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의 단독주택에서 발생한 화재는 다문화가정의 불화가 원인이었다. 사진은 YTN 뉴스 화면 캡처.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없는 행복한 가정이었지만 사실 김 씨에게는 큰 고민이 있었다. 부인 A 씨가 딸을 낳고 점차 집안일에 소홀해지더니 급기야 밖으로 나돌기 시작한 것. 또한 A 씨는 한국인들은 기피하며 베트남에서 온 친구들만 만나려했다. 동네주민들도 A 씨와 제대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이로 인해 부부싸움이 잦아졌고 이를 지켜보던 차 씨와 A 씨의 고부갈등까지 심해졌다. 잘 타일러 보기도 하고 때론 야단도 쳤지만 살아온 환경도 다른데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아 좀처럼 관계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럴수록 김 씨는 술을 찾았다. 평소엔 조용한 성격이었던 김 씨는 술만 취하면 다른 사람으로 돌변했다.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난동을 부리기 부지기수였다.
지난달 23일도 김 씨는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진 뒤 거나하게 취한 상태로 귀가했다. 오후 9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지만 A 씨는 어딜 갔는지 모습을 찾을 수 없었으며 어린 두 딸만이 김 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손녀 꺼내라, 우리 손녀.”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 차 씨의 울부짖는 소리가 마을 전체로 퍼졌다. ‘펑’ 소리와 함께 김 씨의 집안 내부에서 치솟은 불길은 유리창까지 깨뜨리며 무섭게 번졌고 주변은 순식간에 검은 연기로 뒤덮였다. 마을 주민들의 만류에도 차 씨는 손녀들을 구하기 위해 집안에 들어가려다 자신도 전신에 2도 화상을 입고 쓰러지고 말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관들에 의해 불은 불과 20여 분 만에 진화됐지만 피해는 끔찍했다.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들도 놀랄 만큼 불길이 빠르게 번져 주택 내부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차 씨가 끝까지 목 놓아 불렀던 손녀들도 안방에서 연기를 마시고 쓰러져 숨진 채 발견됐으며 김 씨 역시 안방 화장실서 사망한 채 들것에 실려 나왔다.
경찰은 방화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화재의 원인을 살피는 한편 A 씨의 행방을 뒤쫓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튿날 새벽 동이 틀 무렵 A 씨는 너무도 태연하게 술 냄새를 풍기며 귀가해 이웃주민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알고 보니 A 씨는 집에 불이 난 것도 모르고 수원에서 베트남 친구들과 술자리를 즐기고 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외출한 덕에 화를 면한 A 씨는 뒤늦게 딸들의 사망소식을 접하고 놀란 마음에 경찰조사에서도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러다가도 남편 김 씨에 대해 물으면 “평소 술을 마시고 폭행을 휘둘렀다”며 확실하게 의사표현을 했다. 자칫 방화범으로 몰릴 수도 있었지만 의식을 잃기 직전 할머니 차 씨가 경찰에 “아들이 거실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였다”고 진술해 오해를 벗을 수 있었다.
화성서부경찰서 관계자는 “1차 감식결과로는 방화로 추정된다. 휘발유나 인화성 물질이 뿌려진 것 같다. 주택 마당에서 약 5ℓ정도 남은 20ℓ짜리 휘발유통이 발견되기도 했다. 부엌 싱크대 쪽에서 화재가 시작됐다는 감식결과와 발견된 휘발유통 등을 토대로 김 씨에 의한 방화에 무게를 두고 부인과 목격자 등을 상대로 정확한 화재 원인을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