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조선시대에는 노비들 중에는 노비를 소유할 정도로 경제력을 가진 자들도 더러 있었다. 또한 노비가 토지를 소유한 경우는 흔하게 있는 일이었다. 이렇게 경제력을 보유한 노비들은 양인이 되기 위해 속가라는 돈을 내고 속량할 수 있었다.
또한 왜란과 호란, 두 차례의 전쟁 경험을 통해 부족한 군인을 노비로 채우면서 그에 따른 공훈으로 신분 해방을 시켜주기도 했다.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은 신분제 사회인 조선에서 양반을 꿈꾸었던 한 노비 가계의 17세기 말부터 19세기에 걸친 200년 이력을 기록한 것이다.
이 책에는 양반이 되려고 했던 ‘김수봉’이라는 어느 노비 집안의 멀고도 험난한 여정이 펼쳐진다. 노비니까 당연히 신분 상승을 꿈꾸었을 것이라는 막연한 가정이 아니라, 당시 노비의 삶이 지닌 예속적이고 열악한 인간 조건을 세밀하게 분석하면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이 얼마나 제한적이었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노비들이 살았던 당대의 ‘호적대장’을 통해서 신분 상승을 꿈꾼 그들의 현실과 실상을 밝혔고, 아울러 조선시대 하천민들의 신분 성장사까지 포괄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아울러 신분제도를 둘러싼 조선의 생활사 이야기가 다양하게 소개된다. 특히 호적에서 관직 기록을 해독하는 방법인 행수, 기혼 여성들의 호칭 차이, 노비의 현실과 양반의 집착, 노비에게 붙여진 이름에 담긴 사회적 천대와 멸시, 노비를 소유한 노비, 재혼을 포함한 결혼제도의 변화,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군역의 변질, 성씨와 본관의 획득 과정, 가문의 대를 잇는 일에 가운을 거는 관습으로 생겨난 입양제도의 변화 등 조선시대 일상의 세밀한 풍경이 묘사되어 있다.
권내현 지음. 역사비평사. 정가 1만 2800원.
연규범 기자 ygb@ilyo.co.kr