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4년 현장검증 당시 유영철. 사형 집행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그는 최근 “웬만하면 살고싶다”는 심경을 밝혔다. | ||
우리나라는 지난 1997년 12월 30일 23명의 사형수에게 형을 집행한 이후 지금껏 단 한 번도 사형 집행을 하지 않고 있다. 만약 올해에도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정확히 만 10년이 되는 셈이어서 사실상 우리나라는 국제엠네스티가 인정하는‘사형제 폐지국’이 된다.
사형제 폐지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강하다. 사형제 유지론자들은“흉악한 범죄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사형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그들의 표적은 ‘희대의 연쇄살인마’라 불리는 유영철이다.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빨리 자신을 죽여 달라고 악을 쓰는 유영철을 살려둘 순 없는 것 아니냐”는 게 그들의 반문이다. “다른 사형수는 몰라도 유영철만은 사형 집행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높은 담장 안 깊숙이 한 평 남짓한 독방에서 2년 6개월간을 철저히 혼자 지내고 있는 유영철은 지금 담장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형제 폐지 논란의 중심에 자신이 서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그는 여전히 생을 포기한 채 자신에 대한 사형 집행만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일요신문>은 그의 수감생활을 알아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과 접촉했다. 특히 가장 최근까지 유영철과 하루 12시간을 함께 생활하다 얼마 전 출소한 강 아무개 씨(34)를 수소문 끝에 어렵사리 만났다. 그가 전하는 유영철의 현재 심경은 “나도 살고 싶다”였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사형제도 논란의 한가운데에 서게 된 것은 단죄의 상징성 때문이다. 그는 20명을 살해한 대한민국 최대 연쇄살인사건의 장본인이다. 사형제 폐지 입장을 갖고 있던 노무현 정권에서 이 논의가 주춤하게 된 것도 2004년 발생한 유영철 사건으로 여론이 악화된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국회 내에서 사형폐지 입법화를 주도하고 있는 유인태 열린우리당 의원도 “유영철 사건이 일어났던 2004년 7월 직후 국민들의 사형제도 폐지 반대 여론이 한때 66%에 이르는 등 가장 높았다. 사형제도 폐지 반대론자는 아직도 이때의 여론 조사를 제시하곤 한다”고 밝혔다.
최근 검찰 일각과 보수 성향의 법조계 인사들이 “사형제를 폐지한다면 결국 유영철도 살려둬야 한다는 말인가”라며 ‘사형제 폐지’와 ‘유영철 살리기’를 같은 맥락으로 묶으려 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한국기독교사형폐지운동연합회 회장 문장식 목사 등 사형제 폐지론자들이 최근 들어 바짝 긴장하는 것은 법무부의 움직임 때문이다. 지난 2일 <문화일보>는 “끔찍한 연쇄살인에 대한 반성은커녕 죽여 달라고 악을 쓰며 살인을 합리화하는 상황을 방치함으로써 사회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유영철에 대한 사형집행을 해야 한다고 보고 이를 적극 검토 중이다”, “유영철에 대한 사형집행을 안 하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본다”는 법무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법무부는 “공식 입장이 아니다. 아직 사형 집행에 대한 어떠한 검토도 한 바가 없다”고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그런 와중에서도 또 한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솔직히 유영철에 대한 사형 집행을 안 할 순 없는 것 아니냐”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내 사형제도 담당인 한 검사는 전화인터뷰에서 “사형제도에 대해 오락가락하는 법무부의 진짜 입장은 무엇인가. 사실상 사형제 폐지론에 반대하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며 “예전에는 사형제 폐지는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았지만 최근 여론이 심각하게 이 문제를 생각하고 있고 정치권에서도 계속 거론되고 있는 만큼 기존 입장만 고수할 것이 아니라 선입견 없이 심도 있는 검토를 하겠다는 것이 법무부의 현재 분명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는 “마냥 시간만 끌겠다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올해 안에 어떤 가시적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사형제 폐지론자들은 ‘법무부의 의도’에 대한 의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문 목사는 “법무부가 사형제 폐지 시한이 임박한 올해에들어서자 정권 말기 어수선한 틈을 이용해 본격적인 여론 떠보기에 나서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법무부와 검찰은 노무현 대통령의 성향 때문에 눈치를 볼 뿐 사실상 사형제도는 필요하다는 입장을 변함없이 고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 회장 이상혁 변호사 역시 “법무부의 여론 떠보기용 언론 플레이임이 뻔히 드러난다”며 “그래도 노 대통령 재임 중에는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유영철이 담장 밖에서 벌어지는 이 같은 논란을 알고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기자는 외부인 면회가 원천적으로 금지돼 있는 유영철의 독방 수감 생활을 들여다보기 위해 많은 주변 관계자들을 접촉했다. 교화 활동 노력을 계속 하고 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장인 이영우 신부와 유영철과 수십 통의 서신 교환을 해 온 프리랜서 기자 이 아무개 씨 등은 그나마 유영철의 최근 모습을 가장 근거리에서 접하는 이들이었다. 이들에 따르면 유영철은 지난 연말 구치소 내의 주변 관계자에게 “아마도 내 사형 집행이 임박한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담당 교도관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유영철은 신문을 매우 꼼꼼히 읽는다고 한다. 최근의 사형 집행 논란과 거기에 자신이 거론되고 있다는 점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보통 사형수들은 다른 일반 미결수 5∼6명과 함께 지낸다. 하지만 유영철은 2004년 7월 수감 이후 지금까지 계속 독방에서 지내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독방에는 24시간 감시카메라가 부착되어 있으며 양 손목에는 지난해 봄까지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위험인물로 분류된 까닭이다.
다른 사형수들은 정해진 시간에 운동도 하고 TV 드라마를 시청하기도 하지만 유영철의 경우는 거의 독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엄청난 독서량을 자랑하는 그는 하루 종일 독방 안에서 책만 본다고 한다.
유영철 주변을 탐문하는 과정에서 기자는 지난해 11월 출소한 강 아무개 씨와 접촉할 수 있었다. 그는 서울구치소 내 유영철이 수감돼 있는 사동의 ‘사소’를 맡으며 유일하게 유영철과 친하게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사소란 사동 청소부를 의미하는데 재소자 가운데 비교적 모범수로서 교도관의 잔심부름 등을 하며 재소자의 식사 및 청소 등을 돕는 자를 말한다. 그는 “유 씨를 ‘영철이 형’이라 부르며 하루 중 12시간을 함께 지냈다”고 밝혔다. 다음은 강 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유 씨와 친하게 지낸 것은 언제부터인가.
▲사소를 맡은 이후 지난해 11월 2일 출소할 때까지 두 달 동안 같이 지냈다. 밥도 주고, 청소도 해주며 하루 중 12시간을 거의 함께 지냈다.
―연쇄살인범이라는 사실을 알고 섬뜩하지 않았는가.
▲다른 사소나 관계자는 영철이 형을 무서워하며 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난 오히려 내가 먼저 서슴없이 다가가 말도 걸고 이것저것 질문도 막 했다. 처음에는 말문을 잘 열지 않던 형이 한 보름쯤 지나니까 내게 말문을 열기 시작하더라
―유 씨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이뤄지나.
▲그 형은 거의 밖에 안 나온다. 2년간 나온 게 고작 두 번 정도일 것이다. 수갑이 풀린 것도 지난해 3월경부터였으니 아직 1년도 채 안 된다. 오전 5시 반에 기상해서 씻고 7시에 밥 먹고 나서 청소하고 9시부터 TV를 틀어주는데 형은 TV를 잘 안 본다. 하루종일 책만 본다. 책 정말 엄청나게 읽더라.
―밖의 소식에 대해 궁금해 하진 않던가.
▲내가 일간지 8개 정도를 넣어준다. TV는 대부분 녹화된 드라마나 쇼프로가 많은데 유일하게 저녁 8시에 SBS 뉴스를 생방송으로 보여준다.
―책은 주로 어떤 종류를 많이 보나.
▲애정소설을 좋아한다. 심금을 울리는 감동적인 로맨스를 좋아한다. 그 형 실제로 보면 정말 여성스럽다. 손도 예쁘고 목소리도 여자 같다.
―최근 주변에 “내 사형 집행이 임박한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죽음을 조용히 기다리는 듯하던가.
▲내가 알기로는 전혀 아니다. 형이 살고 싶어 하는 욕망이 강한 것을 느꼈다. 내가 “형, 사형제가 폐지될 것 같기도 하고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반반인데 솔직히 정권 말기 되면 형을 죽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때?”라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형이 하는 말이 “그럴 수도 있지만 웬만하면 나도 살고 싶어”라고 말했다.
―무엇에 관심 있어 하고, 또 제일 하고 싶어 하나.
▲아들 얘기를 많이 했다. 미안하다는 거다. (이 부분에서) 살고 싶어 하는 욕망이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 종교생활도 전혀 관심 없는 것은 아닌데 스스로가 밖에 나갈 생각을 안 한다. 교도관이나 재소자들한테 피해를 주는 것 같아서 싫다고 한다. 초기에는 종교단체 등에서 돈도 많이 보내 왔다. 교화를 위한 목적이었다. 그런데 본인이 교화활동에 나서지 않으니까 나중에는 그 지원금이 점점 끊기는 거다. 그 형은 돈을 거의 전부 책 사 보는 데 다 쓴다. 책을 못 사 보니까 그것을 좀 어려워하는 것 같더라.
―당신 말고 가깝게 지내는 사람은 또 누가 있나.
▲없다. 형 스스로도 거의 말을 안 하지만 다른 재소자들도 적대적이다. 심지어 지나가면서 침 뱉고 가고.
―편지는 자주 오는 편인가.
▲편지도 이제는 거의 안 오는 것 같더라. 한때 이 아무개 기자하고 열심히 서신 교환을 했는데 최근에는 편지 안 한다고 하더라. 가끔 밖에서 엉뚱한 애들이 형을 추종하는 듯한 황당한 내용의 편지를 보내오기도 한다. 형이 내게 보여주면서 그 자리에서 다 찢어버린다.
―그렇다면 하루종일 독방 안에서 책만 보는가.
▲뭔가를 열심히 쓰긴 쓰는데, 내가 “형 뭐 써”하고 물어보면 “응, 그냥 내 생각 쓰는 거야”라고 말한다. 뭔가 기록에 남기는 것일 수도 있고 일기 같은 것일 수도 있을 게다.
―감정의 기복이 여전히 심하지는 않던가.
▲심하지는 않지만 아직도 남아 있다. 나랑 즐겁게 얘기하다가 갑자기 멍하니 한 시간 이상이나 벽 보고 말시켜도 대답도 않고 가만히 있을 때가 있다.
―심하게 화를 내거나 사고를 일으킨 적은 없는지.
▲무척 얌전하게 지내는 편이다. 그러니 수갑도 풀어줬지. 화도 내는 일이 좀처럼 없는데 딱 한 번 교도관하고 다툰 적이 있었다. 이불 빨래를 짜야 하는데 그럴 때면 교도관이 문을 열어줘야 한다. 교대 교도관이 문을 안 열어주자 무척 화를 낸 적이 있다. 내가 나서서 무마시켰더니 또 금세 진정되더라.
―살인 사건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눴나.
▲당연히 내가 제일 많이 물어봤다. “어떻게 죽였냐, 왜 죽였냐” 하고. 처음에는 “죽이고 싶어 죽였다”라고 다소 귀찮은 듯이 대답하기도 했지만 자꾸 물으니 자신의 전처와 동거녀 등의 얘기를 자세히 해주더라. 여자에 대한 불신과 미움이 당시엔 정말 사무쳤나 보더라.
―반성하거나 후회하는 기색이 있던가.
▲“내가 미친놈이지”라며 후회하는 듯한 말을 많이 했다. 범행 당시엔 죄책감이 없었는데 서서히 뒤돌아보며 이제 반성하는 듯했다. 밤마다 자신에게 희생당한 자들이 나타나 악몽을 꾸고 가위에 눌린다며 많이 괴로워했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