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준 회장이 주요 계열사인 포스코특수강을 세아그룹에 넘기는 결단을 내리자 내부에서 반발이 거세다. 일요신문DB
지난 5월 19일 권오준 회장이 직접 기업설명회에 참석해 ‘신경영전략’을 밝힌 후 100일이 지나는 최근 포스코 구조조정에 속도가 붙고 있다. 계열사인 대우인터내셔널은 최근 보유하고 있는 경남 창원 대우백화점과 부산 쇼핑몰 센트럴스퀘어를 롯데그룹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또 포스코건설이 보유하고 있는 베트남의 다이아몬드플라자 역시 롯데그룹에 매각할 예정이다. 포스코는 또 보유하고 있던 SK텔레콤 잔여 지분도 조만간 전량 처분할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주요 계열사 중 하나로 분류됐던 포스코특수강을 세아그룹에 넘기는 ‘결단’을 내렸다.
최근 들어 잇따르고 있는 포스코의 구조조정 방향의 초점은 권오준 회장이 강조한 ‘철강 본연의 경쟁력 강화’보다 ‘재무구조 개선’ 쪽에 맞춰져 있는 듯하다. 잇단 자산 매각 결정도 그렇거니와 ‘철강 계열사’인 포스코특수강을 매각하기로 결정한 것도 철강산업 강화보다는 매각을 통한 자금 확보로 보인다. 특히 포스코특수강의 매각 결정은 업계는 물론 포스코 내부적으로도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포스코특수강은 당초 기업공개(IPO·상장)를 염두에 두고 있던 회사다. 포스코는 포스코특수강 상장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자 매각으로 급선회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상장과 매각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특수강 시장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상황에서 현대차그룹 현대제철의 특수강 진출 소식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듯하다”면서 “세아는 스테인리스 부문에 약하고 엄밀한 의미에서 특수강은 포스코가 추구하는 탄소강 위주의 철강 본연의 사업과 거리가 있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맞았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포스코특수강은 스테인리스 특수강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세아는 자동차용 특수강 시장 강자다. 충남 당진에 연산 100만t 규모 특수강 공장을 설립한 현대제철이 내년 특수강 시장에 본격 진출하면 현대·기아차를 주요 거래처로 삼고 있는 세아로서는 큰 타격이 예상된다. 스테인리스 특수강 시장 진출이 절실한 상황이다.
포스코 입장에서는 비록 포스코특수강이 스테인리스 시장 강자지만 지난해 포스코 전체 매출의 60분의 1밖에 차지하지 않은 데다 IPO가 좌절된 상태에서 비쌀 때 매각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가뜩이나 특수강 부문 경쟁이 갈수록 심화하는 추세다. 이번 딜은 둘의 이 같은 속셈이 맞아떨어졌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포스코특수강 매각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적지 않다. 포스코특수강은 엄연히 철강회사이며 매년 꾸준히 영업이익을 내고 있는 계열사다. 지난 4월 1일 공정거래위원회 기준 포스코의 46개 계열사 중 비철강 계열사가 적지 않고 이들 중 적자를 내는 계열사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포스코특수강의 매각 결정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게다가 포스코 측은 포스코특수강 매각설이 나돌던 두어 달 전만 해도 관련 사실을 줄곧 부인했다. 포스코특수강 노동조합이 매각에 강력 반발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왜 흑자 철강 계열사를 갑자기 매각하느냐는 것이다.
권오준 회장의 구조조정 원칙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권 회장은 흑자 계열사인 포스코특수강은 전격적으로 매각을 결정하면서도 적자에 허덕이며 매각설이 강하게 나돌았던 포스코엠텍의 경우에는 오히려 최선을 다해 정상화시키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포스코엠텍의 정상화를 위해 권 회장은 포스코가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는 취지도 밝힌 바 있다.
2011년 220억 원 적자에 이어 지난해에는 무려 680억 원의 적자를 낸 포스코플랜텍에 대해서도 권 회장은 자체 구조조정을 통한 정상화 쪽에 힘을 싣고 있다. 포스코플랜텍은 지난 1분기에도 17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포스코특수강 노조 측은 “죽어가는 세아베스틸을 살리기 위해 멀쩡한 포스코특수강을 넘기는 것”, “다른 부실기업의 매각이 안 되자 성과에 급급해 포스코특수강을 매각하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철강업계 일각에서는 현대제철의 특수강 시장 진출을 앞두고 위기감을 느낀 세아 측이 포스코에 먼저 포스코특수강 인수를 제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포스코 관계자는 명확한 답변을 회피하는 대신 “우리가 먼저 포스코특수강을 매각하려 했던 것도 아니며 구조조정 차원에서도 포스코특수강 매각은 전혀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며 “업계에서 그런 방안(포스코특수강을 세아에 매각하는 것)이 들어왔고 내부적으로 검토한 끝에 그게 좋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포스코특수강 매각과 구조조정은 별개의 일”이라면서 “철강업계를 위한 대승적인 차원에서 결정한 일로 봐달라”고 강조했다. 철강업계 다른 관계자는 “현대제철의 특수강 시장 진출이 두 기업의 위기감을 고조시켰다”면서 “포스코가 현대제철을 견제하고 세아베스틸을 살리는 길을 택했다”고 말했다.
아직 세아의 포스코특수강 인수가 최종 결정된 것은 아니다. 실사를 거쳐야 하며 무엇보다 포스코특수강 노조 설득이 관건이다. 포스코 측은 노조와 꾸준한 대화를 통해 합의에 도달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빠른 시간 내에 합의에 도달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적자 계열사인 포스코엠텍·포스코플랜텍을 살리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친 권오준 회장이 흑자 철강 계열사인 포스코특수강만은 매각하겠다는 사업 재편 결정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