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국사건 변론을 오랫동안 맡으며 인권변호사로 활동해온 한승헌 사개추위원장이 최근 그간의 자료를 모아 변론사건실록을 펴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영욕의 세월을 거친 그가 소위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도 법도·원리 등을 벗어나지 않는 경지에 이른다’는 ‘종심’의 나이에 자신의 삶과 생각, 그리고 역사적 변론 사건의 진실을 총 망라한 실록을 펴냈다. 얼마 전 출간된 <한승헌 변호사 변론사건실록>이 바로 그것. 편안한 노후보다는 더욱 왕성한 활동을 통해 인생의 애환과 보람을 충분히 느끼고 싶다는 한 위원장을 지난 15일 만났다.
한 위원장은 지난 2004년 6개월간 <일요신문>에 ‘시국사건 재판의 현장’이라는 제목으로 변론사건을 연재하기도 했다.
―이번 회고록의 의미는.
▲내가 맡았던 시국 사건들은 아직까지 유·무죄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역사적 사건들이다. 그만큼 과거 독재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지키지 못한 사법부의 오판이 적지 않았음을 웅변해주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법정 안에서의 승패를 떠나 국민 앞에서 진실을 밝혀보고 싶었다. 연구자나 국민들의 판단을 돕기 위해 사건의 공소장, 최후진술서, 판결문, 항소이유서 등 재판 관련 문서를 수록했다. 60년대 이후의 현대사에 보다 정확하게 접근할 수 있는 사료를 집대성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시대 권력에 정면으로 맞서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내가 유별나게 용기가 있거나 정의감이 강해서 뛰어든 것은 아니다. 지난 65년 변호사 개업 후 처음으로 당시 반미·용공이라는 혐의를 받은 작가 남정현 씨 소설 <분지> 필화 사건을 맡았는데 내가 아는 문단의 친구가 고초를 겪는 것을 그냥 볼 수가 없어서 변호에 나서게 된 것이었다. 그 뒤로도 정권의 박해를 당하는 문단, 학계, 언론계 인사들이 연루된 사건을 외면하지 못해 많은 시국 사건을 변호하기에 이르렀다.
―고초를 많이 겪지 않았나.
▲이런 저런 회유와 협박을 많이 당했다. 감옥에도 두 번 들어갔다. 옥중에서 당시의 정치 현실이 개탄스러워 답답함을 금치 못했지만 한편으로 그 안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감옥 안에서는 공부를 집중적으로 했다. 국가가 의식주를 보장해주고 안전사고의 염려가 없었으며, 봄·가을 청첩장도 날아오지 않고 장례식장에 조문 갈 일도 없는가 하면 전화도 오지 않아서 면학 분위기가 최고였다(웃음).
▲사실 인권변호사란 호칭 때문에 손해 본 측면도 있다(웃음). 민사사건 의뢰인에게 사무장이 착수금 얘기를 꺼내면 “인권 변호사가 무슨 돈을 받느냐”며 ‘공짜’를 바라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가족들의 고통도 심했다. 그래도 내가 옥중에 있을 때는 지인들이 도움을 주셔서 가족의 생계는 해결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한번은 “아버지가 감옥에 있으면 명절 때 선물이 많이 들어오는데 석방되어 집에 있을 때는 선물이 줄어든다”고 말한 적도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굳이 꼽자면 지난 74년의 대통령긴급조치 1·4호 위반 사건, 그리고 89년 문익환, 임수경 방북 사건 등을 들 수가 있겠다. 위 사건들은 현대사에 미친 ‘임팩트’가 매우 강하다. 긴급조치 사건을 비롯한 시국사건으로 인해 구속된 각계 인사와 청년 학생들을 변호하면서 변호인인 내가 되레 피고인들의 애국열정에 감화됐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참여정부의 정책과 정국 운영에 비판의 소리가 높다.
▲92년 문민정부가 출범한 후 서서히 민주화 세력이 국정 운영의 중심체로 자리 잡은 점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변화였다. 그러나 최근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떨어지며 국민과의 거리 좁히기에 실패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하지만 매사를 집권자 탓으로만 돌리고 정부 잘못만을 들춰내는 식의 접근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국가의 기본 틀을 무너뜨릴 정도의 감정적 몰매는 나라의 장래에도 그다지 도움이 못 될 것이다.
―최근 일심회 간첩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국가보안법 존폐 문제가 또 다시 떠올랐다.
▲아직 혐의 사실만 알려지고 재판을 통한 실체 규명이 안 되고 있는 만큼 이 사건 자체를 보안법 문제와 연결시켜 논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법조비리, 검찰과 법원과의 영장 갈등 등으로 법조계 역시 시끄러운데.
▲현재의 사법부는 매우 행복한 위치에 있다. 준 사법기관인 검찰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법원과 검찰이 이번과 같은 일로 국민들에게 걱정을 끼친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사실, 법조비리, 전관예우, 법원과 검찰의 갈등 문제 같은 것은 예전에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러한 비리나 갈등 요소들이 수면 위로 떠올라 공론화되는 세상이 되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좋은 해법을 찾는다면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사법개혁법안의 국회 통과에 진통이 큰 것 같다.
▲관련 25개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지 오랜 시일이 지났다. 로스쿨 법안은 지난 4월 상임위원회에서 일부 수정 후 처리하기로 여야가 합의했음에도 한나라당이 하룻밤 사이에 백지화시킨 후 8개월여가 지난 현재까지 방치돼 있다. 정치적 쟁점이 조금도 없는 사안인데도 그처럼 지지부진해서 상당히 불만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야당이 사법개혁안의 발목을 잡는다는 얘기가 도는 중에도 나는 야당 간부를 찾아가 그들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심의라도 제대로 해달라고 설득하고 간청했다.
―고희가 넘은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70세 되던 해 고건 전 국무총리가 나보고 ‘두 번째 서른다섯 살’이라고 말해서 웃은 적이 있다. 아직은 현역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웃음). 앞으로도 많은 일을 하고 싶다. 내가 변호했던 100여 건의 사건 중 아직 정리하지 못한 30여 건 사건의 기록을 정리하여 <변론사건실록>에 추가·보완하려고 한다. 저작권법도 계속 공부해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강단에 서고 싶은 생각도 있다. 마지막 9회말에 진정으로 좋은 플레이를 하고 싶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