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투자·배급사 CJ는 추석 겨냥 신작 <두근두근 내 인생>에 어느 정도 상영관을 내줘야 하는지 고민이다.
영화 흥행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는 배급이다. 해외 직배사를 제외한다면 CJ, 롯데, 쇼박스, NEW 등 일명 ‘빅4’의 배급을 받지 못한 한국 영화는 극장에서 원금을 회수하기 어렵다. 상영관을 잡지 못하니 관객들에게 선택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명량>으로 오랜만에 영화계 리딩 기업의 자존심을 세운 CJ는 요즘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9월 3일 배우 송혜교 강동원이 주연을 맡은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이 개봉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배급을 맡은 CJ는 어느 정도 개봉관을 내줘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개봉을 앞두고 개봉 규모를 고민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다르다. 가족 단위 관객이 극장가를 많이 찾는 명절 극장가에서 <명량>이 기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반면 <두근두근 내 인생>은 주연 배우인 송혜교가 최근 탈세 논란에 휩싸이며 예기치 못한 암초에 부딪힌 형국이다.
송혜교는 지난달 <두근두근 내 인생>의 언론시사회 후 가진 기자간담회가 시작되기에 앞서 공개 사과의 뜻을 표했다. 또한 홍보 활동에도 예정대로 참여하며 정면 돌파를 택했지만 언론과 여론의 시선은 곱지 않다. 그동안 워낙 좋은 이미지를 유지해왔던 터라 이번 사건으로 인한 이미지 타격이 크다. 깨끗한 도화지에 쓴 낙서가 더 도드라져 보이는 탓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명량>의 상영관을 <두근두근 내 인생>에 내주고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CJ는 이미 비슷한 상황에서 아픔을 겪은 적이 있다. 2011년 배우 손예진 주연의 영화 <오싹한 연애>가 기대를 넘어 300만 관객을 모으며 순항 중이었는데 CJ에서 전략적으로 밀어붙인 대작 <마이웨이>가 개봉되자 개봉관을 대거 내줬다. 하지만 <마이웨이>는 <오싹한 연애>에도 미치지 못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당시 <오싹한 연애>의 상영관을 유지했다면 400만 돌파도 거뜬했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단순한 상업 논리로만 따지자면 <명량>을 내리고 <두근두근 내 인생>에 ‘올인’하는 것이 맞다. 아무리 화제작이라 해도 재관람률보다는 신작을 선택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라면서도 “하지만 <명량>은 유례없을 정도로 대한민국을 뒤흔든 영화다. 게다가 <두근두근 내 인생>은 주연 배우가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리며 영화의 이미지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CJ로서는 고민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뒤늦게 거침없이 항해 중인 <해적>.
지난달 25일 <해적>은 평일 임에도 무려 12만 7792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을 모았다. 더 중요한 것은 <명량>을 밀어내고 박스오피스 1위로 올라섰다는 것이다. 여름 대작 4파전에서 가장 뒤처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군도:민란의 시대>를 밀어내고 6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전적으로 관객의 입소문이 만들어낸 결과다. 때문에 뒤늦게 <해적>을 찾는 관객이 꾸준히 극장문을 두드리고 있다.
게다가 지난주 언론시사회를 마친 <타짜-신의 손>에 대한 평가가 그리 뜨겁지 않다. 완성도가 높았던 전작 때문에 기대치가 높았던 탓이다. 물론 추석 연휴 기간 동안 <타짜-신의 손>이 가장 지명도 높은 신작임은 분명하지만 ‘잘나가고’ 있는 <해적>의 상영관을 무턱내고 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관람 등급도 롯데를 고민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타짜-신의 손>은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 가족 단위 관객을 끌어안을 수 없다는 의미다. 반면 <해적>은 12세 이상 관람가로 명절 영화로 제격이다. ‘국민 영화’로 불리며 전 연령층 관객에게 어필한 <명량>이 1600만 관객을 모은 것을 감안한다면 폭넓은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관람 등급을 받은 <해적>을 선택할 관객층이 아직 많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영화계 관계자는 “이른바 <명량>의 딜레마라 할 수 있다. <명량>이 극장 파이를 키운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 파이의 크기가 다른 영화에도 적용될지는 미지수”라며 “<명량>이 한국 영화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개선한 것은 반갑지만 그 후폭풍을 온몸으로 견뎌내야 할 제작사와 투자사의 고민은 깊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추석 이후까지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고민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명절 연휴를 앞두고 <타짜-신의 손>과 <두근두근 내 인생>과 최민식의 할리우드 진출작 <루시> 등이 개봉되지만 이후 뚜렷한 기대작이 눈에 띄지 않는다. 추석 시즌을 잘 버티면 상영관을 유지하면서 롱런할 수 있다는 의미다. CJ는 <명량>의 2000만 달성 프로젝트를 이어갈 수 있고, 롯데는 <해적>으로 여름 대전에서 ‘숨은 승자’로 확실히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 관계자는 “많은 상영관을 잡는 것만큼 좋은 개봉 시기를 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10월 전까지 흥행을 주도할 신작이 보이지 않는 만큼 한 달 이상을 내다보고 상영관을 안배하는 혜안이 필요한 때다”고 덧붙였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