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는 청부살인을 확신하고 장영두를 기소했다. 방글라데시인 공범의 확실한 증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심 법원도 유죄를 확정하고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검사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무기징역을 주자고 다시 항소한 상황이었다. 장영두가 유치장에서 형과 은밀히 말한 얘기 중에는 “있는 그대로 덮어”라는 의미심장한 내용도 들어 있었다. 그런 의심들을 가득 머리에 채운 채 나는 교도소로 찾아가 살인을 한 장영두와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수사기록을 보면 아무래도 청부살인이 맞는 것 같아.”
내가 일단 단정을 하면서 말했다.
“변호사님 그런 말 마세요. 정말 하 영감의 아들이 살인청부를 했다면 돈 1000만 원 정도 주고 모르는 사람을 시키지 왜 하필이면 나를 시키겠어요? 그 영감님 혼자 과수원 안에서 살고 있었는데 밤에 도둑놈처럼 몰래 들어가 죽이고 가면 어떻게 범인을 찾겠어요? 굳이 영감님하고 같이 5년 동안 과수원에서 살았던 나를 시킬 필요가 있겠어요? 또 방글라데시인 랭가에게 살인 대가로 2억을 주기로 했다면 나도 그 이상을 받아야 마땅한 거 아닙니까? 혼자 사는 늙은 영감님을 죽이는데 누가 4억~5억이란 큰돈을 주겠어요? 그건 말도 안 되죠.”
그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면 왜 영감을 오래전부터 죽이기로 했었다고 자백을 했죠?”
내가 물었다. 검사가 작성한 조서에는 그가 계획적으로 살인을 하려고 했었다고 자백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법은 검사가 작성한 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고 있었다. 번복하기가 사실 불가능한 것이다.
“담당 검사에게 속았어요. 검사가 하는 말이 ‘네가 영감을 죽일 동기가 전혀 없지 않느냐? 영감이 죽어서 이익을 볼 수 있는 건 100억이 넘게 상속을 받는 그 집 아들들밖에 없지 않느냐’라고 하면서 이리저리 따지는 거예요. 저도 검사의 말을 들으니까 그게 논리적으로 맞는 거 같았죠. 내 앞에서 토론식으로 말하면서 묻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렇다면 아들이 사람을 시켜서 죽일 수도 있겠군요’라고 대답했죠. 그런데 그런 말들이 나를 얽어맬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검사실에서 늦게까지 조서를 다 작성하고 나서는 서기가 그동안 친 조서 뭉치들을 앞에 툭 던져놓고 손도장을 찍으래요. 제가 포승에 꽁꽁 묶여 있고 수갑도 차고 있어서 제대로 차근차근 서류를 펼쳐볼 수 없더라고요. 검사나 서기도 피곤해 하고 저도 지치고 빨리 돌아가고 싶어서 그냥 찍어줬어요. 그리고 다음에 다시 조서를 받으러 갔을 때 뭐라고 하냐면 ‘지난번에 청부살인을 인정했으니까 그 다음을 묻는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그게 아니라고 하면 서기가 나보고 그러지 말라고 타이르는 거예요. 지난번에 청부살인을 인정해 놓고서 왜 지금 와서 다른 말씀을 하냐는 거죠. 전 그게 분명히 아닌데 엉뚱한 결과가 됐어요. 검사실 여직원이 나중에 손도장이 빠진 곳만 가지고 와서 거기다 찍으래요. 시키는 대로 했죠.”
나 역시 검찰관 시절 피의자나 참고인으로부터 여러 종류의 조서를 받아보았다. 앞에 사람을 멀쩡히 두고 조서상으로 바보나 범인을 만들기는 쉬웠다. 그들은 조서 내용을 찬찬히 보지 못했다. 조사를 하는 나에게 밉보일까봐 눈치를 보곤 했다. 그가 계속했다.
“형사들이나 검사가 매번 방글라데시인 랭가와 저를 싸움을 시키는 거예요. 방송국 기자들이 막 몰려왔을 때 랭가가 ‘그 할아버지를 죽이면 2억을 받기로 했다’는 말을 했을 때 사실 전 그 말을 처음 들었어요. 내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왜 그럴까 생각했어요. 형사나 검사가 청부살인이라고 가정을 해놓고 랭가를 유도해서 그렇게 만든 거라고 생각해요. 랭가란 놈이 도대체 어떤 이유로 그렇게 거짓말을 했는지 모르겠다니까요. 아마 내가 형사를 데리고 가서 체포했으니까 나를 미워한 거겠죠.
사실 저도 미안한 점이 있어요. 하 영감님을 죽이고 났을 때 랭가보고 어떤 경우에도 넌 불지 않겠다고 안심을 시켰죠. 그러다가 자수를 하고 생각하니까 이왕에 벌어진 일인데 전부 사실대로 얘기하자고 생각해서 랭가 얘기도 하고 형사들에게 랭가 있는 곳을 말해준 거죠. 랭가는 저한테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게 맞아요. 저보다는 형사나 검사를 더 신뢰하게 됐죠. 그리고 형사나 검사가 유도하는 대로 말하면 자기가 형이 가벼워지겠구나 계산하는 거 아닌가 몰라요.”
랭가는 잡히자마자 청부살인의 모든 것을 순순히 자백한 것으로 조서에 기록되어 있었다. 또 경찰서에서 방송국 기자들과 인터뷰해서 2억 원의 청부살인사건이라고 말한 것이다. 수사기관 고위 당국의 허락이 없으면 전국적인 그런 보도는 어려웠다.
수사공권력이 공작을 하고 일선에서 조직적으로 움직일 때 그걸 저항하기는 불가능했다. 장영두가 말을 계속했다.
“저는 자수를 한 입장이었죠. 웬만하면 형사나 검사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대답하려고 조서를 작성하는 바람에 이렇게 된 거예요. 일심 재판을 겪고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 보니까 검사, 판사, 변호사한테 놀래켜서 속은 거 같아요. 이제부터는 그 사람들이 미워하거나 좋아하거나 눈치 보지 않고 안 한 건 안 했다고 말할 겁니다. 내가 더 불리해지더라도 사실대로 말할 거예요.”
그가 결연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검사한테 놀래켰다는 건 무슨 말이죠?”
“검사실에서 검사하고 대화를 많이 했어요. 검사는 상속받을 아들이 아니면 살인의 동기가 없다는 거예요. 제가 남의 땅을 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영감님이 집 안에 돈을 두지도 않고 도대체 영감을 죽일 이유가 없다는 거죠. 그래서 저도 검사에게 그 영감님이 큰아들, 둘째아들한테서 상속 포기서를 받을 때부터 옆에서 그걸 알고 걱정을 했다고 했어요. 상속을 포기시키면 그나마 1년에 한두 번이라도 찾아오던 아들들의 발걸음이 그치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말이죠. 검사하고 이런저런 가정을 같이 얘기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내가 바로 아들의 하수인이 되어 살인청부를 받은 걸로 됐다니까요.”
“그러면 변호사한테 놀래켰다는 건 뭐죠?”
내가 물었다.
“나중에 변호사가 가지고 온 조서들을 보니까 내가 말한 취지하고는 전혀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아닌데’라고 말했어요. 그 말에 변호사는 ‘이미 그렇게 자백을 했으니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자’고 했어요. 난 속으로 안 했더라도 자백을 하면 변호사가 판사와 뒤로 협상을 해서 징역을 가볍게 하는가 보구나 생각하고 가만히 있었죠. 그런데 난데없이 징역 15년이 떨어졌어요. 그게 아닌데요.”
“일심 재판에서 판사에게 속았다는 건 또 뭐죠?”
법조계와 일반인의 의식은 전혀 다르다는 걸 느끼면서 물었다.
“판사는 내가 뭐라고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그냥 살인범으로 결정을 내버리는 거예요. 심지어 변호사가 법정에서 신문할 기회도 주지 않고 말이죠. 이젠 판사나 검사 그 사람들을 무서워하고 존경할 필요도 없어요. 내가 그 사람들하고 똑같이 지식이 많으면 판·검사 하지 왜 배농사 짓겠어요? 못 배우고 어려운 사람 사정을 헤아려 주지는 못할망정 살인범으로 몰아버리고 말도 못하게 했어요. 앞으로는 받아주거나 안 받아주거나 내가 할 말은 하고 가야겠어요. 그래야 나중에 후회라도 안 되죠.”
“지금 교도소 안에서 어떻게 생활해요?”
내가 물었다.
“저녁 때마다 판결문을 보면서 내가 정말 이렇게 나쁜 사람인가 되묻고 있어요. 검사는 반성하지 않는다고 항소이유서에서 나를 죽일 놈으로 만들어놓고 무기징역으로 형을 더 높이자고 하는데 이제는 눈물도 나지 않아요. 판결문을 아무리 봐도 이치에 맞지 않고 증거도 없는 것 같아요.”
“뭐가 이치에 맞지 않아요?”
내가 물었다.
“내가 영감님을 죽이기 위해 랭가를 데리고 세 번을 사전에 먼저 답사했다고 나와요. 하 영감 과수원에 간 건 맞아요. 그렇지만 그 안에 축사를 개조해 내가 살던 집에 일이 있어 간 건데 그걸 살인을 위해 답사하러 갔다고 꾸미는 건 억울하죠. 내가 살던 농장 안의 집에 사람이 이사 들어 왔어요. 집수리를 한다고 해서 랭가를 데리고 갔었죠. 두 번째 갔을 때도 죽은 영감님 집이 아니라 내가 예전에 살던 집이었어요. 랭가하고 함께 저녁까지 얻어먹고 왔죠. 세 번째 갔을 때엔 그 집 안에서 김일식을 만났어요. 제 짐을 가지고 올 것도 있고 일이 있어 간 거죠. 내 배 박스가 아직 그 집에 있었구요. 그날 차를 얻어 마시고 얘기하다가 어두울 때 나왔죠. 내가 얼마 안 되지만 랭가에게 품값을 주기도 했다고요. 그런 일들은 김일식에게 물어보면 될 텐데 말이죠. 영감님 집은 얼씬도 하지 않았어요.”
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런데 김일식은 찾아간 내게 “유리하게 말해줄까요? 불리하게 해줄까요?”하고 흥정으로 나왔던 사람이었다. 난 수사기록에서 본 공기총이 문득 떠올랐다. 죽은 하 영감의 침실 방 구석에 공기총이 있는 걸 현장검증을 하는 형사들이 발견했었다.
“참, 하 영감 방에 공기총이 있던데 그 사실 알았어요?”
내가 물었다. 청부살인이라면 그는 방비를 하고 가야 맞다.
“그럼요, 잘 알죠. 영감님이 독일제 공기총을 샀다고 나한테 얼마나 자랑했는데요. 그걸 개조해서 위에다 망원경까지 장착했어요. 안방에서 나하고 같이 담벼락에 쏴보기도 했죠. 일일이 공기를 압축시키기 곤란하니까 영감님은 아예 가스통도 사서 건넌방에 뒀어요. 그 영감님이 말이죠, 항상 공기총을 장전해서 안방 장롱하고 벽 사이에 두는 걸 제가 잘 알고 있어요. 제가 정말 죽이려면 그걸 잘 아는데 맨손으로 그 집으로 들어갔겠어요? 차라리 내 엽총을 사용하지.”
“엽총이라뇨?”
내가 물었다. 청부살인이라면 사용하기 좋은 살인도구였다.
“과수원 여기저기 까치가 많았어요. 까치들 피해가 많아서 그걸 잡기 위해 제가 엽총으로 까치사냥을 하곤 했어요. 보통 6월 말부터 배 수확이 끝날 때까지 동네사람들이 부탁하면 엽총을 가지고 가서 까치를 없애주곤 했죠. 영감님도 내가 엽총을 가지고 있는 걸 알았어요. 그 엽총으로 노루도 잡는다니까요. 제가 정말 영감님을 죽일 생각이 있었다면 내 엽총을 가지고 영감님하고 까치사냥을 같이 나갔다가 오발사고를 낸 것처럼 만들 수도 있잖아요?”
그의 자연스런 말들은 일리가 있었다. 수사기관에 의해 만들어진 청부살인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걸 파헤쳐야 했다.
(계속)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