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일어났던 ‘역삼동 룸메이트 사망사건’은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되기는 했지만 풀리지 않는 의혹도 적지 않아 대법원의 판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화재진압 당시 원룸에는 김 씨뿐이었다. 쓰러진 채 발견된 김 씨의 주변에는 피에 젖은 거즈 조각들만이 흩어져 있었다. 그런데 화재 직전까지 원룸에 있었던 또 한 명의 여성이 있었다. 사망한 김 씨의 룸메이트 최 아무개 씨(여·27)였다.
김 씨와 최 씨의 첫 만남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남의 한 유흥업소에서 동료로 만난 두 사람은 사건이 발생하기 9개월 전인 2011년 초부터 역삼동의 7평 남짓한 반지하 원룸에서 동거를 해왔다. 하지만 둘의 사이가 원만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사건이 벌어진 그해 9월 16일에도 두 룸메이트는 서로 언성을 높이며 크게 다퉜다. 실랑이의 발단은 ‘빚’이었다.
김 씨와 금전관계가 얽혀있다고 말한 최 씨의 살해 동기는 충분해 보였다. 경찰은 화재 직전까지 김 씨와 함께 방에 머물렀던 최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최 씨는 사망한 김 씨가 자신에게 진 빚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차용증이나 통장거래 내역은 발견되지 않았다. 김 씨가 전화로 주문했다던 시너를 수령한 사람이 최 씨였다는 사실도 의심을 더했다.
1심 재판부는 이를 최 씨의 계획적인 범행이라 판단하고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법관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심증을 갖기에 부족하다”며 최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 사건 발단 된 ‘빚’은 존재하나
두 룸메이트의 갈등의 원인이 된 ‘빚’이 실제 있는지에 대한 부분은 법정공방의 주요 쟁점이었다. 당시 최 씨는 “김 씨에게 빌려간 돈 4700만 원을 갚으라고 하자 김 씨가 ‘내가 죽으면 4000만 원의 생명 보험금이 나오니 이를 가져가라’며 칼을 들어 자해를 시도했다”며 “칼에 찔린 김 씨를 지혈을 해주고 다음 날 아침 집을 나왔는데 이후 김 씨가 스스로 불을 지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수사당국은 최 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강남경찰서 강력3팀 관계자는 “사망한 김 씨는 평소 가족은 물론 주변에 빚을 졌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사망 직전 김 씨가 지인들에게 ‘거액의 빚을 져 차용증을 써야 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지만 당시에는 최 씨가 김 씨를 가장해 보낸 것으로 보고 검찰에 송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두 사람 사이에 채무가 있었는지에 대해 “의심할 정황은 있지만 자존심 등을 이유로 최 씨에게 빚진 사실을 말하지 않았을 수 있어 채무가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당시 최 씨의 변호를 맡았던 배재철 변호사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두 사람의 직업 특성상 현금이 자주 오갔기 때문에 차용증이나 통장거래가 생략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4000만 원의 거액을 빌려주면서 아무런 서류를 남기지 않은 점을 볼 때 둘 사이에 실제로 거액의 채무가 존재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 목에 찔린 상처는 누가?
검찰은 화재가 발생하기 전날 두 사람이 크게 다툰 사실을 직접적인 살해 동기로 판단했다. 검찰은 최 씨가 김 씨에게 차용증을 작성할 것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살해하려 한 것으로 보고, 최 씨가 흉기에 찔려 의식이 없는 김 씨를 화장실로 옮긴 후 불을 지른 것으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최 씨는 1심재판에서 “검찰의 기소 내용을 1%도 인정할 수 없다”며 줄곧 김 씨가 자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최 씨의 주장과 달리 자해를 한 김 씨가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지인들과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았다는 사실은 납득하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김 씨의 상처에서는 자해를 할 때 발견되는 ‘주저흔’(자해를 하는 사람은 심리적으로 한 번에 치명상을 가하지 못함. 김 씨의 경우 목에서 발견된 2군데의 상처의 깊이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남)이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검찰은 “주저흔 없이 2차례 목이 찔린 점을 볼 때 최 씨가 낸 상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 씨 측 변호사는 “2심 당시 5명의 의사들이 김 씨의 목에 난 상처를 보고 항거불능상태는 아니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기어 다니거나 음료를 마시는 것까지는 가능한 상태로 본 것이다”고 주장했다. 김 씨가 스스로 불을 지르는 것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결국 김 씨가 자해한 것인지 살해당한 것인지에 대한 엇갈린 진실은 대법원 판결에서 가려지게 됐다.
당시 사건에 대한 의혹을 추적한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화면 캡처.
# 불은 누가 질렀을까
‘불은 누가 질렀나’에 대한 의문점도 양측의 주장이 엇갈렸다. 목에 치명상을 입은 김 씨가 16시간 동안 생존해 있으면서 스스로 심부름센터에 전화를 해 시너를 주문하고 스스로 불을 지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한 공방이 치열하게 오갔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다른 데도 아니고 목을 찔린 사람이 전화로 말을 했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 사람이 전화로 시너를 주문했다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있었던 것이다”라고 당시를 기억했다. 검찰도 시너를 수령한 사람이 최 씨였다는 심부름센터 직원의 진술을 토대로 최 씨가 피해자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기름통을 배달한 뒤 불을 지른 것이라고 결론 냈다.
하지만 최 씨 측은 사망한 김 씨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혼자 방 안에 있다가 불을 질러 자살을 시도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2심 재판부도 김 씨가 의식불명상태에서 화장실로 끌려간 흔적이나 화상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지혈을 해준 뒤 집을 떠났고, 불은 그 후에 났다”고 한 최 씨의 주장이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고 일부 인정했다.
당시 경찰은 최 씨가 화재 현장에 있었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머리카락과 옷을 검사하려 했지만 이미 최 씨는 샤워를 하고 입었던 옷을 세탁해 이마저도 어렵게 된 상황이다.
# 설명되지 않는 최 씨의 행동들
1심과 2심의 판단이 180도 엇갈렸다 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최 씨는 치명상을 입은 친구를 지켜보고도 119에 신고하지 않았다. 그리고 최 씨는 사망할지도 모르는 김 씨를 두고 현장을 떠났다. 대전에 간다며 현장을 떠났던 최 씨가 다시 나타난 것은 119가 도착해 김 씨를 이송할 때였다. 당시 현장을 촬영한 영상에서 대전으로 떠났다던 최 씨가 김 씨가 들것에 실려 나가는 모습을 팔짱을 낀 채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한집에 동거했던 룸메이트가 치명상을 입은 상황에서 신고도 하지 않은 채 현장을 떠나고, 다시 돌아와 팔짱을 낀 채 구경꾼이 된 최 씨의 모습은 여전히 쉽게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최 씨가 과거 김 씨가 기르던 애완견을 죽인 적이 있다거나 정체불명의 약을 김 씨에게 먹여 정신을 잃게 한 적이 있다는 주변인들의 진술도 최 씨의 이런 이상한 행동에 의구심을 더했다.
최 씨는 조사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에 대해 “신고를 하지 않은 것은 지혈을 하고 응급처치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최 씨의 변호사도 “당시 최 씨가 애완견을 죽였다거나 정체불명의 약을 먹였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이는 김 씨 측 관계자의 진술이었다. 모두 사실무근”이라며 “최 씨는 6번의 경찰조사와 5번의 검찰조사에서 일관되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2심에서 최 씨의 무죄판결이 나온 직후 사망한 김 씨의 어머니는 자살기도를 했다. 2심 재판에서 무죄를 받고 혐의를 벗어난 최 씨는 현재 평소 하고 싶었던 음악공부를 하며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심과 2심의 판결이 엇갈린 ‘역삼동 룸메이트 살인 사건’은 3년이 흐른 현재, 대법원 판결만을 남겨두고 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