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사용량이 늘어나면 당연히 똑똑해질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설정은 그 이상이다. 24%의 뇌를 사용하면 자신의 신체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으며 49%를 사용하면 모든 상황을 제어할 수 있다. 또한 62%가 되면 타인의 행동까지 컨트롤할 수 있게 되며 100%를 사용하면 인간 이상의 존재가 되는데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다.
이런 설정이다 보니 루시(스칼렛 요한슨 분)는 뇌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슈퍼 히어로가 된다. 루시가 자신을 납치하고 괴롭힌 절대 악 미스터 장(최민식 분) 일당을 물리치는 천하무적 슈퍼 히어로가 되는 것. 따라서 이 영화는 갑자기 머리가 좋아져 슈퍼 히어로가 된 한 평범한 여성의 원맨쇼라고도 정리할 수 있다.
뤽 베송 감독은 다양한 편집적인 기교를 가미했다. 루시가 미스터 장 일당에게 붙잡히는 장면에선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사냥하는 ‘동물의 왕국’ 같은 다큐멘터리를 교차 편집했으며 영화 중간 중간 노먼 박사의 강의를 추가해 인간의 뇌 사용량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 이 과정에서 뇌 사용량이 현재보다 훨씬 적었던 유인원의 모습도 등장한다. 인간의 행동을 동물과 비교하고 유인원까지 등장시킨 편집이 일정 부분 영화에 몰입하는 걸 방해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는 결말에서의 메시지를 위한 뤽 베송 감독의 의도적인 편집으로 풀이된다.
영화 <루시>는 크게 세 줄기로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루시의 뇌 사용량이 평균치인 10%에서 차츰 증가해 100%에 이르는 과정이다. 두 번째는 루시가 이런 일을 겪게 된 미스터 장과의 인연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세 번째는 노먼 박사를 중심으로 인간의 뇌 사용량이 인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다.
그런데 세 가지 모두 허술해 보인다. 우선 루시는 뇌 사용량이 늘어난 뒤의 단지 머리만 좋아진 게 아니다. 조폭 일당과의 대결에서 루시는 액션과 첩보를 넘나드는 슈퍼히어로가 되는데 세계적인 신경학자의 자문을 받았다고 하지만 너무 허무맹랑하다.
두 번째 루시와 미스터 장의 첫 만남과 미스터 장의 루시 납치, 루시의 탈출과 기습, 그리고 이들의 최후 일전까지 둘의 만남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이 구멍이 숭숭 뚫린 느낌이 든다. 세 번째 루시의 뇌 사용량이 100%에 이른 것이 인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따라서 이 영화는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배우 최민식이 출연한 할리우드 영화라는 것 정도에 만족하는 수준에서 관람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냉정히 볼 때 엄청난 흥행 대박은 힘들지 않을까 싶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이 영화 볼까 말까? 볼까 1. 최민식의 팬이라면 추천. 영어 따위 전혀 쓰지 않고 한국어 대사만으로도 최민식은 훌륭히 할리우드에 데뷔했다. 2. 인간의 뇌, 현재의 인류보다 진보한 생명체 등 과학적인 사안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도 추천. 뇌 사용량이 급증하며 슈퍼 히어로가 된 평범한 여성이라는 설정은 분명 기발했다. 3. 뤽 베송 감독 마니아에게도 추천. 그의 영화는 늘 흥행을 위한 상업영화지만 독특한 세계관과 메시지를 지녔다. <루시>에서도 이런 뤽 베송의 면모는 이어진다. 말까 1. ‘최민식 출연’에 너무 흥분하진 말라. 해외파 축구 선수와 비교하면 데뷔전에서 풀타임 출전했으며 몇 차례 강한 임팩트도 선보였지만 볼터치와 슈팅은 그리 많지 않은 수준이랄까. 2. 인간의 뇌, 현재의 인류보다 진보한 생명체 등 과학적인 사안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이 영화보다 일본 작가 다카노 가즈아키의 소설 <제노사이드>를 추천하고 싶다. 3. 스토리의 얼개와 짜임새를 중시하는 관객에게도 비추다. 설정이 기막히고 스칼렛 요한슨, 최민식, 모건 프리먼의 연기에 뤽 베송의 연출력도 좋지만 스토리가 다소 허술한 게 치명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