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전면에 나서면서 그룹 경영 스타일에도 변화가 보이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더욱이 그는 이번 중국 출장에서 광둥(廣東)성에 있는 삼성전자 중국법인의 휴대전화 생산기지를 찾았다. 그가 중국 휴대전화 생산 공장을 찾은 것은 삼성의 핵심 성장 동력인 IT·모바일(IM)사업부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도다. IM사업부는 삼성전자 전체 영업이익의 69%를 차지하는 핵심 캐시카우(현금창출원) 역을 담당해왔으나, 중국 업체들의 저가폰 공세에 시달리며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2분기 중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도 현지 업체 샤오미(小米)에 내줬다. 중국 시장과 중국 업체가 삼성전자의 실적 회복에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IOC와 협약을 맺기 위한 중국 방문길에 생산공장에 들른 것이지만, 통상적인 방문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면서 “이미 삼성전자가 본사 인력의 15%를 현장 배치하고, 각종 경비의 30∼50%를 줄이라고 지시하는 등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간 것을 감안하면 이 부회장 나름의 시장상황에 대한 판단과 전략을 가다듬기 위한 수순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행보와 삼성전자의 경영적 결정도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 7월 8∼13일 미국 아이다호주 선밸리에서 개최된 앨런앤드코 미디어콘퍼런스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이 부회장과 팀 쿡 애플 CEO가 나란히 있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됐다. 이 부회장은 같은 달 29일 다시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가 지난 10일 귀국했다. 그 사이 지난 6일 삼성전자와 애플이 미국 이외 지역에서 스마트폰 관련 특허소송을 모두 취하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지난 15일에는 삼성전자가 미국의 사물인터넷(IoT) 업체 스마트싱스(SmartThings)를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19일 미국 공조 전문 유통회사 콰이어트사이드(Quietside)를 인수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부회장은 연초 사물인터넷 글로벌 1위 업체인 시스코의 존 챔버스 회장과 만난 데 이어, 지난달 1일 미국 스포츠 브랜드 ‘언더아머’의 케빈 플랭크 대표와 사업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일련의 경영적 결정이 이 부회장의 해외출장에서 나온 성과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굵직한 삼성의 의사결정을 이 부회장이 주도하는 모습이다.
이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그룹 차원의 경영 스타일도 변하고 있다. M&A(인수·합병)에 대한 접근 방식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예전보다 과감해지고 속도가 붙는 양상이다. 사물인터넷 사업과 관련해 5일간 2건의 M&A를 성사시킨 것도 이 부회장이 최종 결정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부회장(오른쪽)은 지난 8월 17일 중국에서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과 올림픽 공식후원 연장 계약을 체결하는 모습. 사진제공=삼성전자
사실 그동안 삼성전자는 모든 사업을 내부 역량으로 키우려는 경향이 강했다. 글로벌 IT 기업들이 적극적인 M&A를 통해 도약식 성장 전략을 추진할 때 삼성은 그런 흐름에서 신중모드를 유지해왔다. 2007년부터 현재까지 삼성은 총 21건의 M&A를 단행했는데, 이는 구글·애플 등 글로벌 IT 기업들의 1년 M&A 건수에 크게 못 미치는 숫자다. 삼성전자의 M&A 실적은 2007년과 2009년, 2010년에는 각각 1건씩에 불과했고, 2008년에는 아예 전무했다. 2011년에도 3건, 2012년과 2013년엔 각각 5건, 6건을 진행하는데 그쳤다. 삼성전자 내부 인사들은 “이 회장이 입원한 이후 이 부회장이 최종적인 의사 결정을 하는 경우가 늘면서 M&A에 대한 회사의 태도도 달라졌다”고 말한다.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작업도 빠르게 진행 중이다.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이 내년 1분기 상장을 앞두고 ‘몸값 높이기’가 한창이다. 옛 제일모직 패션사업부가 합쳐지면서 연 매출은 5조 원대를 돌파할 전망이다. 현재 제일모직은 이 부회장(25.1%),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8.4%), 이서현 제일모직 패션부문 사장(8.4%) 등 삼성가 3세들이 대주주다. 옛 제일모직의 소재사업부문은 지난 3월 말 삼성SDI와 합병됐는데, 이제는 글로벌 시장 1위인 소형 배터리의 역량을 모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삼성SDI의 최대주주는 삼성전자(20.2%)다. 이 합병으로 ‘삼성SDI-삼성전기-삼성테크윈-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전자사업 수직계열화가 완성됐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결국 잇단 합병으로 이 부회장의 입지가 더 단단해졌다는 것이다. 한때 증권가에선 제일모직을 중심으로 하는 지주회사 전환 시나리오가 나돌며 지배구조 전환의 수혜주가 생겨날 정도였다. 하지만 삼성이 반 공개적으로 “현실성이 없고 법적제약과 자금소요도 너무 많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낸 이후엔 순환출자 고리를 유지한 채 유사사업 부문 정리를 통한 사업집약화가 주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 정점에 이 부회장이 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그룹 경영의 전면에 나선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작품’으로 아직 눈에 띄는 성과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약점이다. 그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사물인터넷을 통한 스마트홈 사업, 자동차 부품사업, 의료 헬스케어 사업 등에서 스마트폰을 능가하는 미래 먹거리를 일궈내 주목할 만한 성적을 낼 때까지 안팎의 견제가 상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