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 375 MM 스카글리에티 쿠페가 2014 페블비치 콩쿠르 델레강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클래식카에 주어지는 ‘베스트 오브 쇼’ 상을 수상했다. 사진출처=페블비치 콩쿠르 델레강스 페이스북
올해 치열한 경합을 거쳐 이 상을 수상한 자동차는 1954년식 페라리 375 MM 스카글리에티 쿠페(Ferrari 375 MM Scaglietti Coupe). ‘베스트 오브 쇼’ 상의 선정 기준은 디자인과 스타일, 그리고 우아함 세 가지인데, 심사단으로부터 모든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은색 컬러에 독특한 외관을 지닌 이 차의 수상은 여러모로 화제를 낳았다. 페블비치 콩쿠르 64년 역사상 페라리 모델이 최고상을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특히 전후 모델(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생산된 자동차)이 이 상을 받은 것은 46년 만의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상 의미보다 차에 얽힌 흥미로운 사연이 클래식카 애호가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페라리는 모두 15대의 375 MM을 제작했는데, 이번에 수상한 페라리 375 MM 스카글리에티 쿠페는 그중 12번째로 특별히 주문 제작된 차다. 주문한 사람은 바로 세계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이탈리아 영화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였다.
영화 <무방비 도시>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로셀리니는 당시 페라리의 큰 고객이기도 했다. 15세부터 몰래 드라이브를 즐길 정도로 자동차광이었던 로셀리니는 그 시절 페라리가 내놓은 차들을 대부분 소장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 큰손이 페라리 설립자인 엔초 페라리에게 ‘특별한 차’를 주문했는데, 바로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먼과의 재혼을 앞두고 선물하기 위한 것이었다. 기혼 상태에서 서로 사랑하게 된 그와 버그먼의 관계는 당시 영화계 최고의 스캔들이었다. 로셀리니는 상처받은 버그먼을 위로하기 위해 거금인 400만 리라(예전 이탈리아 통화)를 들여 특별한 선물을 마련했던 것이다. 그래서 차 이름도 ‘페라리 375 MM 잉그리드 버그먼’이라 불리곤 했다.
처음에 이 차는 천장이 없는 오픈카 형태였고, 색상도 페라리 전통 컬러인 붉은색이었다. 로셀리니는 페라리 375 MM을 몰고 버그먼과 함께 스위스 등지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러나 큰 사고로 차량 앞부분이 심하게 훼손되면서 이 차는 로셀리니 부부의 손을 한동안 떠나게 된다. 이때 차량의 리모델링을 맡았던 이가 바로 엔초 페라리의 친구이자 자동차 디자이너인 서지오 스카글리에티였다.
스카글리에티는 자동차 정면 펜더를 바꾸고 은색 컬러를 입히는 등 혁신적인 디자인을 가미해 375 MM을 세상에서 하나뿐인 독특한 쿠페형(문이 2개이고 지붕이 낮은 모델) 스포츠카로 다시 탄생시켰다.
이번 페블비치 콩쿠르에 ‘페라리 375 MM 스카글리에티 쿠페’를 출품한 사람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사장을 지냈던 존 셜리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거장의 차가 어떻게 바다 건너 아메리카 대륙까지 흘러오게 된 것일까. 페라리 웹사이트 뉴스에 따르면 이런 우여곡절을 거쳤다고 한다.
로셀리니 사후에 이 차는 그의 젊은 팬에게 26만 5000리라에 팔렸다. 그후 프랑스의 유명한 수집가인 찰스 로베르트가 차를 인수했고, 1994년에 경매를 통해 캘리포니아 출신 미국인 마크 케참에게 인도됐다는 것. 존 셜리가 이 차를 파리 교외의 한 지하주차장에서 발견해 사들인 것은 그로부터 1년 후였다.
사실 셜리가 이 차를 처음 출품해 ‘베스트 오브 쇼’ 수상의 영예를 안은 것은 아니다. 인수 당시 페라리 375 MM의 보존 상태는 엉망이었다고 한다. 셜리는 3년간 복원 작업에 공을 들인 끝에 지난 1998년 페블비치 콩쿠르에 선을 보였다. 당시 비록 등급별 상을 수상했지만, 최고의 상은 아니었다. 그 뒤 셜리는 수많은 투어와 대회를 거치면서 가죽 시트를 원래의 비닐 재질 시트로 바꾸는 등 차를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는 작업을 벌였다. 결국 페라리 375 MM은 재수 끝에 16년 만에 페블비치에서 최고의 클래식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로셀리니가 페라리 375 MM을 처음 인도받은 지 꼭 60년 만의 일이었다.
이정수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