위험요소를 미리 인지하지 못했다. 그사이 송파구에서만 이번에 발생한 동공을 포함해 9개 싱크홀이 발생했다. 예방은커녕 곳곳에서 일어나는 지반침하에 땜질처방만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싱크홀을 유발하는 원인 중 가장 흔한 것이 노후 상하수관의 균열이다. 서울시내 하수관거 중 30년 이상 된 것도 48.4%가 넘는다. 개중에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쓴 것도 있다. 서울시 도로관리과 관계자는 “오래됐지만 여전히 문제없이 쓰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후하수관이 계속 문제가 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계획적인 교체작업은 필요하다. 이에 대한 계획을 묻는 질문에 “매년 조사를 시행하고 있다”는 원론적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