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의 손아섭(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이 근력 강화를 위해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원 안 사진은 두산 선수들이(사진제공=두산 베어스)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
# 그들에게는 아침이 없다
프로야구 선수들에게는 아침이 없다. 일반 직장인들의 시계를 4~5시간 정도 뒤로 돌리면 그들의 일과표와 비슷해진다. 취침 시간이 남들보다 늦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대부분의 경기가 오후 10시는 돼야 끝나고, 가끔은 11시까지 이어질 때도 있다. 한 선수는 “경기가 끝나고 집이나 숙소로 돌아간다고 해서 바로 잠들 수가 없다. 회사에서 오후 6시에 퇴근한다고 집에 가서 8시에 잠자리에 드는 건 아니지 않나”라며 “경기가 끝나고 몸의 긴장과 흥분 상태를 풀어야 잠이 온다”고 했다.
당연히 야구선수들에게는 오전 11시 이전에 전화를 걸지 않는 게 예의다. 웬만큼 급한 일이 아니고서야 가족들도 이른 아침에는 통화를 잘 시도하지 않는다. 또 다른 선수는 “새벽 3~4시에 잠들어서 권장 수면시간을 다 채우려면 대낮까지 잘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야간 배팅 훈련 중인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
# 홈팀 선수들의 경기 전 준비는?
홈팀과 원정팀 선수들의 일과는 조금 다르다. 홈팀 선수들은 보통 오후 2시 전후로 야구장에 출근한다(이하 평일 경기 기준). 대부분 집에서 점심을 먹고 야구장에 모인다. 특별타격훈련이나 트레이닝코치의 치료가 필요한 선수들은 더 일찍 나와 준비하기도 한다. 단체 훈련이 시작되는 시간은 2시30분. 단체로 몸을 푼 뒤 야수들은 타격과 수비훈련을 하고, 투수들은 러닝과 불펜피칭 등으로 각자 등판 스케줄에 맞는 훈련을 소화한다. 타격훈련은 그날 경기 선발 라인업에 포함된 주전 선수들이 먼저, 백업 선수들이 나중에 한다. 홈팀 선수들은 보통 오후 4시 30분 정도까지 모든 훈련을 마치는데, 먼저 끝낸 선수는 이 시간을 전후로 중계방송사 인터뷰나 언론사 인터뷰를 하기도 한다.
오후 4시40분부터는 투·포수조와 야수조가 나뉘어 미팅을 한다. 대부분 간단하게 끝나지만, 3연전의 첫 날은 평소보다 길다. 3일간 맞붙게 될 상대팀 선수들의 영상과 전력분석 자료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후 비로소 휴식시간이 온다. 선수들은 선수단 전용 식당에서 간단하게 늦은 점심 식사를 하고, 각자 라커룸 안 휴게실에서 짧은 낮잠을 자거나 간단한 잡담을 나누면서 시간을 보낸다. 가족이나 지인들이 야구장에 올 때는 미리 선수단 매니저를 통해 부탁해둔 표를 건네주기 위해 출입구 근처를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경기 시작 30분 전에는 모든 준비를 끝낸다. 경기용 유니폼을 갖춰 입고, 그라운드에 나와 워밍업을 시작한다. 일찍 와 있던 홈팬들이 환호로 그들을 맞이한다.
LG 트윈스 정의윤이 경기 전 훈련에 나서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원정팀 선수들의 경기 전 준비는?
원정팀 선수들의 오전은 더 여유가 있다. 홈팀 선수들보다 출근 시간이 늦어서다. 구단들은 대개 경기장에서 멀지 않은 특2급 수준의 호텔과 원정 숙소 계약을 한다. 방 하나에 적게는 7만 원에서 많게는 10만 원 정도 지출한다. 선수들은 경기 하루 전날 원정 숙소에 짐을 푸는데, 야간경기를 끝내고 이동할 때가 많아 새벽 체크인이 다반사다. 자연스럽게 오전 내내 잠에 빠지게 된다. 원정 숙소에서는 낮 12시나 오후 1시쯤 호텔 식당에서 뷔페식으로 차려진 점심을 먹는다.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를 위해 점심식사에는 전원 참석을 의무로 정해놓은 팀들이 많다. 선수들은 식사 후 다시 방으로 돌아가 좀 더 쉬거나, 숙소 인근을 산책하면서 몸을 깨운다. 호텔에 있는 피트니스클럽에서 근력 운동을 하며 경기를 준비하기도 한다. 홈경기 때 하는 웨이트트레이닝을 그곳에서 대신하는 셈이다.
오후 3시쯤이면 다 같이 모여 간단한 미팅을 한다. 홈경기 때와 마찬가지로 3연전의 첫 날 미팅이 가장 길다. 그 후에는 구단 버스를 타고 야구장으로 출발한다. 오후 4시쯤 도착해 외야에서 워밍업을 하고, 홈팀 훈련이 끝나는 4시 30분쯤부터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한다. 훈련 방식은 홈팀과 같다. 다만 훈련을 마치고 경기를 준비할 시간이 훨씬 짧다. 원정 숙소로 쓰는 호텔에서 오후 5시 정도쯤 라커룸에 뷔페식 저녁식사를 차려 주지만, 경기 직전이라 포만감이 들 정도로 많이 먹는 선수는 거의 없다.
# 경기가 끝나면 무엇을 하나
선수들이 경기를 마치는 시간은 대개 오후 10시쯤. 게임이 길어지면 간혹 11시를 넘기기도 한다. 선수들은 경기 후 곧바로 샤워부터 하고 늦은 저녁식사를 한다. 홈에서는 방법이 여러 가지다. 구장에 선수단 식사를 준비해 놓는 구단도 있고, 야구장 인근 식당과 계약해 선수들의 식사를 제공하는 구단도 있다. 주로 숙소에 살거나 혼자 사는 선수들이 애용한다. 결혼을 한 선수들은 물론 집에 가서 아내가 차려주는 밥을 먹는다. 원정팀 선수들은 숙소로 이동해 다시 호텔 식당에서 뷔페식 식사를 한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던 휴식시간이 온다.
사실 한밤중에야 자유를 찾을 수 있는 직업적 특성 탓에 예전에는 이런저런 ‘사고’를 치는 선수들도 많았다. 한 지방구단의 레전드 A 감독과 B 코치가 선수 시절 종종 아침까지 술 대결을 벌이다 경기 때 고생했다는 일화도 있고, 술집에서 만취한 상태로 옆 테이블 사람들과 주먹다짐을 벌여 경찰서까지 간 선수들도 많았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인기구단 선수들의 클럽이나 유흥가 방문 목격기가 입소문을 타고 인터넷에 퍼지기도 한다.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음주운전 사례는 셀 수도 없었다고 한다. 한 원로 감독은 “예전에는 경기장에서 상대팀과 1차전을 치르고, 경기가 끝난 뒤 경찰서에서 우리 팀 선수들과 2차전을 치러야 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 선수들은 확실히 달라졌다. 야구만 잘하면 프리에이전트(FA)로 엄청난 대박을 터트릴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어서다. 프로야구의 인기가 점점 올라가면서 몸 관리와 성적 관리에 대한 선수들의 책임감도 높아졌다. 한 야구관계자는 “TV 중계가 거의 없던 예전에는 하루 이틀쯤 잘 못해도 묻혔는데, 요즘은 매일 전 경기가 생중계되고 하이라이트도 방영되니 선수들이 경기력에 대한 부담을 많이 느낀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화면에 워낙 얼굴이 계속 클로즈업이 되니, 전날 밤 과음이나 과식이라도 하면 팬들이 먼저 알아차린다”고 귀띔했다.
요즘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워낙 발달해서 유명 선수가 술을 먹고 문제라도 일으켰다가는 금세 소문이 난다. 이런저런 이유로 대부분의 선수들이 시즌 중에는 저녁식사를 하면서 가볍게 술을 한두 잔 곁들이는 정도로 만족한다. 대신 선수들에게 생긴 새로운 취미가 바로 스마트폰 게임. 야구관계자들은 “알 만한 스마트폰 게임의 랭킹 상위권은 대부분 야구선수들의 이름으로 도배돼 있다”며 웃는다.
게임에 취미가 없는 선수들은 잠들기 전까지 방에서 TV나 컴퓨터로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일부 선수들은 각자 다양한 SNS를 통해 팬들과 교류하기도 하는데, 지나치게 개인적인 감정을 실은 글을 올리거나 팬들과 마찰을 빚는 일들이 생기면서 구단들이 한동안 ‘자제령’을 내리기도 했다.
배영은 스포츠동아 기자 yeb@donga.com
2군 선수의 하루 살펴보니 “팬들 욕조차 그립습니다” 2군 선수들은 사우나와 찜질방을 싫어한다. 한여름에 뙤약볕 아래 낮 경기를 치르다 보면, 어느새 땀이 한 바가지를 채우고도 남을 만큼 흐른다. 자연이 만들어준 불가마를 매일 경험한다. 당연히 일부러 땀을 빼는 장소는 기피대상 1호다. 퓨처스(2군) 리그에서 경기를 펼치고 있는 KT 위즈. 사진제공=KT 위즈 2군 선수들은 일단 ‘아침형 인간’이 돼야 한다. 오전 8시 정도면 홈구장에 모여 경기장으로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날 밤늦게까지 술이라도 먹었다가는 하루의 스케줄을 감당할 수가 없다. 자연스럽게 ‘건전한’ 생활을 하게 된다. 2군이 타는 구단 버스는 45인승. 1군은 25인승 두 대에 나눠 타는데, 2군은 한 대에 모두 몸을 실어야 한다. 체격이 큰 선수들이 앉으면 앞좌석에 무릎이 닿는다. 워밍업이 끝나면 오전 10시쯤 훈련이 시작된다. 1군은 자신의 배트와 글러브를 들고 뛰어 나가기만 하면 되지만, 2군은 배팅케이지를 비롯한 훈련 장비들을 모두 직접 설치하고 옮겨야 한다. 신인 선수들은 마운드와 운동장의 땅을 고르는 일도 한다. 점심시간은 낮 12시다. 당연히 1군의 호텔식 뷔페는 기대할 수 없다. 예산 자체가 절반이다. 밥과 국, 또는 햄버거나 샌드위치를 비롯한 ‘단품’으로 허기를 채운다. 최근에는 2군 전용 훈련장을 신설한 팀이 많아 식사의 질이 많이 좋아졌지만, 원정경기 때는 여전히 열악하다. 식사가 끝나갈 때쯤, 한낮의 무더운 더위가 서서히 엄습해 온다. 오후 1시. 경기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야간경기를 하게 되면 라이트를 켜야 해서 100만 원 정도의 전기료가 발생한다. 2군은 그 비용을 아껴야 한다. 무조건 해가 지기 전에 경기를 마쳐야 한다. 전날 비로 경기가 취소돼 더블헤더라도 치르게 되면 오전 11시부터 게임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경기 기록지도 선수들이 직접 작성하고, 스피드건도 선수들이 든다. 한 경기에 배정되는 심판도 1군보다 한 명 적은 3명이다. 게다가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관중은 없다. 2군 올스타전 출신인 한 선수는 “2군에서는 홈런을 쳐도 환호해줄 사람이 없고, 실책을 해도 비난할 사람이 없다. 팬들의 욕조차도 그립다”고 했다. 경기가 끝나 해산하면 오후 6~7시. 선수들은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한다. 물론 2군 숙소에 머물며 ‘특별 관리’를 받는 선수들에게는 야간 훈련이라는 숙제가 아직 남아 있다. 원정경기라면 다같이 숙소로 향한다. 2군 숙소는 호텔이 아닌, 야구장 인근 모텔이다. [은] |
비시즌에는 뭐하나 ‘사랑의 홈런’ 이때 아님 못쳐요~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팀은 10월 말, 그렇지 못한 팀은 10월 초에 한 시즌을 마친다. 시즌이 끝났다고 곧바로 쉬는 것은 아니다. 약 한 달 가까이 진행되는 마무리 캠프(베테랑 선수나 경기를 많이 뛴 주전 선수들은 제외될 때도 있다)까지 끝나야 비로소 짧고 귀한 ‘비시즌’이 시작되는 것이다. 프로야구 선수들의 월급이 지급되는 시기는 2월부터 11월. 1년 가운데 10개월만 임금을 받는다. 돈을 받지 않는 12월과 1월에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야구규약은 이 시기를 ‘비활동기간’이라고 명시해놓았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새해가 밝자마자 부랴부랴 투·포수조를 캠프에 보내는 팀들이 많았다. 선수들의 불만과 반발이 뒤따랐다. 그럴 수밖에 없다. 1월초부터 스프링캠프를 치르면 두 달간 해외에 나가 집을 떠나 있어야 하는데, 3월초 귀국하자마자 시범경기가 시작돼 다시 원정길을 떠난다. 시범경기 종료 후 일주일이면 곧바로 새 시즌 개막. 한 시즌이 끝난 뒤에도 마무리캠프나 교육리그 등이 기다리고 있다.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벗어나 재충전을 할 수 있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얘기다. 결국 프로야구선수협회가 각 구단에 비활동기간 준수를 강력하게 요청하면서 훈련 개시일이 15일 이후로 미뤄졌고, 단장회의에서도 해외 훈련은 20일 이후로 떠나기로 합의했다. 그렇다고 선수들이 비활동기간에 무조건 쉬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운동선수는 몸이 재산이다. 쉴 때도 그 몸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당장 몇 달 후의 성적표가 달라진다. 연봉이 많은 선수들은 자비로 삼삼오오 따뜻한 해외를 찾아 몸을 만들기도 하고, 젊은 선수들은 야구장 웨이트트레이닝장이나 집 근처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한다. 당장 스프링캠프와 함께 시작되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행복한 한 시즌을 보낸 선수들은 12월 초·중순까지 골든글러브 시상식과 각종 언론사 시상식에 줄줄이 참석하며 풍요로운 겨울을 보내기도 한다. 자신의 성적에 따라 상금으로 한 달 월급을 넘어서는 돈을 벌어들일 수도 있다. 해외파 선수들은 이 시기에 자선야구대회를 비롯한 불우이웃돕기 행사를 통해 뜻 깊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각 구단도 간판선수들과 연탄배달이나 어린이병원 위문 방문과 같은 사회봉사활동을 펼치면서 팬들에게 받았던 사랑을 나눈다. 이렇게 다양한 일정들이 모두 끝나면 비로소 진정한 휴식시간이 온다. 가족과 미뤄뒀던 여행을 가거나 지인들을 만나 회포를 푸는 게 주요 일과다. 또 미혼 선수들에게는 사랑의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유일한 시기다. 12월의 주말에는 프로야구 선수들의 결혼식이 끝없이 이어진다. 야구계 여기저기서 “이달에만 축의금으로 얼마를 썼다”, “하루에만 두 번의 결혼식을 다녀왔다”는 비명이 줄을 잇는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