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만 20세가 된 대학생 김영진 씨. 김 씨는 청약통장 1순위 가입자다. 미성년자도 청약통장에 가입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면서 부모님이 3년 전 김 씨의 이름으로 주택청약종합저축에 들어놓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앞으로 결혼을 하게 되면 이 청약통장을 활용해 주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임대주택에 입주할 생각이다.
청약통장의 기능이 바뀌고 있다. 부동산 투기를 없애고 서민층에게 내 집 마련 기회를 부여한다는 본래 목적은 줄어들고 저금리시대 재테크 통장으로서의 기능이 커지고 있다.
청약통장은 주택공급이 부족하던 1970년대 일정한 자격을 갖춘 이들에게 내 집 마련 기회를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정부는 1977년 주택공급규칙 개정을 통해 주택청약제도를 도입됐다. 이후 청약통장은 내 집 마련에 있어 필수 요소로 인식돼 왔다. 일부에서는 청약통장을 사고파는 불법 거래도 성행했다.
정부는 이 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2007년 청약가점제를 도입했다. 무주택기간이 길고 부양가족이 많으면 청약당첨 확률이 커지는 방식이다. 하지만 청약제도가 지나치게 복잡해져 인터넷 청약시 가점 기준이 되는 무주택 기간 등을 잘못 입력해 ‘부적격자’가 되는 사례가 속출했다.
청약가점제는 또 유주택자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돼 있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장이 침체기를 맞자 아예 청약 외면 현상까지 나타났다. 분양 아파트에 청약을 하더라도 통장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이른바 ‘4순위 청약’이란 단어가 나온 것도 이 때다. 4순위는 건설사가 미계약분을 대상으로 추가모집을 하는 것으로, 청약통장이 필요 없어 가점과 무관하다. 청약통장 무용론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것은 이 때문이다.
다행히 2009년 기존 청약저축, 예금, 부금 기능을 모두 포함한 주택청약종합저축이 출시, 인기를 끌면서 급격히 줄어들던 가입자가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주택청약종합저축은 월 2만 원 이상 50만 원 이내에서 5000원 단위로 자유롭게 납입이 가능하다. 납부한 총액이 1500만 원에 도달할 때까지는 50만 원을 초과해 자유적립을 할 수 있고 1500만 원을 일시에 예치해도 된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청약통장 4종 가입자는 모두 1676만 411명으로 1년 전인 지난해 7월(1598만 9831명) 이후 77만여 명이 늘었다. 이는 우리나라 총 가구 수(2010년 통계) 1733만 9422세대에 맞먹는 수치다. 1가구 1청약통장 시대가 본격화 된 것이다.
청약통장 가입자는 2009년 5월 주택청약종합저축이 출시된 이후 급격히 증가해 2008년 말 631만여 명에서 다음해인 2009년 말 1391만여 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이후 증가세가 계속되다 지난해 8월 가입자 1600만 명을 넘어섰다. 그렇다고 종합저축통장 출시 이후 가입자 증가세가 지속된 것은 아니다. 부동산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증가세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상황은 지난해부터 다시 달라졌다. 저금리기조 장기화와 정부의 소득공제액 확대 등이 증가세에 기폭제가 됐다. 현재 은행예금 금리는 2% 이하로 떨어져 있다. 상대적으로 금리가 3.3%(2년 만기시)인 청약통장(청약저축과 주택청약종합저축)이 인기를 얻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최근에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추가 인하했다. 반면 주택청약종합저축의 약정이율은 1개월 초과 1년 미만인 경우에는 연 2.0%, 1년 이상 2년 미만인 경우에는 연 2.5%, 2년 이상인 경우에는 연 3.3%다.
소득공제 규모를 강화하는 등 정부의 지원도 여기에 한몫했다. 지난 7월 가입자가 한 달 새 10만 6000명 이상 늘었다.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3개월간 신규가입자 신청을 받지 못했던 국민은행의 영업정지 처분이 끝난 이후여서 이기도 하지만, 정부가 소득공제액을 2배로 늘려주기로 한 것이 주효했다.
정부는 이르면 9월 중 조세특례제한법 국회 개정을 통해 청약통장의 재형 기능을 강화할 예정이다. 현재는 청약저축과 주택청약종합저축에 가입한 무주택세대주가 연 120만 원 한도 내 소득공제를 받고 있다. 하지만 관련법을 개정해 내년부턴 총급여 7000만 원 이하 무주택 세대주라면 240만 원까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7월 들어 청약저축과 예·부금 가입자 수 감소폭이 둔화되기 시작한 것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 금융결제원 통계를 보면 7월 말 신규 가입자는 종합저축 통장이 12만 3597명으로 6월(5만 8111명)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반면 청약저축통장 가입자는 10만 854명이 해지했는데, 이는 6월 해지자 11만 404명에 비해 감소한 수치다. 청약저축은 올 들어 매달 11만~12만 명씩 통장을 해지해왔다. 이는 청약예금과 부금 통장도 마찬가지다. 7월 들어 통장을 해지한 청약예금과 부금 가입자는 각각 3845명, 2388명으로 올해 들어 최소 규모다.
이 역시 청약저축, 예·부금의 재형 기능 강화와 무관하지 않다. 기금에 출연되는 것이 아니라 은행이 자체적으로 관리를 하지만 이율이 2%대로 일반 예금금리보다 높기 때문이다. 또 기존 통장 가입자들은 대부분 1순위 자격자들이라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정부가 현재 4개로 나뉜 청약통장을 하나로 합치기로 했지만 기존 저축, 예·부금 가입자들의 1순위 자격은 유지키로 했다. 청약통장이 내 집 마련이란 고유의 목적보다 재형저축으로서 기능이 더 커진 셈이다.
또한 미성년 자녀 증여공제액(2500만 원)을 고려해 자녀 명의로 주택청약종합저축을 가입하는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정부의 청약통장 재형 기능 강화는 국민주택기금 확대에도 순기능을 하고 있다. 청약통장 가입자 수 급증에 힘입어 올해 주택기금 조성액은 사상 최초로 104조 원을 넘어섰다.
우려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 청약통장이 통폐합되면 청약저축과 예금 등 공공 또는 민영주택으로 나눠 대기하던 청약 수요를 가늠할 수 있는 판단지표가 사라질 수 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청약사업지 별로 경쟁률과 당첨 선을 추측했던 시장예측 기능이 떨어지면 선호도가 높은 유망 청약사업지는 쏠림 현상이 극대화되는 청약 양극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수영 이데일리 기자 grassdew@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