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GM이 또 리콜을 하기로 했다. 지난 8월 7일 현지 언론은 GM이 북미지역에서 출시한 ‘트레일블레이저’ 등SUV(스포츠형 다목적 차량) 18만 9000대를 리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GM의 올해 리콜 규모는 끝도 없이 불어나고 있다. 올 들어 2900만 대를 리콜해 3000만 대에 육박하고 있다.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현대자동차에 1735만 달러(약 179억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NHTSA는 현대차가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생산된 구형 ‘제네시스’ 4만 3500대에서 결함을 인지하고도 리콜이 지연됐다고 지적했다. NHTSA가 지적한 결함은 미끄럼방지장치(ABS) 속 브레이크 오일이다. 오일이 강판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부식이 생기면 브레이크 성능이 저하되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등의 문제를 일으켜 충돌 위험이 생길 수 있다.
한국의 국토교통부와 같은 권한을 가진 NHTSA의 벌금 부과에는 이의 제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대차 측도 “이의제기 없이 벌금은 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같은 사항에 대해서 한국 국토교통부는 “처벌할 의사가 없다”고 밝혀 파문이 예상된다.
국토교통부 관계자에 따르면 국내의 경우 제네시스 리콜 사건은 지난해 1월 14일부터 시작됐다. 이날 브레이크 쪽의 부식 문제가 있다는 한 건의 민원이 접수된다. 그때부터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과 현대자동차가 이 문제에 대해 원인 규명에 들어간다. 한 달 뒤인 2월 14일까지 두 팀은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현대차 측은 원인규명에 실패하자 일단 무상 수리 캠페인에 들어갔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해당 결함으로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리콜보다는 무상 수리 캠페인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전했다.
현대차가 미국에서 제네시스 늑장 리콜로 180억 원의 벌금을 물게 됐다.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 홈페이지 화면 캡처.
미국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브레이크 내부에 부식이 일부 발생해서 이에 따라 제동력 저하가 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NHTSA에 무상 수리 캠페인을 진행하겠다고 신고했다”며 “그 당시에는 캠페인으로 진행하겠다는 결정에 당국도 문제를 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다 지난해 10월경 NHTSA는 현대차의 무상 수리 캠페인에 대해 소비자의 신고가 들어오자 리콜 조사에 들어가겠다고 알렸다. 현대차는 10월부터 무상 수리 캠페인을 리콜로 전환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강제 리콜보다는 자발적 리콜이 모양새가 좋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밝혔다. 곧이어 한국에서도 2013년 10월 23일 자발적 리콜을 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7일 NHTSA는 현대차가 브레이크 오일의 문제를 알고도 리콜이 늦었다며 현대차에 1735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사실 현대차가 NHTSA에게 거액의 벌금을 부과 받은 것에는 GM의 영향이 크다. GM이 시동키 불량 문제를 은폐해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는 의혹이 불거진 후부터 GM, 포드, 도요타 등이 법정 최대 벌금(부과 당시 기준)을 부과 받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는 GM리콜의 엄청난 후폭풍에 불똥이 튄 격이라고도 볼 수 있다. 제조물 책임법 전문가인 하종선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GM 리콜 사태 이후 안전문제에 관해서는 타협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의지가 강력하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제네시스는 한국과 미국이 똑같은 부품을 썼다. 사후조치도 무상 수리 캠페인 후 자발적 리콜 전환으로 똑같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징계 여부를 묻는 질문에 국토부 관계자는 난색을 표했다. 이 관계자는 “현대차에서 연구원과 같이 조사한 사항이기 때문에 벌금을 부과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처음 사건이 발생하고 같이 연구하고 해결을 모색한 사이인데 과징금 부과까지는 지나치다는 게 국토부의 입장이다.
하종선 변호사는 “미국은 제조물 책임법 강화를 통해 5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 수위를 높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0년 이하의 징역이라는 더 강력한 법 규정이 있음에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리콜이나 무상 수리 캠페인이나 고객의 입장에서 조치를 받는 것은 똑같다. 단지 리콜은 대외적으로 명기하게 되어있는 것이 다를 뿐”이라고 항변했다. 그럼에도 상황은 바뀌고 있다. NHTSA는 결함 사실을 알고 5일 이내 리콜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규정을 이행하지 않는 자동차 제조사의 경우 형사처벌까지 검토하고 있다. 제조사가 5일 이내 리콜하기 위해서는 매우 빠른 판단이 필요하다. NHTSA는 이 같은 조치로 리콜이 늦어 발생할 수 있는 불의의 사고를 막으려는 것이다. 국내 법은 결함 사실을 안 지 30일 이내 리콜해야 한다.
미국에선 안전 문제에 관해서는 타협 없이 법정 최대 벌금을 부과하고 있고, 그것에 더해 처벌 강화도 추진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더 강한 법이 있음에도 사용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미국산보다 좋은 국산 ‘브레이크’가 있음에도 밟지 않는 당국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도 가만있는 국토부에 처벌해달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