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지주 민영화가 이번에도 물건너갈 경우 이순우 행장의 책임론까지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연합뉴스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우리은행장의 임기가 4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지난해 6월 우리금융의 신임 회장으로 취임할 당시 이 회장은 기필코 민영화를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자신의 임기를 올해 말까지로 제한했다. 우리은행장직을 겸직하고 우리금융 자회사 CEO(최고경영자)들의 임기 역시 본인과 같은 2014년 12월 30일로 못 박은 것도 민영화를 위해서였다.
이 회장 취임 이후 우리금융 민영화 과정에 잡음이 있기는 했지만 지방은행계열과 우리투자증권계열 매각이 성사되면서 지금까지는 생각했던 방안대로 진행돼왔다. 그러나 우리금융 민영화의 핵심인 우리은행 매각이 불투명하다. 정부는 우리은행 매각을 성사시키기 위해 예금보험공사의 우리은행 지분 56.79% 중 경영권을 포함한 30%는 한 곳에 매각하고 나머지 지분은 희망수량 경쟁입찰 방식으로 쪼개 파는 전략을 내세웠다. 하지만 흥행에 회의적인 시선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비록 경영권을 포함했다지만 30% 지분만으로 정부 입김에서 자유로이 경영하기 힘들다는 분석이 나오는가 하면, 희망수량 경쟁입찰 방식이 흥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우리은행 인수 희망자로 유일하다시피 한 교보생명이 매각 방안 발표 이후 시큰둥해진 점, 재무적 투자자들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점, KB·신한·하나 등 다른 금융지주사들의 주식을 연일 매입하고 있는 외국인들이 유독 우리금융 주식만 계속 매도하고 있는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
사모펀드의 참여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박상용 공적자금관리위원회(공자위) 위원장이 지난 6월 23일 우리은행 매각 방안을 발표하면서 “외국계도 누구나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고는 했지만 ‘론스타 학습효과’에 비춰 외국 사모펀드에 우리은행을 내주기는 힘들다는 것이 금융권의 중론이다.
이미 수조 원을 들여 여러 기업을 인수한 MBK파트너스, LG실트론 투자에 실패한 보고펀드 등 토종 사모펀드들의 상황도 여의치 않다. 은행권 관계자는 “사실 매각 방안이 나올 때 흥행할 것으로 보지는 않았다”면서 “그나마 희망수량 경쟁입찰 쪽은 흥행 여지가 남아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이유들로 네 번째 시도하는 우리금융 민영화가 또 다시 무산될 수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임기까지 제한하며 의지를 불태웠던 이순우 회장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한편 우리금융은 오는 11월 1일 우리은행에 흡수·합병될 예정이다. 11월 1일 이후 존속법인은 우리은행이 되고 이순우 회장은 우리은행장으로서 역할을 계속해 나간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회장 겸 행장이었으나 흡수합병 이후에는 행장으로 직함이 통일된다”며 “행장으로서 우리은행 매각 마무리 작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4개월 정도 남은 임기 동안 우리은행이 매각되리라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매각 이전 행장 교체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비록 매각 일정이 잡혀 있으나 임기가 만료되는 만큼 정식 절차를 밟아 차기 행장을 선임하게 된다”고 전했다. 우리은행은 조만간 행장추천위원회(행추위)를 구성하고 후보군을 추린 후 검증을 거쳐 차기 행장을 선임한다. 여기서 이순우 행장이 다시 선임되면 ‘연임’이 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이 선임되면 새로운 행장이 취임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매각 완료 때까지 연임하기를 바라겠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이 행장에게는 걸림돌”이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행장직은 본인이 원해서 오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면서 “특히 우리은행은 매각의 객체이기 때문에 청와대와 금융당국의 뜻이 중요하다”고 했다.
지난해 이 행장이 우리금융 회장으로 취임할 때도 청와대의 뜻이 큰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 적지 않았다. 이순우 행장이 현 정부 실세들과 돈독한 사이라는 것이 한몫했다는 이야기다. 대구고-성균관대 법대 출신인 이 행장은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고등학교 6년 선배에다 허태열 전 비서실장의 대학 학과 후배다.
박근혜 정부 초기 ‘금융권 인사는 최경환과 허태열로 통한다’는 얘기가 있을 만큼 이 행장의 우리금융 회장 취임 당시 최 부총리와 허 전 실장의 금융권에 대한 힘은 막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행장이 우리금융 회장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이 두 사람의 힘 덕분이었다는 얘기다. 일부에서는 허태열 전 실장이 인사파동·불협화음 등의 이유로 불과 5개월 만에 전격 경질된 데는 이순우 회장과 관련된 일도 있다는 말이 떠돌기도 했다.
금융권의 다른 관계자는 “최 부총리·허 전 실장과 이순우 행장이 친한 사이라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라면서 “이 행장이 우리금융 회장에 오른 후 계열사 CEO 인사가 늦어지고 일부 교체되기도 했던 것 등의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얘기가 많았다”고 전했다. 당시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현재 경제부총리에 올라 있고 허 전 실장은 ‘경질’된 상태다. 이 관계자는 “이순우 행장의 존재가 부담스러울 수 있을 만큼 최 부총리는 높은 위치에 있고 허 전 실장도 없는 상태라 이 행장의 연임을 장담할 수만은 없다”고 덧붙였다.
금융권에서는 아직 이 행장의 연임 가능성에 점수를 더 주고 있다. 어차피 민영화 이후에는 모든 직을 내놓을 것이라고 한 터에 우리은행 매각을 앞둔 상황에서 쉽사리 행장을 교체하기 어려운 탓이다. 이순우 행장은 지난해 우리금융 회장 취임 당시 “민영화를 이루고 나면 임기에 상관없이 회장직과 은행장직을 내려놓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현재 이순우 행장이 연임을 위해 가장 큰 무기로 “성공적인 민영화 마무리”를 내걸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민영화가 이번에도 어려워질 경우 이순우 행장은 임기를 이어가는 것은 둘째 치고 책임론까지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비록 우리은행이 매각의 객체지만 이순우 행장은 우리금융 회장 취임 직전부터 지금까지 내내 ‘민영화 성공’을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